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의 잡역부 취급이 당연시되는 현실에 대한 분석

군인의 잡역부 취급이 당연시되는 현실에 대한 분석


2023년 여름, 폭우가 전국을 덮쳤다. 수해 현장에서 수많은 병력이 동원되었고, 그 과정에서 해병대 제1사단 채수근 상병(사망 당시 일등병이었으며 사망 이후 상등병으로 1계급 추서되었다.)이 복구 작업 중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 사건 이후, 한국 정부와 군 지휘부는 여론을 의식해 이렇게 흘렸다. “앞으로는 군 사병을 구조 작업에는 투입하지 않겠다.” 그 말은 일시적 안도감을 줬지만, 곧바로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여전히 군 사병들은 복구 작업이라는 이름으로 곳곳에서 동원되고 있었다.


디시인사이드 국내보수 마이너 갤러리의 ‘파스텔’이라는 어느 유저는 이 상황을 보며 이런 을 남겼다. 


미친나라 채상병 염병떠니까 구조작업에 군인 투입 못하고 복구작업엔 싹 투입시켰네 미친 ㅋㅋㅋㅋㅋ


겉으로는 군대 정책 방침의 모순을 지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뉘앙스를 곱씹으면 전혀 다른 가치관이 드러난다. 파스텔은 군인의 전방위적 동원을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군인은 국가가 필요로 할 때 언제든 소환되어야 하며, 그것이 구조든 복구든 상관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왜 구조에는 안 쓰면서 복구에만 쓰느냐”는 식의 질책이 바로 그것이다. 군인이 징집된 존재이든, 위험이 크든, 보상이 미흡하든 상관없이 군인은 그저 움직여야 한다는 당위를 그녀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체제를 비판하는 듯하지만, 실은 군인을 공공재처럼 소모하는 체제의 논리를 오히려 옹호하는 발화다. 민주주의 국가는 겉으로는 “군인을 보호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하지만, 실상은 언제든 그들의 노동과 생명을 연료로 갈아 넣는다. 파스텔은 그 구조를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연료 공급이 잠시 멈춘 것을 조롱하며, “구조작업에도 쓰라, 왜 멈췄느냐”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녀의 한 마디는 체제의 포식적 본능을 드러내고도, 그 모순을 자각하기보다는 기계에 더 빠른 회전을 요구하는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본문 아래에는 댓글이 이어진다. 군인의 목숨과 책임, 징병과 직업의 차이, 국가의 포식성과 지역사회 책임이 뒤엉킨 토론. 표면은 단순한 말싸움이지만, 그 속에는 우익들이 주목해야만 할 주제가 잠들어 있다. 군인은 전투만 해야 하는가, 아니면 국가가 필요할 때 무엇이든 해야 하는가. 강제 징병된 자에게 희생을 요구할 수 있는가. 체제는 언제나 그 희생을 어떻게 정당화하는가. 이제 우리는 그 댓글 하나하나 속으로 들어가, 파스텔과 DR블랙잭, 그리고 그 주변의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체제의 음영을 살펴볼 것이다.


우선 ‘DR블랙잭’이라는 닉네임의 유저가 이렇게 토론의 서막을 연다. 


DR블랙잭: 저건 맞는 방향이 맞지 일개주민이 군인목숨보다 가치가 높은건 아니잖아


이 첫 번째 문장은, 대중적 도덕과 체제의 공식 레토릭에 어긋나는, 그러나 아주 단순하고 직감적인 선언이다. 민주주의 체제는 늘 ‘모든 생명은 동일한 가치’라는 추상적 도덕으로 무장하지만, 실제로는 특정 집단의 생명을 우선순위로 두고 다른 집단을 소모품처럼 사용한다. DR블랙잭은 바로 그 모순을 거꾸로 뒤집는다. 그가 지적한 “일개 주민이 군인 목숨보다 가치가 높은 건 아니다”라는 말은, NRx(신반동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국가가 군인을 공공재처럼 다루면서도, 그 희생을 요구하는 주체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안락함 속에 있는 구조를 노골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이 문제를 숨긴다. 투표하는 ‘주민’은 병력 동원이라는 정책에 찬성표를 던지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의 목숨을 걸지 않는다. 현대 민주정 국가의 군대라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으나 그 안에서 현대 사회의 지식·문화·정치 네트워크가 맞물려 돌아가며 형성한, 비공식적이지만 실제로는 국가 위에 군림하는 권력 체계인 대성당(Cathedral)’이 유지하는 체제에서 대신 고통받는 집단이다. DR블랙잭의 문장은, 짧지만 이 숨은 계층 구도를 뒤집는 날선 칼날이다. 그 속에는 NRx가 즐겨 사용하는 통찰—권리와 책임의 괴리, 시민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는 기생 구조—가 응축되어 있다.


