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 남성을 탱크로 진압해야한다고 한 좌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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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패널로 얼굴이 알려진 정준희씨가 유튜브 채널 매불쇼에서 한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정 씨는 지난 5일 방송에서 20대 유권자 성향을 언급하며 “설득이 아니라 권력으로 제압해야 한다”라는 발언을 하며 누리꾼들의 뭇매를 맞고 있는 것.

해당 발언은 방송 이후 뒤늦게 확산되며 2030세대 위주로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일부 대학교 재학생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대학교 커뮤니티에는 “청년 세대를 억압 대상으로 보는 발언”이라며 사과를 요구하는 글이 올라왔고, 이에 대한 공감 반응이 이어졌다.

한편 해당 방송을 진행하는 최욱 역시 온라인상에서 일베(극우)를 탱크로 밀어버려야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서 논란을 빚고 있다. 

출처 : 파이낸스투데이(https://www.fntoday.co.kr)

https://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12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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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여 성향 유튜브 시사방송 '매불쇼'의 6·3 지방선거 분석 방송에서 나온 이른바 '탱크'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5일 라이브로 방송된 이 프로그램에서 진행자 최욱 씨는 선거 결과를 분석하던 중,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일부 누리꾼을 겨냥해 "이놈들이 동경하는 게 전두환이잖아. 그 식으로 온라인상에 탱크로 밀어버려야 돼"라고 말했다. 발언 직후 그는 "그 범죄에 대해서만큼은"이라며 대상을 한정했다.

출처 : 펜앤마이크(https://www.pennmike.com)


정준희와 최욱이라는 그 유명한 좌파 인사 나으리들이 20대 30대 남성들을 대상으로 마치 전두환이 그랬듯 탱크로 진압해야한다고 했다.

스타벅스에서 5월 18일에 "탱크데이"라는 이름의 이벤트를 하니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모욕하는 것 아니냐며 좌파들이 길길이 날뛰던 때는 언제고 말이다.

전두환(사실 5.18 당시에는 전두환은 보안사령관이었기에 공식적인 계엄군 지휘계통에는 없었다만)이 광주의 반-군사정부 세력을 진압하면 나쁜 거지만, 더불어민주당이 20대 30대 반-민주당 성향 남성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건 설령 그 전두환과 다를 바 없는 행위더라도 착한 민주-진압인 모양인가?

결국 좌파들 역시도 소요 사태는 방관만 할 게 아니라 처절히 진압해서 안정화를 시켜야 하는 걸 너무 뼈저리게 알고 있는데, 단지 자기네들 편의 진압만 정당화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인 셈이다.

따라서 좌파들에 따르면 이렇다. 실제 정권별 시위 진압 통계를 냉정하게 들이밀어 보면 그 이중잣대의 민낯은 더욱 처참하게 드러난다. 친민주당 진영의 논리대로라면, 노무현 정권 시절 발생했던 2005년 여의도 농민 시위나 2006년 포스코 본사 점거 농성 당시의 유혈 강경 진압은 설령 현장에서 방패와 진압봉에 맞아 전용철·홍덕표 농민, 하중근 노동자 등 3명의 무고한 사망자가 발생했더라도 정당한 국가 공권력의 집행이자 더할 나위 없이 타당한 권력 행사로 둔갑한다. 2006년 평택 대추리 사태 하루 만에 시민 부상자 105명을 쏟아내며 군 병력까지 투입한 무자비한 진압 역시 국가 대업을 위한 '민주적 결단'이라는 면죄부를 스스로 부여하는 식이다.

반면 이명박 정권 시절의 광우병 시위 대응은 어떠한가. 헌법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난 초법적 대처까지는 아니었으며, 오히려 직접적인 육탄 충돌을 피하기 위해 컨테이너 벽(명박산성)을 쌓아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려 했던 방어적 전술이 포함되어 있었다. 수개월간 수십만 명이 대치한 대규모 도심 시위였음에도 불신 등으로 인한 사망을 제외하면 시위 진압 현장 자체에서의 사망자는 0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민주당 진영에게 이명박 정권의 대처는 오직 '시민을 탄압한 사악한 독재'의 프레임으로만 박제된다.

