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치 후미야, 한국의 '정통성'과 '내로남불'
한국의 '정통성'과 '내로남불'
오구치 후미야(大口歩也), 2019년 5월 30일
그럼 오늘은 한국 고유의 '정통성'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여기를 처음 방문하셨다면 아래 글을 먼저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주의 사항
· 이 글은 '한일 양국의 가치관 차이'를 초보자의 눈높이에 맞춰 다룹니다.
· 이 블로그 매거진은 '가치관에 선악이나 우열은 없다'는 입장을 바탕으로 합니다.
· 상대방이 법을 어겼다고 해서 우리까지 법을 어겨도 된다는 핑계는 될 수 없습니다.
· 내 상식이 상대방에게도 상식일 수는 없습니다. '남들이 바라볼 때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객관적인 시선을 늘 유지해 주세요.
· 일상생활에서 말과 행동을 조심하듯 이곳에서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예전에도 몇 번 이야기했듯이, 한국은 무엇보다 '정통성'을 으뜸으로 여긴다. 그래서 누가 더 정통한지를 두고 끊임없이 다투는데, 특히 문재인 정권 들어서 이런 경향이 한층 짙어졌다. 이것이 결국 '적폐 청산' 같은 가혹한 정치적 탄압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사실 이는 최근에 생긴 현상이 아니다. 이미 조선 시대부터 비슷한 일이 수없이 되풀이되어 왔다.
또한 한국 사회의 정통성 관념은 성리학의 영향을 깊이 받은 탓에, 스스로 올바르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증명해 보이지 못한다. 대신 상대방의 결함을 부각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간접적으로 입증하려 든다.
하지만 누군가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짓은 본질적으로 상대를 깎아내리는 행동이다. 결국 자기가 옳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상대방을 철저하게 부정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자신의 올바름을 오직 상대방의 결함으로만 증명하다 보니, 한국식 정통성 개념에는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보는 과정이 빠져 있다. 내가 하는 행동이 어떤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셈이다. 이 때문에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의 '내로남불'로 대표되듯, 제 허물은 보지 못한 채 이중잣대를 대는 태도가 사회 전반에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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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통성 싸움
우선 예전에도 몇 번 소개한 적이 있는 츠쿠바(筑波)대학 대학원의 후루타(古田) 교수 글을 먼저 살펴보겠다.
성리학의 그늘이 드리운 박 대통령의 반일 외교 / 후루타 히로시(古田博司) 츠쿠바대학 대학원 교수
산케이신문, 2013년 12월 5일
(1~4페이지)
우리 일본에서는 정당성과 정통성을 명확히 가려내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이게 옳다!" 하며 스스로 올바르다고 믿는 신념이 바로 정당성입니다. 그렇기에 때로는 주류가 아닌 이단에서도 얼마든지 정당한 권력이 태어납니다. 16세기 무렵까지 칼뱅파는 가톨릭 입장에서 분명 이단이었지만, 바로 이 신교 세력에게서 당시 제네바의 새로운 정권이 태어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기에 요즘 중국이 내세우는 방공식별구역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국제 사회의 이단아가 나름의 정당성을 우기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이단이 아니라는 증명≫
반면 정통성은 결이 전혀 다릅니다. "어느 쪽이 옳은가? 바로 이쪽이다!"라는 선택 과정을 거쳐, 간택된 쪽이 정통이 되고 밀려난 쪽은 이단으로 전락합니다.
한국 박근혜 정권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독립 전쟁을 치른 적이 없습니다. 일본의 통치는 자연스럽게 시작되어 자연스럽게 끝났을 뿐입니다. 반면 북한의 김일성은 비록 지는 싸움이었을지언정, 동만주에서 일본 군경을 상대로 일단 싸우기는 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진보 정당이나 전교조 같은 좌파 단체들은 국가의 정통성이 오히려 북한에 있다며 정부를 공격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 이들을 불법 단체로 몰아 법정에 세웠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이 이단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기 위해 틈만 나면 반일을 외쳐대는 것입니다.
