자생적 질서에 대한 인류학적 반동주의적 비판
자생적 질서에 대한 인류학적 반동주의적 비판
리버테리언들은 국가가 없어도 자유시장 질서는 민간 영역에서 자생한다는 주장을 주로 한다. 그들이 즐겨 사용하는 논거들과 이에 대한 인류학적 반동주의의 서늘한 반박을 정리해보겠다.
첫째, 교도소 내 경제.
리처드 A. 래드포드(Richard A. Radford)라는 경제학자의 포로수용소 경제학(prisoner-of-war camp economics)라는 저작에서 비롯된 주장이다. 교도소나 포로수용소 등과 같은 극한의 통제 상황에서도 죄수들은 담배, 라면 등을 화폐로 삼아 정교한 시장을 형성한다고 한다. 이는 인간의 '교환 본능'이 국가라는 인프라 없이도 질서를 만든다는 증거로 즐겨 사용되곤 한다.
이에 대해 반박해보고자 한다. 교도소 내 시장이 유지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교도소라는 거대한 물리적 폭력(간수와 담장)이 내부와 외부의 약탈자로부터 그 시장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담장이 없고 죄수들 간의 무력 행사가 완전히 자유로운 야생이라면, 힘센 죄수는 '거래'대신 '약탈'을 선택할 것이다. 리버테리언은 '보안(Security)'이라는 기본값이 외부(국가)에서 제공되고 있음을 망각한 채 거래의 효율성만을 찬양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 암시장.
다크웹에 존재했던 마약 거래 사이트 '실크로드'나 규제가 심한 국가의 암시장은 공권력이 금지해도 민간 영역의 시장은 작동함을 보여주는 리버테리어니즘의 논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평판 시스템과 암호화 기술이 '강제'를 대체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서도 반박해보겠다. 암시장이 돌아가는 화폐(비트코인 포함)와 물류 인프라는 결국 국가가 유지하는 안정적인 전기, 통신, 물리적 도로 위에서 기능한다. 암시장은 국가라는 '본체'에 기생하는 종양이나 파편이지, 스스로 본체가 될 수 없다. 패권이 무너져 통신망이 끊기고 물리적 폭력이 일상화되면, 아이러니하게도 암시장의 '평판'은 총구 앞에서 무력해진다.
셋째, 중세 아이슬란드와 상인법(Lex Mercatoria)
중앙 정부가 없던 중세 아이슬란드나 국가 간 무역에서 발달한 상인법은, 사법 서비스조차 민간의 계약과 평판에 의해 공급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는 리버테리어니즘의 논거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도 반박해보겠다. 자발적 거래는 '거래비용'이 낮을 때만 유효하다. 생존이 걸린 위기 상황에서 인간은 계약서를 쓰기보다 위계를 세우거나 힘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훨씬 '경제적'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이에 따라 행동한다. 리버테리언이 말하는 자생적 질서는 충분히 배부르고 안전한 상태에서만 나타나는 인류학적 사치재에 가깝다.
결국 리버테리언의 논리는 '인간은 합리적 거래자'라는 가정에 갇혀 있다. 반면 인류학적 반동주의는 인간은 기회가 되면 약탈하고, 공포 앞에서는 복종하는 동물이라는 점을 직시한다.
리버테리언들이 사례로 드는 암시장이나 교도소 내 경제는 사실 '국가가 만든 거대한 질서 안의 작은 빈틈'에서 일어나는 유희에 불과하다. 그 빈틈을 지탱하는 거대한 콘크리트(국가 권력)가 사라지는 순간, 그들이 찬양하는 자생적 질서는 인류학적 본능(힘의 위계)에 의해 순식간에 증발할 것이다.
질서의 엔트로피는 누가 막는가라는 의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 해답을 깨닫게 된다면 당신은 인류학적 반동주의에 한걸음 다가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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