이러한 모순적 행태는 최근의 정치적 사건들로 오면 아예 블랙코미디의 정점을 찍는다. 민주당 진영이 입만 열면 탄핵의 핵심 근거로 삼아 끝내 대통령 탄핵까지 밀어붙였던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건을 보라.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계엄령'이라는, 5공화국 시절에나 볼 법한 엄청난 정치적 파국을 마주한 듯 길길이 날뛰었지만, 막상 뚜렷한 유혈 충돌이나 민간인 사상자는 한 명도 없었고 단 몇 시간 만에 국회 표결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제되었다 (국회 진입 과정에서 일부 직원 10여 명의 타박상 등 경상에 그쳤다).

하지만 이토록 '민주주의의 종말'이라며 울부짖던 이들이 막상 자신들의 정권인 이재명 정부 하에서 2026년 6월 초(6월 4일~7일경)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부정선거 의혹 및 재투표 요구 시위를 마주하자 태도는 180도 돌변했다. 송파구 잠실7동 투표소와 올림픽공원 개표소 일대에 구름처럼 몰려든 시민들을 향해 정부는 전격적으로 수십 명의 경찰 기동대 병력을 투입했다. 이 대치와 강제 해산 과정에서 최소 6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3명이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는 실제적인 물리적 타격이 가해졌다. 자신들을 향한 의혹 제기와 참정권 박탈 분노는 공권력의 이름으로 단호하게 짓밟아 부상자를 내도 정당한 '질서 유지'이고, 상대 정권의 실책은 찰과상 수준이어도 국가 내란이자 대역죄인 셈이다.

그들이 그토록 신성시하는 '인권'과 '생명'의 가치는 공권력의 몽둥이가 누구의 손에 쥐어져 있느냐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든다. 자신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노무현 정권) 발생한 진압 현장의 사망자 3명은 고개를 한 번 숙이는 퍼포먼스로 퉁칠 수 있는 공무상 과실이고, 상대 진영이 잡았을 때 발생한 충돌은 정권 퇴진을 외쳐야 할 반인륜적 폭거가 되는 셈이다. 결국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공권력 집행의 정당성이나 인명의 가치가 아니다. 오직 '우리 편의 진압은 선(善)이고, 저들의 진압은 악(惡)'이라는 유치하고도 오만한 진영 논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러한 위선을 걷어내고 나면, 오히려 역설적인 질문이 남는다. "어쩌면 보수 정권의 진압이야말로 국가의 생존과 안보라는 명확한 '헌법적 정당성'을 품고 있었던 반면, 진보 정권의 진압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와 위선을 가리기 위한 '정치적 거추장스러움'에 불과했던 것 아닌가?" 하는 의문 말이다. 민주당 진영은 자신들이 전유한 '민주화운동'의 틀에서 벗어난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려 들면 법적 처벌까지 운운하며 입을 막으려 들지만, 건국 초기 보수 정권이 마주했던 피비린내 나는 실존적 위기를 복기해 보면 그들이 말하는 '착한 진압'과 '나쁜 진압'의 프레임은 완전히 뒤집힌다.

