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번햄, 지배계급의 동향
제임스 번햄, 『마키아벨리주의자들: 자유의 수호자들』
제3부 모스카: 지배계급론
IV 지배계급의 동향
모든 지배계급에는 두 가지 ‘원리’와 두 가지 ‘경향’을 구분할 수 있다고 모스카는 말한다. 이는 지배계급이 발전해 나가는 기본 법칙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원리와 경향이 더 강하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각 지배계급의 성격도 크게 달라진다.
모스카는 ‘전제적 원리’와 ‘자유주의적 원리’를 구분한다. 이 두 원리는 무엇보다 정부 관료와 사회 지도자를 어떤 방식으로 선출하는지를 규정한다.
“어떤 정치 조직에서든 권력은 정치적·사회적 위계의 위에서 아래로 전달되거나(전제적 원리), 아래에서 위로 전달된다(자유주의적 원리).”(『지배 계급』 394쪽)
어느 원리가 적용되든 사회가 지배하는 소수와 지배받는 다수로 나뉜다는 일반 법칙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 자유주의적 원리 역시 대중이 실제로 통치한다는 뜻이 아니라, 지도자를 선출하는 방식에 특정한 형태를 부여할 뿐이다.
또한 현실에서 어느 한 원리만 순수하게 작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아마 전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지배계급에서는 두 원리가 함께 작동하고, 그중 하나가 상대적으로 우세한 위치를 차지한다.
절대군주제나 전제정은 모든 직위가 형식적으로 군주의 임명에 좌우된다는 점에서 전제적 원리에 가장 가까운 사례다. 반대로 역사상의 특정 시기 아테네와 같은 소규모 도시국가는 모든 공직자가 아래로부터 선출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적 원리에 매우 가까웠다. 물론 그때도 투표권은 제한된 집단에게만 주어졌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현대 대의정부에서는 두 원리가 모두 활발하게 작동한다. 관료제의 대부분과 사법부의 상당 부분, 특히 연방 사법부는 전제적 원리를 보여주는 사례다. 반면 대통령과 연방의회 의원들은 자유주의적 원리에 따라 선출된다.
각 원리는 실제로 나름의 장점과 단점을 드러낸다. 두 원리 가운데 역사적으로 훨씬 더 널리 나타난 것은 전제적 원리였으며, 이에 대해 모스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처럼 서로 물질적·지적 교류가 거의 없었던 다양한 문명의 민족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정치 체제라면,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의 정치적 본성에 부합한다고 보아야 한다. … 전제정은 권력의 정당성을 단순하고 명확하며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설명한다. 서열과 상하관계가 없는 인간 조직은 존재할 수 없다. 어떤 위계질서든 누군가는 명령하고 누군가는 복종해야 한다. 또한 인간은 본성상 많은 사람이 지배하기를 원하고, 거의 모든 사람은 복종하도록 만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권위를 정당화할 근거를 제공하고,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복종을 납득시키는 제도는 충분히 유용한 제도가 될 수 있다.”(『지배 계급』 397쪽)
모스카는 또 전제적 원리가 자유주의적 원리보다 사회에 더 큰 안정성과 더 긴 존속 기간을 가져다주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전제정이 제대로 작동하면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가장 유능한 인물을 선별해 국가의 여러 임무를 맡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전제정은 사회의 다양한 활동과 역량이 자유롭고 충분하게 발전하도록 허용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전제정 아래에서는 그리스나 서유럽의 비교적 수명이 짧았던 자유주의 체제에서 나타난 것만큼 활발한 문화적·지적 활력이 꽃핀 적이 없었다.
또한 전제 군주와 그 측근이 지도자를 선발하는 과정에서는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보다 편애와 개인적 호불호가 판단을 대신하기 쉽다. 그 결과 후보자들은 아첨과 맹목적인 복종으로 권력자의 환심을 사려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반대로 자유주의적 원리는 전제적 원리보다 사회의 다양한 잠재력이 발전하도록 더욱 자극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제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폐쇄적인 권력 집단의 형성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집단이 형성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전제정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려면 한두 명의 유력한 인물의 지지만 얻으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그들의 선한 감정이든 악한 감정이든 모든 욕망을 교묘히 이용하면 된다. 반면 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적어도 지배계급의 제2계층 전체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이들은 반드시 유권자 집단 자체를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여론을 형성하고 유권자의 행동을 이끄는 지도자 집단의 핵심을 구성한다.”(『지배 계급』 410쪽)
자유주의 체제가 폭넓은 기반 위에 세워질수록, 다시 말해 선거권이 널리 확대되거나 보통선거가 시행될수록, 고위 공직을 노리는 후보자들은 대중의 미성숙한 감정과 본능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지지를 얻으려 하게 된다.