미국 곳곳에 위안부 동상과 기념비를 세우는 재미교포들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자신들은 고국을 저버린 이단이 아니라고 한국을 향해 끊임없이 변명하는 셈입니다.
이런 행동은 우리 일본인에게 참으로 민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정통과 이단을 애써 가르려 하지 않습니다. 신토와 불교는 부드럽게 한데 어우러졌고, 오늘날에는 기독교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기도 하니까요. 에도 시대의 유학자들 역시 다른 생각에 무척 너그러운 편이었습니다.
성리학은 남송의 주희가 집대성한 유교 철학으로, 태생적으로 배타성이 매우 강합니다. 당시 북방 민족의 침략을 받던 상황이었던 데다, 주희가 살던 중국 남부의 민중은 도교를 믿고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유교야말로 진정한 올바른 길이라고 외친 것이 바로 성리학의 주장입니다.
성리학은 에도 시대 일본에도 널리 퍼졌습니다. 당시 유학자였던 이토 진사이(伊藤 仁斎) 같은 인물은 이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려 스물아홉 나이에 은둔 생활을 시작했고, 8년이 지나서야 세상 밖으로 나와 서당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학문 끝에 세상에 나온 그 역시 뼛속까지 일본인이었습니다. 제자가 "스승님, 사람의 도리란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그는 "그저 다정한 마음이라네"라고 답했습니다. 이어서 "하늘의 이치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머리 위의 태양 같은 것이지"라고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정통성 콤플렉스의 극치≫
유교를 건국 이념으로 삼은 조선은 서슬이 퍼랬다. 가뜩이나 배타성이 강한 성리학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엄격하게 적용했다. 불교를 철저히 탄압하며 불상의 목을 베고 절을 부쉈으며, 차밭을 말려 죽이고 승려들을 깊은 산 속으로 내쫓았다. 불교식 제사나 법회는 아예 금지해 버렸다. 대신 유교식 제사를 강요하며 3년상을 치르지 않는 백성은 붙잡아다가 곤장을 때렸다. 이단으로 찍히면 얼마나 끔찍한 일을 당하는지 백성들은 뼛속 깊이 깨달았다.
그러니 한국인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역사관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검도와 다도 모두 우리가 원조이고 일본은 아류다. 심지어 공자도 한국인이지 중국인이 아니다"라며 주변 나라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한국 기원설'을 당당하게 주장한다. 그야말로 정통성 콤플렉스가 빚어낸 극치라 할 수 있다.
중국은 애당초 성리학이 체질에 잘 맞지 않았던 탓에, 오히려 양명학이 더 널리 퍼졌습니다. 왕양명(王陽明) 선생에게 한 제자가 의견을 여쭈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어떻게 해서든 고대의 음악을 그대로 복원해 내고 싶습니다." 그러자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으음, 굳이 그럴 필요 없단다. 그것은 전부 이미 자네 마음속에 들어 있으니 말일세."
이것이 바로 양명학의 핵심 명제인 '심즉리(心即理, 마음이 곧 이치다)'입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믿는다면 그것은 곧 실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입니다. 지금 중국이 내세우는 방공식별구역도 결국 중국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먹은 것이니, 그들 논리대로라면 엄연히 실재하는 것이 되어버리는 셈입니다.
자신들만 세상의 중심이라 믿던 그들에게 분노를 터뜨린 이가 바로 훗날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누르하치였습니다. 만주어로 중국은 '니칸(Nikan)국', 조선은 '솔호(Solho)국'이라 부릅니다. 니칸국은 스스로를 '천하의 주인'이라 여겼고, 니칸인들은 해마다 국경을 넘어와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솔호국은 우리 국서의 수령을 거부하며 우리를 깔보았습니다. 만주족의 칸(Hahn)은 2대에 걸쳐 원정을 감행하여 두 나라를 모두 쳐부수었습니다. 본래 용이 그려진 옷(용포)은 시나(중국)의 황제만 입을 수 있는 것이었으나, 청나라는 이를 모든 관리에게 입혀 니칸인들을 모욕했습니다.
