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번햄, 마키아벨리즘의 전통

제임스 번햄, 『마키아벨리주의자들: 자유의 수호자들』


제3부 모스카: 지배계급론


I 마키아벨리즘의 전통


마키아벨리는 거대한 사회적 격변기를 살아가며 글을 남겼다. 당시는 봉건 사회의 경제와 정치 체제, 문화가 초기 자본주의 사회로 넘어가던 전환기였다. 이 혁명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일어났기에 시작과 끝을 정확한 날짜로 무 자르듯 나눌 수는 없다.


하지만 마키아벨리가 살아 생전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한 것만은 분명하다. 신대륙의 발견과 최초의 국제 주식거래소 등장, 종교개혁이 이 시기에 일어났다. 튜더 왕조가 영국의 기틀을 다진 것도, 헨리 8세가 궁정의 핵심 요직에 부르주아 대표들을 처음으로 등용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우리 역시 거대한 사회적 격변기를 통과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저물고, 내가 다른 글에서 '경영자 사회'[1]라고 정의한 새로운 체제로 이행하는 혁명의 시대다. 수백 년 동안 방치되거나 오해받고, 혹은 그저 무비판적으로 되풀이되기만 하던 마키아벨리즘의 전통이 최근 몇십 년 사이에 눈에 띄게 부활한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 시대가 마키아벨리의 시대와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이다. 뛰어난 작가들의 깊이 있는 사유와 연구 덕분에, 마키아벨리즘은 이제 더욱 깊고 넓게 발전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극명하게 드러났다. 현대 마키아벨리주의자들의 핵심 연구 중 상당수가 이 전쟁의 직전 시기에 이루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에타노 모스카(Gaetano Mosca)는 이미 1883년 첫 저서인 《통치론과 의회정치(Teorica dei governi e governo parlamentare)》를 마무리하며 자신의 사상을 상당 부분 정립했다. 하지만 그의 원숙하고 완성된 사상은 전쟁의 경험을 고스란히 반영하여 개정 증보한 1923년판 《정치학 원론(Elementi di scienza politica)》에 담겨 있으며, 이 책이 바로 영어로 번역된 《지배계급(The Ruling Class)》[2]의 바탕이 되었다. 조르주 소렐의 정력적인 활동은 전쟁 기간 내내 이어지다 1922년 그의 사망과 함께 막을 내렸다. 로베르트 미헬스(Roberto Michels)와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 역시 전쟁이 터질 무렵 자신들의 대표작을 집필하고 있었다.


사회적 안정을 누리는 평상시에는 권력 투쟁이 숨겨져 있거나 은밀하고 완곡한 형태로 나타나곤 한다. 하지만 혁명적 전환기에 이르면 그 싸움은 노골적이고 강압적인 모습을 띤다. 마키아벨리즘의 본질은 정치, 즉 권력을 둘러싼 투쟁을 다루는 데 있다. 따라서 마키아벨리즘이 처음 태동한 시기나 다시금 고개를 든 시기가 모두 사회적 격변기와 맞물린다는 점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혁명이 가져온 위기는 사람들, 혹은 최소한 일부 지식인들로 하여금 평온한 시절에 통용되던 정치 사상과 학문에 회의를 품게 만든다. 그것이 실상은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그럴듯한 변명이거나 미개척된 미래를 향한 유토피아적 환상에 불과함을 깨닫기 때문이다. 결국 격변의 소용돌이는 이들을 권력의 냉혹한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속한 세계의 본질을 더 명확히 이해하고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이 세계를 어떻게 통제하고 움직일 수 있을지 그 길을 찾고자 한다.


현대 마키아벨리즘은 마키아벨리 본인의 사상보다 확실히 강력한 강점을 지니고 있다. 과학적 전통을 이어받고자 하는 우리 모두가 그렇듯, 모스카와 미헬스, 파레토 역시 과학적 방법론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반면 마키아벨리는 과학이 태동하던 시기에 글을 썼다. 그의 분석이 과학적이었던 것은 의도된 기획이라기보다 본능과 직관에 따른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마키아벨리의 수많은 통찰은 글 속에 암시적으로만 녹아 있다. 그 자신조차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을 본질을 내가 지나칠 정도로 명쾌하게 정리해 준 감이 있을 정도다. 마키아벨리는 정치라는 영역에서 기술과 과학을 한데 뒤섞어 다루었다. 그의 과학적 결론들은 대개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지침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부산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대 마키아벨리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치가 기술로서 가지는 성격과 과학으로서 가지는 성격의 차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르네상스 이후 학자들이 끈기 있게 쌓아 올린 방대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헤아릴 수 없는 자산까지 마음껏 활용하고 있다.


가에타노 모스카는 모든 마키아벨주의자와 마찬가지로 역사를 일원론적 관점으로 바라보기를 거부한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단 하나의 원인으로만 설명하려는 시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기독교 초기 세기에 등장한 최초의 역사철학들이 세상의 모든 일을 오직 '신의 뜻'이라는 하나의 원리로만 설명했던 시절부터, 이러한 일원론적 이론은 수없이 반복되어 왔다.