그리고 이어서 DR블랙잭은 이렇게 댓글을 적는다.


DR블랙잭: 그리고 군인의 본분이 전투 훈련이어야지 구조니 복구는 왜 해야하는건지도 의문이고


민주주의 체제는 언제나 기관의 본래 목적을 흐린다. 군대라는 조직은 애초에 국가의 적과 싸우기 위해 설계된 도구지만, 체제 속에서 그 기능은 희석되고, 구조·복구·행사 지원 같은 잡다한 업무가 덧씌워진다. 이 과정에서 군인은 값싼 공공재로 취급되고, 전투력은 흐려지며, 병사들은 의미 없는 노동으로 소모된다. DR블랙잭의 한마디는 바로 그 흐릿해진 목적을 꿰뚫는 질문이다. “군인의 본분은 무엇인가? 왜 체제는 그 본분을 망가뜨렸는가?” 즉 DR블랙잭은 군인의 특수성을 강조했다. 군인의 목숨을 주민보다 하찮게 볼 수 없으며, 그 임무는 본래 전투와 훈련이지 잡다한 현장 투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파스텔은 이렇게 쏘아붙인다.


파스텔: 소방관 목숨은 ㅋㅋㅋㅋ 뭔 개논리를 만들어냈냐. 어디 개딸(주석: 이재명 강성 지지자 집단)이 말해준 게 1초 혹해서 그러는 거지?


표면상 그녀의 조롱은 DR블랙잭의 첫 번째 주장, 즉 “군인의 목숨을 더 귀하게 봐야 한다”는 논리에 대한 반박처럼 들린다. 그러나 맥락상, 두 번째 주장—“군인의 본분은 전투 훈련”—에 대해서도 파스텔은 암묵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소방관과 군인을 한데 묶어 “둘 다 위험을 감수하는 공공 인력”이라는 평준화된 틀에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대성당에게 있어 군인이건 소방관이건 세세한 구별은 무의미하다. 둘 다 위험을 감수하고, 둘 다 소모된다. 강제냐 자발이냐, 본래 목적이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대성당 체제의 연료로 쓰인다는 사실이다. DR블랙잭은 이 대성당의 설계를 잠시나마 거부했다. 군대는 전투를 위한 집단이며, 군인은 단순한 잡역 인력이 아니다. 그러나 파스텔은 대성당의 음성을 되풀이하며 조롱한다. “소방관도 하는데 왜 군인은 예외냐.” 그녀의 말은 체제의 희생 구조를 자각한 것이 아니라, 그 구조를 더 촘촘하게 다져놓는다. 군인을 소방관과 같은 선상에 놓는 순간, 군인의 고유한 목적과 강제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사라진다.


앞서 파스텔은 “소방관 목숨은 덜 귀한 거냐”는 식으로 군인과 소방관을 한데 묶어 논박했다. DR블랙잭은 그 말에 칼을 들이댄다.


DR블랙잭: 소방관은 지가 선택해서 하는거고 군인은 끌려가는 건데 진심 같다고 생각함? 이건 게이(주석: gay가 아니라 게시판 이용자를 뜻한다.)가 군대 갈 일이 없고 거기에 공감 자체가 안되는 성별이라 그런 거라 생각하겠음.


소방관은 계약을 통해 자신의 직업을 선택한다. 그는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정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그러나 징집된 병사는 선택권이 없다. 병사는 민주주의 체제가 부과한 강제에 따라 불려 나간다. 대성당 체제는 이 차이를 지워버린다. 그리고 그 지워진 틈에서, 군인은 무한히 소모된다.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이건 군대 갈 일이 없고 공감도 안 되는 성별이라 그런 거라 생각하겠음.” 이 한 마디는 그 틈을 드러낸다. 희생을 명령하는 체제는 특정 집단에게는 면제권을 주고, 다른 집단에게는 의무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제한다. 이러한 대성당은 거대한 신경망이다. 그것은 체제에 유리한 사상과 태도를 뿌리고, 그 뿌리를 개인의 인식 속까지 파고든다. 군 경험이 없는 개인은 자신도 모르게 그 신경망의 행동 패턴을 복제한다. 군인을 바라보며 스스로 생각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미 체제의 서사를 되풀이한다. 여기서 여성이라는 조건은 하나의 매개다. 그들은 징집 의무가 없기에 군인의 특수한 희생을 체감하지 못한다. 그리고 체감하지 못하는 자는, 체제가 제공한 평등화된, 소모적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 순간 그들은 대성당과 동일한 방식으로 사고하고, 동일한 논리를 말한다. “국가는 국방의 의무에서 면제된 여성들을 보호할 것이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일은 다른 누군가인 남성들이 할 것이다. 우리 여성들의 역할은 그 시스템을 믿고, 때로는 군인을 응원하는 척하거나 열심히 조롱하거나 평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군인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여성들의 이기적 시선은, 대성당 체제가 군인을 값싼 자원처럼 소모하며 유지될 수 있는 끝없는 연료를 제공한다. 


