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번햄, 지배 계급
제임스 번햄, 『마키아벨리주의자들: 자유의 수호자들』
제3부 모스카: 지배계급론
II 지배 계급
마키아벨리식 정치 분석의 특징은 '반(反)형식주의'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형식'이란 앞서 단테의 『제정론』을 논하면서 정의한 의미의 형식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마키아벨리주의자는 정치적 행동을 분석할 때 사람들이 말하고, 생각하고, 믿고, 글로 남긴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개인의 연설이나 편지, 저작은 물론이고 헌법이나 법률, 정당 강령 같은 공적 문서도 사회를 이루는 수많은 사실 가운데 하나로 다룰 뿐이다. 그리고 그 의미는 언제나 다른 사회적 사실들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한다. 때로는 검토 끝에 문구를 그대로 받아들여도 무방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제정론』에서 살펴본 것처럼 형식적 의미와 실제 의미가 서로 어긋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말은 실제 정치적 행동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그것을 왜곡하고 감추면서, 간접적으로만 드러낼 뿐이다.
이러한 반형식주의적 접근에서 모스카는 모든 사회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가장 근본적인 사실 하나를 발견한다. 곧, 언제나 소수인 지배계급과 그 지배를 받는 피지배계급이라는 두 개의 '정치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정치체제에서 언제나 발견되는 사실과 경향 가운데 가장 분명한 것은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문명이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미개한 사회에서부터 가장 발전하고 강력한 사회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두 계급이 존재한다. 하나는 지배하는 계급이고, 다른 하나는 지배받는 계급이다. 언제나 수적으로 적은 전자는 모든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고 권력을 독점하며, 권력이 가져다주는 모든 이익을 누린다. 반면 수적으로 많은 후자는 전자의 지배와 통제를 받는다. 그 방식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어느 정도 합법적일 수도 있고, 자의적이고 폭력적일 수도 있다. 또한 후자는 적어도 겉으로는 지배계급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물질적 기반과 정치체제가 유지되는 데 필수적인 여러 수단을 제공한다.
실제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이 지배계급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어느 나라든 공적인 일은 영향력을 가진 소수의 손에 맡겨져 있으며, 다수는 자발적으로든 마지못해서든 그들의 통치에 따른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웃 나라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오히려 현실이 이와 다른 방식으로 조직된 세상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모든 사람이 상하관계 없이 오직 한 사람에게만 직접 복종하는 사회나, 모든 사람이 정치 운영에 똑같이 참여하는 사회를 떠올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이론에서는 다르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상당 부분 오랫동안 굳어진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지배 계급』 p. 50)
소수의 지배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기록으로 확인되는 모든 조직화된 사회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 특징이다.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회가 봉건제이든 자본주의이든, 노예제이든 집산주의이든, 정치체제가 군주제이든 과두제이든 민주제이든 상관없다. 헌법과 법률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어떤 이념을 내세우고 무엇을 믿는지도 문제되지 않는다. 어디에서나 예외 없이 소수의 지배계급은 존재했다.
모스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이것이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할 뿐 아니라,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 내릴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본다. 우선, 이는 역사적 경험이 한결같이 보여주는 사실이다. 어떤 시대와 어떤 조건에서도 정치조직은 언제나 소수의 지배계급을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다. 그렇다면 이것은 정치 활동의 본질적인 속성으로 보아야 하며,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소수의 지배계급은 앞으로도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또 다른 방식으로도 논증할 수 있다.
지배 계급 이론을 통해 모스카가 반박하려는 것은 널리 퍼져 있는 두 가지 오류다. 두 주장은 서로 정반대지만, 이상하게도 한 사람이 동시에 믿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첫 번째 오류는 폭정이나 독재를 논할 때 흔히 등장하는 주장이다. 오늘날 독재자를 비판하는 담론에서도 자주 볼 수 있듯이, 사회는 오직 한 사람의 의지로 통치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모스카는 이렇게 말한다.
“국가의 정점에 선 사람이라 해도 자신의 명령을 존중하게 만들고 그것을 집행할 다수의 집단이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결코 통치할 수 없다. 그는 지배계급에 속한 한 사람이나 여러 사람에게 자신의 권력을 행사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배계급 전체를 적으로 돌리거나 아예 없애 버릴 수는 없다.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 해도, 그는 곧바로 새로운 지배계급을 만들어야 한다. 그들의 뒷받침이 없다면 어떤 행동도 사실상 마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배 계급』 p. 51)
또 다른 오류는 민주주의 이론에서 흔히 발견되는 주장이다. 곧, 대중이나 다수가 스스로를 통치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한 사람이 어떤 집단을 지휘하려면 그 안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소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소수를 지배해야 한다는 통념과 달리, 현실에서는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지속적인 현상이라는 점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이는 다른 여러 학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듯이, 처음 받는 인상이 실제 모습과 어긋나는 경우 가운데 하나다.