5.18을 차치하고 보더라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이승만 정권 시기 이루어진 군 내부의 친북·용공 성향 숙군 작업과 뒤이은 무력 진압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1948년 발생한 제주 4·3 사건을 보라.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를 방해하고 제주도를 공산화하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졌던 제주 남로당 무장대의 폭동이 시발점이었다. 섬이라는 지정학적 특성상 남로당 세력과 무고한 제주도민이 뒤섞여 뒤엉키는 바람에 정부 공식 진상조사보고서 기준 2만 5,000명에서 최대 3만 명에 이르는 참혹한 인명 피해를 낳은 비극적인 사건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뒤이어 이 제주 4·3 사건의 진압 명령을 전면 거부하고 군 내부에서 대대적인 항명을 일으킨 국군 제14연대의 여수·순천 사건(1948년 10월 19일)으로 넘어가면 본질은 더욱 명확해진다. 군대가 국가의 명령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켜 여수와 순천 일대를 점령하고 우익 인사들을 학살했던 이 절체절명의 순간, 정부가 진보 진영의 논리대로 "피를 보는 것은 무조건 나쁘다"며 무작정 방관하고 대화만 시도했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돌아왔겠는가? 이승만 정부는 결국 강력한 토벌 작전을 전개했고, 국방부 및 전라남도 통계 기준 약 1만 2,0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대가를 치르며 간신히 호남 지역의 공산화를 막아냈다.

만약 이때 보수 정권의 처절하고 단호한 진압 작전이 없었다면, 군대 내부에 침투한 친북 용공 프락치 세력들을 숙청해 내지 못했다면, 불과 2년 뒤 발발한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체제가 단 며칠이나 버틸 수 있었겠는가? 최전방에서 적과 싸워야 할 군대 내부에서 전선이 무너지기도 전에 연쇄적인 반란과 항명이 터져 나와 남한 전체가 안으로부터 스스로 무너졌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결국 국가의 존망이 걸린 실존적 위기 앞에서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피를 흘리며 단행한 보수의 진압은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뼈아픈 주춧돌이 되었다. 반면, 민생 시위대 앞에 몽둥이를 휘두르고 투표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경찰 기동대로 찍어 누르면서도 자신들은 오직 '선한 민주 정권'이라 자처하는 진보의 공권력 행사는 그저 추악한 권력욕의 배설일 뿐이다. 사상자의 수치가 말해주는 것은 진압의 잔인함이 아니라, 국가를 지키기 위한 책임의 무게와 정권을 지키기 위한 위선의 두께 차이이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거치며 다져진 보수 정권의 '안정화 대처'에 대한 친민주당 진영의 공세는,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 이르러 아예 이성적 판단을 상실한 선전·선동의 극치를 보여준다. 좌파 진영의 주류 사관 속에서 당시 이명박 정부는 마치 중공 덩샤오핑이 탱크로 자국 시민을 무참히 짓밟았던 '제2차 천안문 사태(천안문 6·4 항쟁)'급의 난폭한 독재 정권인 양 묘사된다.

하지만 실제 통계와 팩트를 열어보면 실상은 180도 다르다. 100일이 넘는 장기 시위 기간 동안 이명박 정부는 쇠파이프와 보도블록을 휘두르는 폭력 시위대 인원을 채증하고, 연인원 68만여 명의 경찰력을 동원해 1,470여 명을 입건(구속 43명)하는 수준의 지극히 상식적인 법 집행을 했을 뿐이다. 무자비한 유혈 진압은커녕, 오히려 시위대가 경찰버스 177대를 뒤엎고 불태우며 무전기와 방패 등 2,200여 점의 장비를 파손해 공권력이 처참하게 두들겨 맞는 상황을 인내했다. 진압 현장 자체에서의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이 사건의 진짜 아이러니는 그 뒤에 숨어있다. 시위대가 광화문을 무법천지로 만들던 그 시기,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 올라 촛불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며 두 차례나 국민 앞에 "미안하다"고 허탈하게 고개를 숙였다. 훗날 밝혀진 대로 미국산 소고기에는 그들이 떠들던 광우병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더욱이 근본적인 모순은, 이 시위의 도화선이 된 '한미 FTA'와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개 논의가 이미 노무현 정부 때부터 전면에 내세워 추진되던 국책 과제였다는 점이다. 노무현이 하면 '국익을 위한 개방'이고, 이명박이 그것을 이어받아 체결하려 하자 '국민을 광우병 사지로 모는 매국 행위'라며 온 나라가 미쳐 날뛰었다.