앞선 논쟁에서 DR블랙잭이 제기했던 두 가지 축—① 군인의 목숨 가치를 특별하게 봐야 한다는 주장, ② 군대는 전투와 훈련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두 축을 파스텔은 한꺼번에 밀어붙여 해체하려 한다.


파스텔 : 아니 소방관 목숨은 그러면 덜귀해서 하는거냐고. 그리고 소방관들도 불관련만 가는게 아닌건 똑같고 경찰도 그렇고 공무원들도 그런데


그런거 다 안하는게 맞다는거에는 반대를 하지도 동의를 안하지도 않는데 목숨가치 드립은ㅋㅋㅋㅋ 그거 찢갈이(주석: 강성 이재명 지지자)들이 치던 드립인데


앞서 파스텔의 댓글에서와 마찬가지로, 군인의 특수성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차단하고 소방, 경찰, 군대, 일반 행정직 공무원이건 모든 것을 동일한 소모 구조로 되돌려 놓는다. 또한 “목숨 가치 드립은 찢갈이들이 치던 드립”이라는 조롱은 ‘군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구조에 대한 비판이라는 담론’에 급진 좌익들의 진영논리를 덧씌워 실제 문제에 대한 논의를 회피하는 기능을 한다. 


다시금 DR블랙잭은 반박에 나선다.


DR블랙잭: 소방관 공무원이랑 군인을 동일잣대로 놓는 거부터가 잘못된거라니까? 직업이랑 징병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는거임? 재난 구조 작업에 군이 투입되어야 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군이 해당 작업을 하다가 목숨을 잃어도 상관없다'는 전제가 깔려있는데 나는 그게 옳지 않다는거지 


DR블랙잭은 이미 한 번 대성당의 회로를 찢어보였다. 하지만 댓글 토론이라는 소음 속에서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 쉽게 휘발한다. 그래서 그는 또다시 같은 도식을 꺼내 든다. 병사는 직업으로 군인이 된 것이 아니라 징집된 것이다. 그 희생을 평준화하지 마라. 이 장면은 마치 민주주의의 엔진룸에서 반복되는 경고 같다. 대성당의 신도(信徒)는 이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DR블랙잭은 같은 메시지를 다시 부어 넣는다. 이 반복은 어쩌면 아이러니한 예술이다. 대성당은 끝없이 같은 서사를 되뇌고, 그 서사를 거스르는 자는 끝없이 같은 반박을 되뇌며 맞선다. 


이어서 파스텔은 이렇게 댓글을 적는다.


파스텔 : 뭔 개소리야 군인의 역할이 전투훈련만 하러간건줄아냐. 그런 좁은의미로 징병했었으면 이미 나라 터졌다. 군인이 하는 일들 아무데나 쳐도 나올 듯 


싸우기 싫고 너나나나 오래볼 사이니 싸워서도 안되니까 좀 끝내라. 아니면 계속 댓글 달던가


“군인의 역할? 그건 대성당이 정하는 거야. 네가 뭘 묻든, 군인은 어디서든, 무엇이든 해야 해.” 신반동주의의 거두들이 이 장면을 읽는다면? 아마 미친듯이 폭소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장면만으로도 대성당의 내면을 완벽하게 답습한 ‘신도’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기 한 명의 충실한 대성당의 신도(信徒)가 있다. 그녀는 군인의 본분을 묻는 질문을 ‘좁은 의미’라며 조롱한다. 그녀의 눈에는, 군인은 단지 국가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원자다. 그 원자의 본래 목적 따윈 묻지 않는다. 목적이란 대성당이 필요할 때마다 새로 정의하면 되니까. 파스텔의 말 속에는, 군인의 희생을 제도적·정치적으로 제한하려는 어떤 의지도 없다. 오히려 “이미 나라 터졌을 거다”라는 겁박으로, 군인의 무제한적 동원을 당연한 것으로 강화한다. 그리고 이에 이어서 파스텔은 논쟁을 닫으려 한다. 겉보기에는 평화적 제스처 같지만, 실제로는 논점을 흐리고, 본질적 질문을 더 이상 다루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대성당의 논리를 유지하는 데 더없이 유리하다. 왜냐하면, 문제 제기가 더 깊어지기 전에 토론의 에너지를 차단해버리기 때문이다. 