≪조선의 전통 '고자질 외교'≫
조선은 명나라가 멸망하고 야만인인 청나라가 들어섰으니, 명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것은 바로 자신들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대명국의 동쪽 울타리(소중화)'라 칭하며, 청나라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문화를 모조리 배척했습니다.
조선 국내에서는 양반들이 성리학의 정통성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었습니다. 성리학의 해석권을 쥐고, 과거 시험의 시험관을 자신들의 정파로 채우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시험에 합격한 이들은 관료가 되었고, 학벌을 형성한 정파는 권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유학자들의 서원은 곤봉으로 무장한 이들을 거느리며 적대 정파의 서원을 파괴하기까지 했습니다. 조선 역사에서는 이를 '당쟁'이라고 부릅니다.
3년상이나 조상 제사 등 성리학적 예법을 실천하는 데만 몰두했던 조선에서는 경세제민(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함)을 고민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유랑민들이 정착한 지방의 수령이 좋은 수령으로 대접받을 뿐이었습니다. 토지에는 현대적인 개념의 소유권이 없었고, 마을과 마을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가 없었습니다. 도성이나 고을의 거리에는 백성들을 위한 제대로 된 상점조차 들어서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이번에는 근대화된 일본이 찾아왔습니다. 남하하는 러시아에 맞서 안전보장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을 통치하고 개발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손을 쓸래야 쓸 수도 없던 이씨 조선의 왕은 신하들에게 모든 것을 내팽개쳤고,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일본에 대해 '고자질'을 해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고자질 외교'처럼, 상급자에게 타인의 험담을 늘어놓는 것을 한국어로는 '이간질'이라고 부르며, 서로 사이를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한국인들은 지금도 매일 국내에서 서로에게 이 짓을 벌이고 있습니다.
중국인도 한국인도 세계사로부터 배우지 않고, 확실히 자국사로부터만 배우고 있다. 그들에게 '비열함'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후루타 히로시)
이 글에서는 먼저 '정당성'과 '정통성'의 차이를 짚고 넘어간다. 정당성은 이단적인 존재를 어느 정도 용납하지만, 정통성은 이단을 전혀 허용하지 않고 철저히 배척하는 개념이다. 조선의 경우 유교 성리학의 영향을 깊게 받은 탓에 이 정통성에 집착하는 성향이 매우 강하게 나타났으며,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 한일 관계 문제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정통성 싸움의 본질이다.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싸움은 실상을 무시한 채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이 명분이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무슨 뜻인가 하면, 전에도 언급했듯이 그들은 옳고 그름을 따질 때 굳이 근거를 찾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처음부터 정해진 올바름이 존재하며, 자신은 언제나 그 올바른 길을 선택하고 있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
※ 독특한 올바름의 개념
그들이 생각하는 올바름은 개념 자체가 독특해서 굳이 어떤 근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이 세상에는 처음부터 단 하나의 정답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자신은 늘 그 올바른 길을 선택하고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만약 서로 다른 올바름이 부딪치게 되면, 어떻게든 상대의 열등함을 꼬투리 잡아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발판으로 삼는다. 이때 쓰는 방법은 왜곡이든 날조든, 혹은 당장의 본질과 전혀 상관없는 뜬금없는 흠집 내기든 상관없다.
일단 상대의 열등함을 지적하는 데 성공하면, 원래 자신이 지적당했던 문제는 어느새 슬그머니 상대방의 잘못으로 둔갑해 버린다.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PvEa1FjkkEw
이러한 독특한 사고방식 속에서는 애초에 자신이 '왜 옳은지'를 증명할 수가 없다. 그저 '옳으니까 옳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처음부터 존재하는 '절대 불변의 진리'와 같은 개념이라, 애초에 증명이라는 과정 자체가 필요 없다.
어떤 면에서는 일신교에서 말하는 전지전능한 신의 개념과도 무척 닮아 있다.