모스카는 그중 세 가지 이론을 구체적으로 파고든다. 기후나 인종, 혹은 경제적 생산 방식의 차이가 역사의 흐름을 결정짓는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기후 결정론', '인종 결정론', 그리고 '경제적 유물론'이다. 그가 이 이론들을 배격하는 이유는 일원론에 대한 어떤 선입견이 있어서가 아니다. 일원론자들이 애써 외면하고 싶어 하는, 아주 단순하고도 결정적인 이유 때문이다. 바로 이 이론들이 역사적 사실과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모스카는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역사에 해박했다. 그렇기에 기후가 기온이나 강수량에 따라 민간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세간의 통념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쉽게 증명해 낸다. 거대한 제국이나 민주주의, 용맹함이나 나태함, 예술이나 노예제 등은 남과 북, 추위와 더위, 건조함과 습함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 모든 땅에서 나타났다. 인종 결정론 역시 마찬가지다. 애초에 '인종'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물학적으로 전혀 정밀하지 못하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인종 결정론과 기후 결정론은 모스카가 처음 글을 쓰던 19세기 말에 큰 인기를 누렸다. 오늘날에는 나치의 인종주의 학파를 제외하면 이를 따르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경제적 유물론'이나 '경제 결정론'은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이론들 역시 역사적 사실이라는 시험대를 통과하지 못한다. 로마 제국의 붕괴, 기독교의 발흥, 이슬람의 확장처럼 인류사에서 가장 거대하고 중대한 사회적·정치적 사건들은 경제적 생산 방식의 이렇다 할 변화 없이 일어났다. 따라서 생산 방식이 사회 변화를 이끄는 유일한 원인일 수는 없다.


이러한 일원론적 관점을 비판한다고 해서 모스카가 또 다른 단일 원인을 내세우려 하거나, 기후·인종·생산 방식 같은 요인들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력을 통째로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기후는 당연히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 지구상에는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곳도 있고, 너무 척박하거나 건조해서 높은 수준의 문명을 유지하기 힘든 지역도 존재한다. 물론 활력 넘치는 사회는 불리한 자연조건을 극복해 내기도 하지만, 강수량 감소가 대규모 민족 이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경제적 생산 방식의 변화 역시 역사적 과정에 개입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새로운 도구나 기계의 발명, 새로운 노동 조직 방식, 새로운 소유 관계의 등장은 사회 질서 전반에 거대한 파장을 몰고 온다. 심지어 인종적 차이도 정치·사회적 구조에 얼마든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무기의 등장이나 전투 방식의 변화 같은 군사적 요인, 혹은 종교와 사회적 신념의 변화 등 수많은 다른 환경들도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모스카 자신은 역사적 인과관계에 있어 이른바 '상호 의존' 이론을 옹호한다. 역사의 변화를 결정짓는 요인은 다양하며, 그중 어느 하나만을 절대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관점이다. 이 요인들은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 영역의 변화가 다른 영역에 파장을 일으키고 이것이 다시 원래의 영역으로 되돌아오는 상호작용을 반복한다.


그가 일원론적 역사관을 비판한 이유는 역사에 대한 추상적인 접근을 깨뜨리기 위함이었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야만 한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특정한 이론적 틀에 끼워 맞추는 대신 각 문제의 구체적인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자는 취지다. 모스카가 보기에 역사적 일원론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바라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일 뿐이었다.


모스카의 주된 관심사는 정치다. 그는 정치 현상의 역사적 사실들을 비교 분석하는 방식으로 '정치학'이라는 과학적 학문을 정립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다만 현 단계에서 정치학이 도출할 수 있는 일반적 결론이나 실천적 지침의 수준에 대해서는 무척 겸손한 태도를 취했다.


“인간은 자연의 어떤 힘도 만들어내거나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그 힘이 어떻게 작용하고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연구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활용할 수는 있다. 농업, 항해, 기계공학은 모두 이런 원리에 따라 발전해 왔다. 현대 과학이 이들 분야에서 거의 기적에 가까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방법을 따랐기 때문이다.


사회과학도 다를 이유는 없다. 실제로 정치경제학은 이미 같은 방법을 적용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사회과학 전반에서는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 훨씬 크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모든 인간 집단에 공통으로 작용하는 심리 법칙, 혹은 지속적인 성향은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그 작동 방식을 밝혀내기가 더 어렵다. 게다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일은 훨씬 더 어렵다. 인간은 물리학이나 화학, 식물학의 현상은 비교적 쉽게 연구할 수 있지만, 자신의 본능과 욕망을 이해하는 일에서는 훨씬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설령 개인이 이러한 연구를 통해 과학적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성과를 바탕으로 거대한 인간 사회의 정치적 행동을 바꾸는 데까지 성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매우 불확실하다.”

(『지배계급』, 40~41쪽)


마키아벨리주의자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진실을 밝히는 데 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성과조차 과장하거나 대중을 선동하는 식으로 내세울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 주석 -

[1] 이 이론은 1941년 퍼트넘 출판사(Putnam & Co. Ltd.)에서 출간한 《경영자 혁명(The Managerial Revolution)》에서 다루었다.


[2] 이 책은 아서 리빙스턴이 서문을 쓰고 편집과 교정을 맡았으며, 해나 칸이 번역하여 1939년 뉴욕과 런던의 맥그로힐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장에 수록된 모든 인용구는 출판사의 흔쾌한 허락을 받아 해당 판본을 사용했다. 페이지 번호는 책 제목을 생략하고 단독으로 표기한다. (모스카는 1858년에 태어나 1941년에 세상을 떠났다.)


James Burnham, The Machiavellians: Defenders of Freedom (Endeavour Media Ltd, 2019), pp. 59–63.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주권(主權), 책임, 소유: 공적 이익과 사적 이익 일치의 방법론에 관하여

정치적 자유라는 이름의 버퍼(Buffer)

일본천황 황위 계승권 개정안 통과, 여성 천황 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