이어서 DR블랙잭은 한층 더 근본적인 문제를 꺼낸다. 군인을 복구작업에 투입하는 논리가 왜곡된 책임 전가라는 것이다.


DR블랙잭 : 하더라도 해당지역을 살아가야하는 해당주민들이 직접 복구작업을 하는게 맞다는 거임. 당장 이번에 광주에 사대강 보 다 퇴출시킨 효과로 똥물 하수관 터져서 그 악취가 진동을 하는데 이에 대해 해당 정치인들을 뽑은 그 지역주민들이 책임을 지고 자기자신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복구를 해야지 군에게 이를 하라고 하는건 지나친 월권임


민주주의의 치명적 결함은 책임이 분산되며 흐려진다는 데 있다. 투표를 하고, 결과를 낳지만, 그 결과에 대해 직접적 책임을 지는 시민은 없다. 대신 체제는 책임을 ‘다른 집단’에게 전가한다. 광주에 사대강 보를 철거한 결과가 홍수 피해로 이어졌다면, 그 정치적 선택에 대한 비용을 누가 지불하는가? 한국에서는 “해당 지역 주민”이 아니라, 징집병이 땀과 피로 대신 갚는다. 투표로 선택한 집단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상식은, 민주주의의 무대 뒤로 사라진 지 오래다. 대성당의 표밭은 안락한 의자에 앉아 표를 던지고, 그 결과가 부른 재난을 수습하는 건 전혀 다른 계층이다—전통적으로 대성당과 반대되는 정치·문화 성향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집단인 군대에 소속된 징집병들. 이것이 민주정의 청구서가 엉뚱한 주소로 가는 구조다. DR블랙잭은 대성당의 이런 청구서를 거부한다. 대성당의 논리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국민은 다른 국민보다 더 평등하다.” DR블랙잭은 그 허상을 폭로하며, 책임을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되돌리려 한다.


이어서 ‘오늘점심비냉’이란 유저는 열띤 댓글 토론 중에 이런 댓글을 툭 던진다.


그냥 책임회피하려고 저러는거


그렇다. 책임 회피. 대성당 체제는 언제나 자신을 보호하는 쪽으로 균형을 맞춘다. 여론이라는 압력을 받으면, 불필요하던 임무를 살짝만 줄이고서는, 그 공백을 ‘복구’라는 덜 위험한 이미지로 포장한다. 군의 투입 방식 변화는 군인을 존중하기 위한 근본적 개선이 아니라, 체제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군인은 여전히 값싼 인력으로 쓰이며, 단지 더 눈에 띄지 않는 위험한 작업에 배치된다.


그리고 이어서 파스텔은 토론을 마무리하듯 이런 댓글을 적는다. 


파스텔 : 그래. 그러고 끝내자. 나도 복구작업도 시키면안된다 이런거에 반대 안함


그녀는 대성당 체제의 논리를 반복해왔고, 논쟁 끝에 갑자기 ‘나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체제를 흔들려는 결단이 아니다. 단지 더 이상 논쟁하고 싶지 않다는 개인적 피로감일 뿐이다. 즉,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결여된 채, 겉으로만 동의하는 모양을 띤다. 체제를 정당화하던 사람이, 마지막에 이렇게 한마디 내뱉는다고 해서 그 체제를 향한 내면의 충성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DR블랙잭 역시 토론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댓글을 적는다.


DR블랙잭 : 이건 채상병 건에 대해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고 정치적인 거랑은 별개로 생각해낸 건임


왜냐하면 지금 이재명은 공무원 지방직 쥐잡듯이 잡으면서 걔네 동원하고 복구작업 지시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본인은 그것도 동의 안함. 본인들이 초래한 똥은 본인들이 치워야 마땅함 


DR블랙잭은 자신의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지금 이재명은 공무원들을 동원하고 복구를 지시하지만, 나는 그것도 반대한다.” 이 대목은 단순한 정책 비판이 아니다. 그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은 ‘책임을 초래한 집단이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원리다. 정치적 구호를 넘어선, 주체적 책임의 원칙이다.