그러니 애초에 이들은 자신이 믿는 올바름을 증명하는 일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무조건 옳다'는 대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서로가 주장하는 '올바름'이 충돌했을 때,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할 길이 전혀 없어진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놔두면 올바름과 올바름이 맞부딪쳐 끝없는 평행선만 달릴 뿐이며, 애초에 사회 질서조차 유지할 수 없다. 여기서 그들이 찾아낸 해결책이 바로 '상대의 열등함 지적하기'다.
자신의 올바름을 증명하기는 어렵지만, 상대의 열등함을 증명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으므로 샅샅이 뒤지다 보면 반드시 허점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를 빌미 삼아 "상대가 이만큼 잘못되었으니, 결국 내가 옳다"라며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셈이다.
어떤 면에서는 꽤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다.
※ 멸시가 전제된 자민족 중심주의
한국의 자민족 중심주의는 매우 특이한 구조를 띤다. 보통의 자민족 중심주의가 자기 집단의 우월감이 지나치게 커진 나머지 다른 민족이나 인종을 깔보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한국인의 가치관은 오히려 '타자를 멸시함으로써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정반대의 과정을 거친다.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StPglNFdHxE
그리고 나는 '상대의 열등함을 꼬투리 잡아 유도해 내는 자신의 올바름'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그토록 집착하는 '정통성'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조선 중기에 일어난 '예송논쟁'이라는 갈등이다.
길조를 뜻하는 황금돼지의 해, 격동의 역사 속에서도 비교적 평온했던 시기 - 동아일보, 2019년 1월 2일 자
【분수대】 예송논쟁 - 중앙일보, 2004년 8월 2일 자
스마트폰 버전
https://s.japanese.joins.com/JArticle/54432
※ 참고로 중앙일보 스마트폰 버전은 웹 주소의 'https://' 바로 뒤에 's.'만 덧붙이면 되는 모양이다.
이것은 1659년과 1674년에 일어난 일로, 그들의 가치관이 어떤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차남으로 왕위에 오른 효종의 정통성을 둘러싸고, 효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와 그 왕비가 숨졌을 때 각각 상복을 얼마 동안 입어야 하는지를 두고 벌어진 치열한 정치 투쟁이다.
효종(17대 왕)과 효종비가 세상을 떠난 후, 선왕인 인조(16대 왕)의 계비(인조의 두 번째 부인)가 얼마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는지를 두고 조정 안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 다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결국 피가 피를 부르는 처절한 당파 간의 보복전으로 치달았던 사건이다.
사실 상복을 얼마 동안 입느냐 하는 문제는 이 싸움의 진짜 본질이 아니었다.
문제는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서인 세력을 향해 권력에서 밀려난 남인 세력이 '너희의 논리는 격이 떨어진다'며 딴지를 걸고 나선 데서 시작되었다. 서인이 정한 상복 기간을 남인이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싸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결국 누가 진짜 정통성을 가졌는지를 두고 벌이는 생존 게임으로 번졌다. 그 결과 양쪽 모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유배를 떠나는 비극적인 파국을 맞이하고 말았다.
결국 권력을 잃은 쪽이 다시 자리를 되찾고 라이벌을 끌어내리려고 선왕의 죽음을 빌미로 삼아 꼬투리를 잡은 셈이다. 어느 귀족 사회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권력 투쟁이지만, 스스로 '올바르다'고 믿는 데 별다른 근거가 필요 없는 그들의 가치관이 문제를 키웠다. 자신의 정통성을 증명하려면 끝없이 상대의 격이 떨어짐을 지적하고 깎아내릴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가 결국 서로를 죽고 죽이는 처참한 살육전으로 이어지고 만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은 조선 말기에도 되풀이되었다.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 끝없는 권력 싸움을 벌였던 명성황후는 그 과정에서 친동생이 폭사당하는 비극을 겪었고, 결국에는 국정을 도탄에 빠뜨렸다는 이유로 암살당하고 만다.
(어찌 된 일인지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암살범 중에 일본인이 끼어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치 명성황후를 일제의 음모에 희생된 비운의 여주인공처럼 떠받들고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 사건을 뒤에서 조종한 몸통은 흥선대원군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었다.)