현실에서는 하나의 의지로 결속된 조직된 소수가 조직되지 않은 다수를 지배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소수의 힘은 다수에 속한 개개인에게는 압도적이다. 다수의 각 개인은 홀로 조직된 소수 전체와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소수가 조직될 수 있는 것도 바로 소수이기 때문이다. 서로 뜻을 모으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백 명은 의견이 흩어져 있어 각개격파될 수밖에 없는 천 명을 이길 수 있다. 게다가 백 명이 천 명보다 서로 협력하고 공통의 이해를 이루기 훨씬 쉽다.
따라서 정치공동체의 규모가 커질수록 지배계급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더욱 작아지고, 다수는 소수에 맞서 조직적으로 행동하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지배 계급』 p. 53)
보통선거를 형식적 기반으로 삼는 정부라고 해서 이런 원리가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모든 정치체제에서 나타나는 것, 곧 조직된 소수가 조직되지 않은 다수에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현상은 대의제에서도 똑같이, 오히려 가장 완전한 형태로 나타난다. 겉으로는 달라 보일지라도 실제는 그렇다.
우리는 흔히 유권자가 자신의 대표를 '선출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매우 부정확한 표현이다. 실제로는 대표가 유권자들에 의해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선출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표현이 너무 단정적이고 거칠게 들린다면, 그의 지지자들이 그를 당선되게 만든다고 말해도 좋다. 선거 역시 다른 모든 사회현상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는 의지와 더불어 그것을 실현할 도덕적·지적·물질적 수단을 가진 사람들이 앞장서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을 따르게 된다.
정치적 대표권은 흔히 사법상의 위임장에 비유된다. 그러나 사적인 법률관계에서 위임은 언제나 본인이 대리인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갖는다. 반면 실제 선거에서는 이론적으로는 완전한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 자유가 사실상 사라진다.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유권자가 각자 가장 마음에 드는 후보에게 표를 던진다면, 거의 모든 경우 표는 사방으로 흩어질 뿐이다. 수많은 사람의 선택은 저마다 다른, 대부분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런 선택들이 미리 조정되고 조직되지 않는다면, 모두가 자발적으로 같은 한 사람을 선택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자신의 한 표를 실제로 의미 있게 만들려면 유권자는 선택 범위를 극히 좁힐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당선 가능성이 있는 두세 명의 후보 가운데서만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당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집단과 위원회, 다시 말해 조직된 소수의 지지를 받는 후보들뿐이다.” (『지배 계급』 p. 154)
미국에서 정치를 이론이 아니라 현실의 작동 방식에 주목해 살펴본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 점에서만큼은 모스카의 설명에 선뜻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배계급 내부는 대체로 두 층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사회의 가장 높은 자리와 핵심 권력을 차지하는 극소수의 '최고 지도층'이다. 다른 하나는 그보다 훨씬 규모가 큰 2차 지도층으로, '중간계급'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집단이다. 이들은 최고 지도층만큼 눈에 띄거나 주목받지는 않지만, 공동체의 일상적인 운영을 실제로 떠받치는 실무 책임자들이다.
모스카는 사회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한 명의 최고 지도자가 아니라 지배계급 전체라고 보았다. 마찬가지로, 장기적으로는 최고 지도층보다도 이러한 지배계급의 중간층이 사회의 향방을 결정하는 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지배계급의 최상층 아래에는, 전제정치 체제에서조차도 언제나 훨씬 더 큰 규모의 또 다른 계층이 존재한다. 이들은 나라를 이끌어 갈 능력을 갖춘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이런 계층이 없다면 어떤 사회조직도 유지될 수 없다. 최상층만으로는 대중의 활동을 이끌고 조정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정치체제의 안정성은 이 두 번째 계층이 얼마나 높은 수준의 도덕성, 지성, 그리고 실천력을 갖추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이 계층의 지적·도덕적 결함은 국가기구를 움직이는 몇십 명의 최고 권력자들에게 같은 결함이 있는 것보다 정치체제에 훨씬 더 큰 위협이 되며, 그만큼 회복하기도 어렵다.” (『지배 계급』 pp. 404–405)
지배계급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한 사회는 곧 그 사회의 지배계급이다. 한 나라의 강함과 약함, 문화 수준, 위기를 견디는 힘, 번영과 쇠퇴는 무엇보다 먼저 그 지배계급의 성격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어떤 나라를 연구하고 이해하며 앞으로의 향방을 예측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그 나라의 지배계급을 분석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사는 본질적으로 지배계급의 역사이며, 정치학은 지배계급의 기원과 발전, 구성과 구조, 그리고 변화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처럼 지배계급 이론은 정치 현실에 흩어져 있는 무수한 사실들을 하나의 체계 속에 엮어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원리를 제공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서로 무관하고 의미 없이 흩어져 보였을 정치적 사실들이 비로소 질서를 갖추고 해석 가능한 대상으로 드러난다.
