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자유라는 이름의 버퍼(Buffer)
정치적 자유라는 이름의 버퍼(Buffer) 근대 정치철학이 정치적 자유를 그 자체로 지고선(至高善)인 궁극적 목적으로 상정하는 순간, 우리는 자유가 선험적으로 유용하며 총량이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도그마적 전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그러나 이 같은 본질주의적 전제를 과감히 걷어내고, 자유를 가치중립적인 기능적 체계의 일부로 재규정한다면 정치 체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히 전환된다. 컴퓨터 시스템 아키텍처에서 '버퍼(Buffer)'는 초고속 연산 장치인 CPU와 상대적으로 데이터 전송 속도가 느린 메인 메모리 혹은 저장장치 사이에서, 하드웨어 간 클럭 주파수의 현격한 격차로 인해 발생하는 병목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개입하는 임시 데이터 완충 공간이다. 버퍼는 그 자체로 영속적인 데이터 보존을 목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이질적인 두 물리 체계가 맞물릴 때 발생하는 데이터 손실과 제어 흐름의 붕괴를 방지하여 시스템 자원의 전체 최적화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적 모듈에 불과하다. 이러한 컴퓨터공학적 메커니즘을 대입하면, 정치적 자유 역시 영원불멸의 천부인권이 아니라 체제 변동이나 권력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급격한 정치적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고안된 가변적인 임시 충격 완화 장치로 재해석할 수 있다. 즉, 자유는 도덕적 지향점이 아니라 통치 공학적 필요에 따라 탈부착이 가능한 하나의 '소프트웨어 모듈'이며, 전이(Transition) 과정이 완료되어 물리적 정당성의 버퍼가 비워지거나 체제의 안정성이 확립되는 순간, 시스템의 효율성을 위해 언제든 중앙 권력으로 다시 회수(Flush)될 수 있는 한시적 자원이 된다. 자유를 한시적 완충재로 규정하는 순간, 존 로크와 공리주의로 이어지는 영미식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 전통과의 단절은 필연적이 된다. 영미식 전통에서 자유는 국가나 법률에 의해 사후적으로 승인되는 권리가 아니라, 국가 성립 이전부터 인간에게 내재하는 양도 불가능한 천부적 자연권(Na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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