이런 파국이 일어나는 이유는 한마디로 '올바름'을 증명하는 데 객관적인 근거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오직 상대의 잘못을 들추어내야만 나의 옳음을 증명할 수 있는 구조다 보니, 자신의 정통성을 입증하려 끝없이 꼬투리를 잡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는 상대를 완전히 짓밟아 없애는 길밖에 남지 않게 된다.
상대의 격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는 행위는 결국 그 존재 자체를 통째로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이토록 치열한 다툼 속에서도 정작 자신들의 행동은 단 한 번도 되돌아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의 정통성은 오로지 상대의 결함을 들추어내야만 증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오늘날의 한국도 마찬가지
자신의 정통성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의 결함을 들추어내고, 나아가 상대의 존재 자체를 통째로 부정해 버리는 그들만의 독특한 관습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도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예를 들어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아마도 친북 성향의 좌파 진영이 집권 여당 자리를 지키는 한, 이들은 줄곧 감옥에 갇혀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 밖에도 다음과 같은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사설] 판사를 협박하는 여당과 침묵하는 대법원장 (조선일보, 2019년 2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측근인 김경수 경상남도지사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판사가 여당 의원들로부터 협박이나 다름없는 말을 들은 데 이어, 불과 한 달 뒤에는...
[사설] 김경수 지사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판사를 기소한 검찰 (조선일보, 2019년 3월 6일)
이 판사를 검찰이 기소하게 만들었다.
그 밖에도 다음과 같은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칼럼] 2년 전 문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읽어보니 '거짓말 성찬'이었다 (조선일보, 2019년 5월 12일)
기사에서는 "수사를 받은 전 정권 관계자가 110명을 넘어섰다. 이들에게 선고된 징역형의 기간을 모두 합하면 130년이 넘는다고 한다. 또한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1명은 모든 국가기관으로부터 전방위적인 공격을 받은 끝에 결국 세상을 떠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라며 당시의 참담한 상황을 짚고 있다.
또한 이에 더해...
[칼럼] 한국에서는 국익보다 우선되는 정치적 이념 (조선일보, 2019년 4월 14일)
전 정권의 정책에 관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지일파(知日派) 관료들이 줄줄이 좌천되었고, 이로 인해 정상적인 업무 수행조차 차질을 빚고 있는 지경인 듯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현재 한국에서는 적극적으로 일을 하려는 관료가 존재하지 않으며, 다들 자신에게 불똥이 튀지 않기만을 바라며 오로지 몸을 사리는 데만 급급한 실정이다. 게다가...
[사설] 온갖 외교 참사에도 책임지지 않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선일보, 2019년 5월 29일)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들은 부하 직원들이 아무리 큰 비위나 문책 사유를 일으켜도 일절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는 불공평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공방은, 방금 전 소개한 조선 시대 예송논쟁 속 서인과 남인의 싸움과 완벽하게 닮은꼴이다. 양측이 서로 정통성을 쥐겠다며 다투고, 상대 정파에 속한 사람들을 차례차례 유배 보내던 과거의 역사가 오늘날 그대로 되풀이되는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정통성을 입증하려고 전 정권과 자유한국당 같은 국수주의 계열의 보수 세력을 통째로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cnqjhhdxZBM
3. 일상에 스며든 ‘내로남불’
이러한 태도는 일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일본을 상대로 자신들의 정당성, 즉 정통성을 입증하려 들기 때문에 결국 일본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문제, 욱일기 논란, 일본해 명칭과 타케시마 영유권 분쟁, 심지어 한국 기원설 소동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결국 자신들의 정통성을 입증하기 위해 일본을 부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의 대표적인 지일파 언론인으로 꼽히는 조선일보 선우정 기자의 칼럼만 봐도 이러한 흐름이 고스란히 읽혀진다.