“출신이 어떠하든 대중의 호감을 독점하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쓰는 수법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의 이기심과 어리석음, 사치스러운 생활을 과장해서 부각하고, 실제든 허구든 그들의 악행과 잘못을 끊임없이 비난한다. 그러면서도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모든 사회적 특권을 없애고, 즐거움과 고통까지 완전히 평등하게 나누어야 한다고 믿는 대중의 소박한 정의감에 부응하겠다고 약속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선동의 표적이 되는 세력도 이에 맞설 때 똑같은 수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그들 역시 결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남발한다. 또한 대중에게 아첨하고, 가장 원초적인 본능에 호소하며, 편견과 탐욕을 부추기고 이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지배 계급』 412쪽)
모스카가 구분한 ‘귀족적 경향’과 ‘민주적 경향’은 앞서 말한 전제적 원리와 자유주의적 원리의 구분과는 별개의 개념이다. 여기서 귀족적 경향과 민주적 경향은 지배계급의 새로운 구성원을 어디에서 충원하느냐를 가리킨다.
“‘민주적’이라는 용어는 하층계급 출신 인물들을 지배계급에 끌어들여 그 구성을 새롭게 하려는 경향을 가리키는 데 더 적절하다. 이 경향은 모든 정치 조직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드러나든 잠재되어 있든 항상 존재한다. 반대로 ‘귀족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향 역시 언제나 존재하며 강도만 달라질 뿐이다. 이는 특정한 역사적 시점에 권력과 사회적 지배를 장악한 계급의 후손들에게 그 지위와 권력을 계속 유지시키려는 경향이다.”(『지배 계급』 395쪽)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전제정이면서도 민주적 경향을 강하게 띠는 체제가 있을 수 있고, 실제로 그런 사례도 적지 않았다. 반대로 자유주의 체제이면서도 귀족적 성격이 강한 경우도 있다.
전자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가톨릭교회다. 가톨릭교회는 조직 운영 면에서는 거의 완벽한 전제적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성직자 조직의 새로운 구성원은 언제나 일반 대중 가운데서 충원해 왔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성직자의 독신 의무가 교회로 하여금 이러한 민주적인 충원 방식을 유지하도록 만든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가톨릭교회가 오랫동안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해 온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근대 영국은 여러 세대에 걸쳐 여러 측면에서 자유주의 체제를 유지했지만, 다양한 제도를 통해 지배계급의 구성에서는 귀족적 연속성을 유지했다. 고대의 많은 도시국가도 마찬가지였다. 시민 모두에게 선거권을 폭넓게 부여했더라도, 공직에 출마할 자격은 제한해 소수의 가문이 계속 권력을 장악하도록 만들었다.
미국에서는 누구나 민주주의 이념 속에서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에 민주적 경향의 장점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익숙하다. 반면 그 단점이나 귀족적 경향이 지닐 수 있는 장점은 상대적으로 덜 논의된다.
우선 가족이라는 제도가 존속하는 한,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도 가족이 사라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한, 귀족적 경향 역시 어느 정도는 계속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것 또한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든 이를 똑같이 도울 수도 없고, 모두를 똑같이 성공하게 만들 수도 없다. 그래서 대체로 자신과 특별한 유대가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려는 경향을 보인다.
혁명 운동은 대개 혈통에 따른 모든 특권을 없애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막상 권력을 잡고 나면 귀족적 경향은 어김없이 다시 나타난다. 결국 혁명 속에서도 새로운 지배집단이 형성되고 굳어지게 된다.
모스카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한편으로는 지배계급의 구성원이나 사회적 위계의 높은 자리를 놓고 경쟁할 때, 혈통이 주는 모든 이점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공동체 전체에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모든 사람이 완전히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게 되면, 그 경쟁은 광적인 수준으로 격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 사회 전체에는 별다른 이익도 없이, 개인적 목적을 위해 막대한 에너지만 낭비하게 된다.
반대로 지배계급이 권위를 유지하고 제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어떤 지적 능력, 특히 도덕적 자질은 사회 전체에도 유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자질이 충분히 길러지고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같은 가문이 여러 세대에 걸쳐 비교적 높은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지배 계급』 419쪽)
그러나 실제로는 귀족적 경향과 민주적 경향 모두 모든 사회에서 언제나 함께 작용한다.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우세해지는 것은 대개 사회가 급격한 변화를 겪거나 혁명적 격변을 경험하는 시기, 또는 그 여파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James Burnham, The Machiavellians: Defenders of Freedom (Endeavour Media Ltd, 2019), pp. 74–78.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