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은 자신들이 투표한 남성을 얻었다
"당신은 당신이 투표한 대로 얻게 된다."
이 책이 여성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긴 하지만 동시에 건설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면, 지적 정직함을 위해 말하자면 미국 남성들 역시 똑같이 무가치합니다. 그들은 집에서 살며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고, 살이 찌고, 야망도 없고, 운전면허도 없고, 저축도 없으며, 인생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없이 살아갑니다.
물론 여성들과 사회가 남성과 아무 관련도 맺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게 상황을 더 악화시키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성들이 인생을 포기하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정당화는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여전히 뭔가를 해야 합니다.
사회에서 소외된 남성들은 왜 산을 오르거나, 위대한 업적을 이루거나, 고급 학위를 따거나, 모험을 하거나, 최소한 운동이라도 하지 않는걸 까요? 단지 지적인 자극을 얻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아니면 최소한 존재론적 위기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이런 상황은 오늘날 대부분의 남성들이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게으르며, 의미와 목적, 생산성과 모험의 삶보다 나태와 탐욕, 자기연민과 기생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선택지를 누가 주었을까요? 우선 남성들에게 "넌 필요 없어"라고 말하며 의욕을 꺾는 사회적 영향력을 제거해봅시다. 그리고 여성들의 일반적인 무관심, 심지어 혐오로 인해 동기가 사라지는 효과도 잠시 제외해봅시다.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에서 가장 아래 단계에 있는 ‘죽음의 위협’—굶주림, 추위, 노숙—만으로도 남성들이 일어나서 일자리를 찾을 충분한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왜 여전히 그들은 자립하지 않을까요?
굶어죽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고, 노숙자 캠프에서 칼에 찔리지 않기 위해서는 20달러짜리 시급 일자리를 가지고, 식탁에 음식을 올리고, 학자금 대출을 갚고, 월세를 내고, 추가 근무를 해야하는데 왜 하지 않을까요?
정답은 간단합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왜 그럴 필요가 없느냐?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복지국가에 투표해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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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미국에서는 정말로 원하지 않으면 굳이 일하지 않아도 됩니다. 게다가 주정부와 지방정부, 민간 자선단체들이 제공하는 복지 프로그램들, 그리고 자녀를 집에 얹혀살게 하는 현대 부모들 덕분에, 굶주림, 노숙, 추위 같은 위협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협들을 제거함과 동시에, 이 남성들을 생산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만들 수 있었던 ‘부정적 강화 수단’도 함께 제거되었습니다.
대학 신입생 수준의 민주 사회주의 정치가 남성들을 기생적인 "소년" 상태에 머물게 한 것이죠.
여기에 다시 여성들의 무관심이나 혐오까지 더하면, 남성들을 남자로 키워낼 "채찍"도, 그들을 유도할 "당근"도 모두 사라진 셈입니다.
물론 철학적으로는 남성이 자신의 삶에서 탁월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논리는 타당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런 자기 동기부여는 매우 희귀합니다. 특히 사회 전체가 자신을 무시하거나 심지어 적대적으로 대할 때는 더더욱 그렇죠.
결국 당근도, 채찍도 없는 이 남성들은 단지 존재만 하며, 종종 납세자의 돈으로 유지된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그들을 만든 여성들 또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
예를 들어, 여성들이 자주 하는 불만 중 하나는 "괜찮은 남자들은 다 이미 짝이 있다"이죠. 그리고 그 말은 사실입니다. 질 좋은 남성들은 대부분 이미 결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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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성들이 "왜 좋은 남자를 찾기 힘들지?" 하고 물을 때, 정답은 : 수십 년 전 당신들이 투표로 그 남자들을 정부 보조금으로 대체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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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파생되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여성들의 “걸보스(Girl Boss)”가 되겠다는 혼란스럽고 모순적인 욕망입니다.
노동 시간이나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보아도, 남성들의 경향은 더 많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덜 일하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복지국가 여부와 상관없이 말이죠.