결국 좌파 진영은 자신들이 직접 군경을 패고, 버스를 때려 부수며 대한민국을 마비시켜 놓고는, 시간이 흘러 미국산 소고기가 안전하다는 팩트가 완벽히 입증되자 "자기들이 폭력 시위로 저항해 준 덕분에 더 안전한 소고기를 들여오게 된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아직 광우병의 잠복기가 끝나지 않았다"느니 하는 구차한 변명을 구차하게 이어붙인다.

체제를 전복하려던 무장 폭동을 진압해 나라를 구한 보수의 결단은 '학살'이라 저주하고, 무조건적인 선동에 밀려 고개를 숙인 보수의 인내는 '독재'라 부르는 그들의 사관. 그리고 자신들이 권력을 잡으면 투표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군홧발로 짓밟아도 고결한 '질서 유지'라 포장하는 위선. 사상자의 수치와 역사의 기록이 말해주는 진실은 단 하나다. 국가를 지키기 위한 보수의 진압에는 뼈아픈 책임과 정당성이 있었지만, 권력을 지키기 위한 진보의 진압에는 오직 비겁한 위선과 진영 논리만이 가득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중잣대의 종착지는 국내를 넘어 국제사회, 특히 중공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서 위선의 정점을 찍는다. 앞서 언급한 2008년 광우병 시위 당시 이명박 정부를 향해 '천안문 사태급 독재'라며 악다구니를 쓰던 친민주당 진영 주류는, 정작 진짜 천안문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과 그 체제에 대해서는 기이할 정도로 관대하다 못해 찬양을 보낸다.

실제 1989년 6월 4일 중공의 덩샤오핑이 단행한 천안문 광장 유혈 진압(천안문 6·4 항쟁)의 실상을 보라. 당시 덩샤오핑 정권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과 시민들을 향해 인민해방군 전차와 장갑차를 밀어 넣고 무차별 발포를 감행했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사망자가 200여 명이라 축소 발표했으나, 외교 기밀문서와 국제적십자사 등 객관적 조사에 따르면 최소 1,000명에서 3,000명, 많게는 1만 명 이상의 무고한 시민이 탱크에 짓밟히고 총에 맞아 학살당했다. 덩샤오핑은 철저하게 인민의 눈과 귀를 막고 권위주의적 일당 독재 체제를 공고히 한 뒤, 이른바 '흑묘백묘론'을 앞세워 피로 얼룩진 개발독재식 경제 성장을 밀어붙였다.

대한민국의 자칭 '민주화 세력'이라는 자들이 보이는 진짜 아이러니는 바로 이 대목에서 폭발한다. 그들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의 권위주의적 개발독재는 '영혼까지 부정해야 할 거악'으로 규정하면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자국민을 대량 학살하고 독재를 통해 덩치를 키운 중공에 대해서는 "차이나 머니가 중요하다", "중국 공산당의 효율적인 정치 시스템은 배울 점이 있다"라며 침을 흘린다. 심지어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 같은 나라"라며 자발적으로 머리를 조아리는 사대주의적 행태마저 서슴지 않았다.

그토록 진보 진영이 숭고한 가치로 떠받드는 '민주주의'를 군홧발로 짓밟고 일당 독재를 유지하는 중공의 권위주의 체제는 '위대한 중국의 부상'이라며 호평하고, 한미 FTA라는 국익을 이어받아 정당한 공권력을 집행했던 자국의 보수 정권은 '악마적 독재'로 낙인찍는 이 기괴한 정신분열적 사관. 결국 한국 진보 진영의 역사관과 인권 의식은 보편적 정의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오직 '우리 편과 우리 진영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가'라는 지극히 속물적이고 유치한 잣대로만 작동할 뿐이다. 그들이 외치는 민주주의는 진짜 가치가 아니라, 오직 상대 진영을 타격하기 위해 벼려낸 정쟁(政爭)용 무기이자, 자신들의 추악한 내로남불을 가리기 위한 거추장스러운 가면일 뿐이라는 증거다.