역사를 지배계급의 역사로 이해한다는 생각은 다소 독단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의 모든 역사가가 이런 관점에 따라 역사를 서술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일반 이론에서는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레프 톨스토이(Leo Tolstoy)나 레프 트로츠키(Leon Trotsky) 같은 인물조차, 실제 역사 서술에서는 결국 이 틀을 따르게 된다. 다른 이유가 없다면, 대다수 사람들은 뛰어난 인물들의 활동이나 지도력을 통해 드러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역사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서술 방식이 역사의 전개를 왜곡하는 것도 아니다. 전쟁의 역사는 모든 병사, 혹은 대부분의 병사가 무엇을 했는지를 일일이 기록할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한 예술 사조나 헌법의 성립, 종교의 성장, 혁명의 전개를 설명한다고 해서 그 과정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설령 역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의 궁극적 원인이 대중의 움직임이라고 이론적으로 주장하더라도, 그러한 움직임이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은 주요 제도를 바꾸고 지배계급의 성격과 구성을 변화시킬 때뿐이다. 따라서 지배계급을 분석하는 일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역사를 이해하는 데 충분한 틀을 제공하며, 정치학의 토대 또한 마련해 준다.
모스카가 말하는 '지배계급' 개념에는 다소 모호한 점이 있으며, 이는 리빙스턴 교수가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모스카는 자신을 사회학자라기보다 정치학자로 여겼고, 적어도 상당수의 저작에서는 일반적인 사회행동보다 정치 자체를 분석 대상으로 한정하려 했다.
그의 용어를 이탈리아어에서 그대로 옮기면 '지배 계급(ruling class)'보다는 '정치 계급(political class)'이나 '통치 계급(governing class)'이라고 번역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러나 그의 저작을 읽다 보면 이 용어는 두 의미 사이를 오간다. 하나는 좁은 의미의 '통치 계급'으로, 정부 운영이라는 구체적인 업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집단이다. 다른 하나는 더 넓은 의미의 '사회적 엘리트'로, 정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권력이나 특권을 지녀 대중과 구별되는 사람들 전체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러한 모호함이 모스카의 논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문맥에 비추어 보면, 그의 의도는 대체로 '지배 엘리트'라는 더 넓은 개념으로 이해하는 편이 적절하다.
아마도 모스카는 처음에는 정치라는 비교적 좁은 영역을 연구하면서 '정치 계급'이라는 제한된 개념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를 탐구해 갈수록 정치는 사회 전체와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었다. 그 과정에서 '정치 계급'이라는 개념은 별다른 설명 없이 점차 '사회적 엘리트'라는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이후의 마키아벨리주의 사상, 특히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에 이르면 이러한 변화는 더욱 분명해진다. 파레토는 처음부터 끝까지 '엘리트'라는 넓은 의미의 개념을 일관되게 사용한다.
지배계급 이론을 제시한다고 해서 모스카가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그는 인류가 지배하는 사람과 지배받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이 바람직하다거나, 반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나는 한 저명한 언론인이 쓴 서평에서 “미국은 결코 엘리트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읽었다. 마치 그런 문제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부도덕하고, 그것을 비난하는 것이 고결한 태도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과학이 다루는 문제는 미국이나 다른 어떤 나라가 그런 이론을 받아들이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론이 사실인가 아닌가이다.
모스카는 사회가 지배하는 사람과 지배받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은 보편적이며 영속적인 현상이고, 정치 활동의 일반적인 형태라고 본다. 그렇다면 그것을 선하거나 악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애초에 의미가 없다. 그것은 단지 현실이 그러하다는 사실일 뿐이다.
물론 도덕적 가치, 선과 악, 정의와 불의(不義)는 실제로 존재하며, 모스카 역시 그러한 판단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평가는 사회의 이러한 기본 구조를 전제로 할 때에만 의미를 갖는다. 지배하는 사람과 지배받는 사람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다음에는 어떤 지배계급이 다른 지배계급보다 더 선하거나, 더 정의롭거나, 혹은 덜 불의(不義)적인지를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James Burnham, The Machiavellians: Defenders of Freedom (Endeavour Media Ltd, 2019), pp. 6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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