왜냐하면, 일은 고통스럽고 재미없고, 인생의 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육계, 기업, 정부는 여성들에게 이 사실을 속이는 데 정말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여성들은 15만 달러에 달하는 빚을 지고 쓸모없는 MBA 과정에 등록하며, 주당 60시간, 통근 포함 70시간을 직장에서 소진합니다. 높은 임대료를 내고 도심에 살며, 자녀 양육은 외주를 주고, 혼란스럽게도 자기 세금을 올리는 쪽으로 투표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괜찮았을 수도 있습니다. 단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바로 소수자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
여성들은 이 정책을 적극 지지하였고, 최소한 폐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남성과 협력하거나 공정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을 밀어내고 대체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효과를 낳습니다.
첫째, 이것은 남성들이 교육이나 경력을 준비하는 가장 큰 방해 요소 중 하나입니다. 경쟁이 공정하지 않은데, 누가 거기에 인생을 걸겠나요? 어차피 ‘흑인 여성이기 때문에’ 승진시킬 거라면, 왜 노력할까요?
둘째, 이로 인해 남성들이 노동시장 전체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처음엔 여성들이 이를 환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결과, 여성들이 경제, 사회, 복지국가 전체를 책임지게 되는 미래가 찾아옵니다.
오늘날은 아직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이 일하고 있지만, 현재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미래의 노동 인구는 여성 중심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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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의 또 다른 웃기고도 황당한 반전은, 여성들이 부자 남성을 만나길 기대하면서 동시에 그의 돈을 빼앗는 데 투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국세청(IRS)의 세수 자료를 장황하게 분석하지 않더라도, 부유층이 압도적으로 많은 세금을 낸다는 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일부 주에서는 소득의 45%까지 세금으로 나가고, 그중 3분의 2는 여성들이 요구해 온 복지국가를 유지하는 데 쓰이죠.
하지만 여성들은 한편으론 좌파 정치에 열렬히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남자가 최소 연봉 10만 달러는 돼야 데이트할 수 있어”라고 주장합니다.
더욱이,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들이 수백만 명의 남성을 정치적으로 날려버렸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그 남성들이 원래는 여성들의 기대 수입을 충족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들이 자기 수입의 40%를 세금으로 내지 않아도 됐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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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난 3세대 동안 이어진 사회적 조건화에 대해 말하자면—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자신들이 "원한다고 생각하는 남성상"**을 말했지, 진짜로 원하는 남성상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페미니즘을 수용할 만큼 현대적인 ‘평등주의 남성’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은 감성적이고 여성적인 ‘90년대식 감성남’. 그 후로는 패션에 신경 쓰고 클럽 입장도 도와줄 수 있는 ‘메트로섹슈얼’.
그 다음엔 유기농 커피, 채식주의, 평화주의 같은 '귀여운 사회운동'에 공감해주는 남자. 그 다음은 무조건 민주당, 무조건 힐러리에게 투표해야만 하는 남자. 그리고 이제 도달한 최신 버전, **여성들이 원한다는 남성상 47.9 버전은 ‘남성 페미니스트’**입니다.
그는 여성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는 끔찍한 선택조차도 판단하지 않으며, 그녀의 다자연애, 목덜미 문신, 아버지 없는 아이 셋까지 모두 수용하는 남자입니다.
하지만 여성들이 진짜로 원했던 것은 언제나 같았다: 키 크고, 피부 어둡고, 잘생기고, 몸 좋고, 돈 많은 남자. 그녀를 거의 기절 직전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강렬한 남자.
문제는, 남자들이 그동안 여성들의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였다는 것입니다. 즉, 여성이 말한 그대로 따라 했지만, 여성이 진짜 원하는 대로는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여성들이 얻은 것은 자신들이 요구한 그대로의 남자입니다—나약하고, 감성적이고, 만지면 말랑거릴 것 같은 남자
- A World Without Men: An Analysis of an All-Female Economy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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