이야기의 종착지에 이르러, 우리는 다시 처음에 던졌던 질문, 즉 정준희와 최욱 같은 진보 진영의 상징적 인물들이 뱉어낸 섬뜩한 폭언으로 돌아오게 된다. 반(反)민주당 성향을 가진 20대, 30대 청년 남성들을 향해 “탱크로 진압해야 한다”라며 서슴없이 공권력의 잔혹한 폭력을 주문하는 그 오만함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과연 위선과 내로남불로 점철된 민주당 진영에 찬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청년 남성들을 짓밟는 행위에, 과거 보수 정권이 가졌던 ‘국가의 존망과 중장기적 안정성 유지’와 같은 숭고한 대의명분이 단 1g이라도 존재하는가? 결코 아니다. 체제 전복 세력을 막아내고 경제적 번영의 기틀을 닦았던 보수의 결단과 달리,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방해가 된다고 자국 청년들을 군홧발로 짓밟으라는 진보의 주문은 국가를 더 큰 혼란과 돌이킬 수 없는 몰락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기 위해 가속페달을 밟는 자해 행위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착각은, 오늘날의 2030 청년 남성들을 과거의 시위대나 무력한 민간인처럼 마냥 바보같이 “날 잡아 잡수” 하고 앉아서 당하기만 할 일방적인 표적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징병제 현실을 들여다보라.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터무니없이 높은(특히나 사지가 멀쩡한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병역에서 면제하고, 고령화 저출산 시기에 남성들에게만 독박병역을 시키는 탓에) 대한민국의 병역판정검사 현역 처분율은 과거(2000년대~2014년) 최고 91%에 달했고, 최근 병역 자원 부족으로 기준을 영끌하듯 완화하면서 현재(2021년~2026년) 다시 86.7%에 육박하고 있다. 즉, 이 나라의 2030 청년 남성은 10명 중 거의 9명이 군 필자이자, 소총 사격부터 전술 행동까지 국가가 공인한 정규 군사 훈련을 완수한 전문 전투 자원들인 셈이다.

게다가 민주당 진영이 청년들을 진압하기 위해 동원할 경찰 기동대와 전·의경, 그리고 군 병력의 핵심 실무 주축 역시 누구인가? 바로 그들이 “탱크로 밟아야 한다”라고 저주를 퍼부은 동세대의 2030 남성들이 절대다수 포진해 있다. 이 제복 입은 청년들이라고 해서 마음속 깊이 민주당에 무조건 찬동하겠는가? 오히려 여전히 존재하는 열악한 군대 처우, 진보 진영의 위선(남성 한정 독박 병역과 과도한 청년 여성 복지정책)에 내심 깊은 반감과 분노를 쌓아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통계적 실상이다.

공권력의 칼자루를 쥔 주체도 청년이고, 억압의 대상도 청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좌파 진영의 대리인들이 앞장서서 청년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유혈 진압의 방화쇠를 당긴다면, 그들이 한창 젊을 때 다져진 압도적인 신체적 체력과 군대에서 체득한 전술이 어떤 방향으로 폭발할지 그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청년 세대의 분노를 이성 없이 무력으로만 누르려 했던 정권은 예외 없이 가장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다. 자신들이 쥔 얄팍한 권력의 힘만 믿고, 국가 방위의 중추인 군필 청년들을 적으로 돌려 탱크로 밀어버리겠다는 민주당 진영의 발상은 위선을 넘어 실로 무지하고도 위험천만한 도발이다. 그들이 끝내 가면을 벗어던지고 청년들을 향해 몽둥이를 들 때, 돌아올 것은 (민주당 진영 스스로 생각하는)선한 민주 정권의 영속이 아니라 체제 자체가 안으로부터 폭발해 무너지는 거대한 파멸의 서막일 뿐이다.