DR블랙잭과 파스텔과의 토론이 마무리된 이후 다른 유저들이 몇 마디 거든다.


ㅇㅇ(112.187): 근데 블랙잭아 니도 군대안간 공익 아니냐


이는 전형적인 인신공격의 오류(Ad hominem)의 사례이다. “네가 군대를 안 갔다면, 네 말은 힘을 잃는다.” 이 한마디는 대성당적 책임 회피 기제의 또 다른 형태다. 군인 동원의 문제를 논하는 대신, 발언자의 자격을 물어 논점을 흐린다. 이는 체제가 좋아하는 장치다. 구조적 문제는 덮이고, 개인의 이력만 도마 위에 오른다. 이렇듯 이 나라에서는 언제나 발언권을 평가할 때 개인의 이력을 들추어 논쟁을 흐린다. 하지만 정작 진실은 발언자의 계급이나 직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 자체를 꿰뚫어 보는 눈에 있다. 그리고 군 문제를 논하는데 있어서 현역으로 군복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조건이 필요하다면... 필자는 그저 가볍게 웃을 뿐이다. 필자는 실제로 그 군대 안에서 복무했고, 군대와 국가가 어떻게 청년을 소모하는지 두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러니 필자는 말할 자격이 있다—예비역 병장의 자격으로, 대성당의 연료가 되는 이들의 목소리로.


ㅇㅇ(220.65): 아니 다른나라도 다 수해현장에 군인투입하는데 무슨소리노


이 댓글은 전형적인 군중에 호소하는 오류(argumentum ad populum)의 사례다. “모두가 이렇게 한다. 그러니 문제없다.” 그러나 이 논리는 문제의 본질을 다루지 않는다. 그 “다른 나라”가 어떤 체제인지, 그 나라의 군인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그 희생이 어떤 정치적 구조에서 발생하는지, 이런 질문은 사라진다.


그리고 앞선 두 유저과 달리, 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명확히 인지한 ‘겨울바람’이라는 유저가 자신의 소신을 소상히 밝힌다.


겨울바람 :  징병제인데 3d업종 동물생매장도 포괄하는게 한국군인데 딴나라도 한다는 이유로 단순히 비교가 가능하다고 봄? 


한국의 징집병은 3D업종을 포함한 강제노동까지 수행한다. 다른 나라와 단순 비교할 수 없다. 또한 이런 의미 또한 내포하고 있다. ‘정말로 다른 나라와 같다고 생각하는가? 그 나라들도 징병병력을 이런 식으로 소모하는가?’ 겨울바람은 이렇게 한국의 특수성을 궤뚫어보고, 대성당의 논리를 거부한다. 


그리고 겨울바람 이외에도 DR블랙잭의 논리에 동조하는 댓글이 더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ㅇㅇ(221.168): 복구작업도 투입시키면 안 되는데

즈그들도 공짜인력은 못 참노ㅋㅋ 


ㅇㅇ : 혹여라도 죽는순간 지들이 해온 짓 그대로 쳐받음ㅋㅋ 


ㅇㅇ(221.168)의 한마디는 군인의 희생이 이미 ‘공짜 인력’으로 체제에 내장된 구조적 현상이라는 점을 다시금 강조한다.


이어서 적혀진 ㅇㅇ의 댓글은 “군인을 투입하다 또 죽으면? 그 정치 세력은 그 책임을 온전히 떠안아야 한다.”는 현 민주주의 체제의 기막힌 매커니즘을 잘 포착하였다. 민주주의는 공짜 인력을 원하고, 그 인력이 죽으면 책임은 떠넘긴다. 그러나 그 떠넘김이 실패하는 순간, 대성당의 가면이 벗겨진다.


이 짧은 댓글란 속에서, 우리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책임을 분산하고 군인을 공짜 인력처럼 소모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았다. 누군가는 체제의 논리를 아무 의심 없이 되풀이했고, 다른 몇몇은 그 구조를 비웃거나 꿰뚫었다. 그러나 체제는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군인의 희생은 이미 ‘공공재’라는 이름으로 거의 공짜로 확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광경을 보고도 체제가 합리적이라고 믿는다면, 당신은 이미 대성당에게 세뇌당한 것이다. 그들은 투표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직접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들은 군인을 존중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전방위적 동원과 희생을 당연시한다. 이 모든 아이러니를 직시할 때 비로소, 우리는 체제가 무엇을 희생시키며 굴러가는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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