[칼럼] 타카하시 토오루(高橋亨)의 주장을 여전히 외면하지 못하는 한국인의 당파성
조선일보 | 선우정 논설위원, 2016/04/03
이 글은 메이지 시대에 조선학을 연구했던 학자 타카하시 토오루에 관한 내용이다. 선우정 기자는 글 내내 그를 향해 ‘열등성 지적’을 이어가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의 주장 모두를 일일이 언급할 가치는 없다. 거짓과 모순, 왜곡된 서술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또한 설령 당시에는 그랬을지언정, 이후 근대화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성공적으로 떨쳐낸 악습도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우정 기자의 생각과 달리 타카하시 토오루는 딱히 조선을 얕잡아 보지도, 식민 지배를 목적으로 조선을 분석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조선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 했을’ 뿐이다.
그는 이처럼 상대의 ‘열등성’을 낱낱이 지적하며 자신의 정통성을 입증하고 나서야, 비로소 본론인 조선의 당파성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고는 “하지만 지금도 도저히 부정하기 힘든 악습 하나가 한국인에게 끈질기게 매달려 있다”라며, 그것이 바로 “분열적인 민족성”이라고 꼬집는다.
이는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그들의 특징과도 일맥상통한다. 타카하시 토오루는 “가문과 계급, 신앙과 이익을 바탕으로 이토록 쉽게, 그리고 강고하게 당파를 만들어내는 이들을 조선인 말고는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끝없이 갈래를 나누어 서로를 끌어내리는 이러한 사회상은 오늘날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선우정 기자는 이 당파성 문제를 꺼내기 위해 글 내내 타카하시 박사의 결점을 들춰내며 자신의 정당성을 과시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라거나 “타카하시의 악령을 붙잡아 두고 있는 것은 일본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상대의 열등함을 증명하려는 시도를 집요하게 이어갔다.
결국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아주 단순하다. “조선인은 틈만 나면 편을 갈라 싸우니, 이 고질병을 고쳐야 한다”라는 지적일 뿐이다. 하지만 고작 이 한마디를 꺼내기 위해, 글 내내 타카하시 토오루의 결점을 집요하게 들춰냈던 셈이다.
자신의 정통성을 입증하려고 타인의 열등함을 끄집어내고, 이것이 결국 격렬한 파벌 싸움으로 이어지는 조선의 오랜 악습. 선우정 기자는 정작 그 악습을 비판하면서도, 자신 또한 똑같은 굴레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일 관계에서 끊임없이 갈등이 불거지는 원인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선우정 기자의 이러한 행태는 요컨대 ‘내로남불’, 즉 오늘날 한국 사회에 만연한 이중잣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정작 자신은 이 모순을 깨닫지 못한 채, 타인을 향해 “그러면 안 된다”라며 훈수를 두고 있는 꼴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오직 타인의 열등함 속에서만 찾으려 하기 때문에, 정작 눈앞의 진실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객관성이 결여된 이유나 ‘내로남불’이라는 고질병은 전부 여기에서 비롯된다. 언제나 타인만 주시할 뿐 정작 자신은 돌아보지 않으며, ‘나는 무조건 옳다’라는 전제를 깔고 사안을 논한다. 그러니 늘 이중잣대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러한 이중잣대는 남이 저지를 때는 ‘상대의 결점’으로 도드라져 아주 잘 보이지만, 자신의 허물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순이 극에 달한 결과가 바로 다음과 같은 모습이다.
문 대통령 “일본과 관계 발전시켜야”… 역사 문제 정치적 이용은 “유감”
한일 간의 연이은 갈등 속에서 문 대통령이 “양국 관계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도록 서로 지혜를 모아야 하거늘, 최근 일본이 이러한 문제를 자국 국내 정치에 이용하며 갈등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어 대단히 유감스럽다”라고 발언한 바로 그 사례이다.
이 또한 선우정 기자의 사례와 본질적으로 완전히 궤를 같이한다. 그들은 타인의 결점은 기가 막히게 찾아내면서도, 특유의 왜곡된 가치관 탓에 정작 자신들의 ‘내로남불’은 전혀 보지 못한다. 그렇기에 문재인 대통령 역시 진심으로 저렇게 믿고 발언한 것이다.
결국 한일 관계를 둘러싼 모든 갈등은 이렇듯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기에, 문제가 풀리기는커녕 갈수록 걷잡을 수 없이 꼬여만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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