국가를 지키기 위한 보수의 진압에는 뼈아픈 책임과 정당성이 있었지만, 권력을 지키기 위한 진보의 진압에는 오직 비겁한 위선과 진영 논리만이 가득할 뿐이다.

그러니 차라리 우리는 이 시점에서 반쯤 농담을 섞어 대놓고 선언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자신들이 권력을 쥐었을 때의 피비린내 나는 진압은 고결한 '선(善)'이고, 상대가 쥔 공권력의 집행은 사악한 '악(惡)'이라 우겨대는 저 자칭 민주화 세력의 칭얼거림은 법치도, 인권도 아니다. 그것은 주술적이고 비이성적인 '신앙'의 영역일 뿐이다. 그러한 수준 낮은 위선과 비교한다면, 오직 보수우파 진영의 단호한 공권력 집행만이 근대 국가 체제를 수호하는 진정한 '주권자의 결단'으로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일찍이 독일의 법학자 칼 슈미트는 그의 저서 《정치신학》에서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라고 정의했다. 헌법과 법률이라는 통상적인 질서가 마비되고, 국가의 존망이 걸린 실존적 위기가 닥쳤을 때, 기존의 규범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고 공권력이라는 날것의 무력을 행사하여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 내는 결단이야말로 국가 권력의 본질이라는 의미다.

건국 초기 제주 4·3 사건의 참극과 여순사건의 반란 속에서 이승만 정권이 단행한 토벌은 바로 이러한 주권적 결단의 전형이었다. 법 조문이나 평화주의라는 허울 좋은 가치 뒤에 숨지 않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체제를 존속시키기 위해 헌법적 예외상태를 선포하며 피를 묻힌 결단주의적 조치였다. 만약 그때 그 처절한 결단이 없었다면 법질서를 향유할 '국가'라는 무대 자체가 사라졌을 것이다.

반면 진보 진영이 보여주는 공권력 행사는 슈미트가 말한 주권자의 결단과 거리가 멀다. 그들은 평소에는 법치와 인권, 평화를 읊조리며 도덕적 우월감을 뽐내다가도, 자신들의 권력 기반이 흔들리면 어김없이 공권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찍어 누른다. 2005년 농민들의 숨통을 끊어놓고도 사과 퍼포먼스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책임에서 도피하고, 2026년 지방선거에서의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시민들을 경찰 기동대로 진압하면서도 이를 '질서 유지'라 변명하는 행태는 주권자의 고독한 결단이 아니라, 그저 자신들의 위선적 정당성이 깨질까 봐 두려워 휘두르는 '비겁한 신경질'에 불과하다.

결국 정준희와 최욱 같은 자들이 2030 청년 남성들을 향해 "탱크로 진압해야 한다"고 뱉은 폭언은, 그들이 그토록 숭상하는 '민주주의'가 실은 자신들의 권력을 호위하기 위한 거추장스러운 장식품에 불과했음을 자인한 꼴이다.

규범과 위선 뒤에 숨어 제 편의 폭력만 정당화하는 진보의 공권력은 국가를 몰락으로 이끄는 암세포일 뿐이다. 반면 국가의 생존이라는 실존적 가치를 위해 예외상태의 결단을 주저하지 않았던 우파의 진압은, 비록 그 과정이 참혹했을지언정 체제를 지탱해 낸 진짜 주권자의 권위였다. 사상자의 통계와 역사의 이면이 보여주는 진짜 역설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제 저들의 유치한 '착한 진압' 프레임을 비웃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비이성적 신앙 대신, 국가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호랑이의 등에 올라탔던 결단주의적 주권자의 무게를 냉정하게 직시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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