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드버그의 칼라일에 대한 관점 제1장 미제스에서 칼라일까지: 어둠의 세계로 향하는 나의 기괴한 여정
몰드버그의 칼라일에 대한 관점
제1장 미제스에서 칼라일까지: 어둠의 세계로 향하는 나의 기괴한 여정
멘시우스 몰드버그 · 2010년 2월 4일
내 성향을 한 단어로 정의해 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는다. 그럴 때면 보통 왕당파(王黨派)라고 답한다.
지금은 2010년, 당신은 인터넷으로 왕당파 성향 지하 출판물을 읽고 있다. 그리고 같은 시간,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정말 기묘한 일이다. 1979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이들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왕당파라는 말은 대화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아무런 편견이 없는 백지와 같아서, 그 어떤 프로파간다와도 엮이지 않는다. 오늘날 스스로를 '왕당파'라 부르는 이는 거의 없다. 현재의 형식적이거나 '입헌적인' 제도에 경의를 표하는 '군주주의자'와는 다르다. 입헌군주제만큼 허구성이 증명된 이데올로기도 드물다. 누군가 시비를 걸어온다면, 그저 '신(新)왕당파'로 한 단계 나아가면 그만이다.
물론 이런 딱지를 붙인다는 것 자체가 이 블로그 '무조건적 유보'의 주술에 완전히 매료되었음을 뜻한다. 원래 의도가 그렇다. 하지만 굳이 동네방네 소문낼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이 매혹적인 음료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퍼지기 마련이다. 솔직히 이런 전복적인 글을 남들에게 권하는 일은, 1964년에 문학계 친구들에게 환각제를 권하던 풍경과 닮았다. "그 친구, 유행을 좀 아나?" "아니?" "참 안됐군. 저 파란 주전자에 든 걸로 한 잔 따라주게나."
물론 1974년쯤 되면 그 친구도 스스로를 '방 라즈(Bhang Raj)'라 부르며 빅서(Big Sur)에서 요가를 가르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왕당파라는 말이 흥미진진하게 들린다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1964년이나 1984년의 기억이 없다면 특히 더 그럴 것이다. 사실 소크라테스 역시 아테네의 청년들을 타락시키며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가 무엇으로 청년들을 타락시켰을까?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소위 증오 섞인 사실과 사상 범죄였다. 구체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선동적인 거짓말을 퍼뜨린 것이다.
솔직히 말해 '왕당파'라는 말은 확실히 도발적이다. 1976년의 펑크 록처럼 말이다. 찬성하든 반대하든, 결코 무관심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보면 1976년이 꿈꾸던 펑크의 미래는 실현되지 않았다.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이를 통해 우리는 지나치게 파격적인 태도가 가져오는 한계를 엿볼 수 있다.
그래서 나에게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나는 '칼라일주의자'다. 마르크스주의자가 마르크스주의를 따르듯, 나 역시 칼라일(Thomas Carlyle)을 따른다. '빅토리아 시대의 예수'로 불리는 토머스 칼라일에 대한 나의 경외심은 사춘기 시절의 일시적인 열정이 아니다. 성숙한 성인이 내린 의식적인 선택이다. 마르크스주의자가 끝까지 마르크스주의자로 남듯, 나 또한 언제나 칼라일주의자로 살아갈 것이다. 당신도 우리와 함께하기에 결코 늦지 않았다. 칼라일 추종자들의 모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유일한 문제는 칼라일이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당신의 전 재산을 처분해 그에게 바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그 돈을 받아 마땅한 다른 대상을 직접 찾아내야만 한다.
하지만 잠깐, 도대체 칼라일이 누구란 말인가?
그렇다면 최근 극장가를 뜨겁게 달군 고전 명작, 영화 《셜록 홈즈》를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무지한 지구인들이여, 알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엄연히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1887년에 출간된 이 책에서, 지금은 세상을 떠난 어느 백인 노신사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의 무지함은 그가 가진 지식만큼이나 놀라웠다. 동시대의 문학이나 철학, 정치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다. 한 번은 내가 토머스 칼라일의 말을 인용하자, 그는 그가 도대체 누구며 무슨 일을 한 사람이냐고 너무나도 천진하게 되물었다.
하지만 나의 경악이 극에 달한 것은, 그가 지동설과 태양계의 구조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을 때였다. 19세기라는 문명사회를 사는 인간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기이한 일이었다.
사실 여기서 말하는 '그'는 다름 아닌 셜록 홈즈 본인이다. 홈즈가 칼라일을 전혀 몰랐던 이유는 그가 정치와 문학 모두에 아예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천 명 중 한 명도 칼라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그나마 아는 사람조차 잘못된 정보를 접했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 칼라일에 관한 해설서를 읽기 전에 그의 저작을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의 인식은 다시 한번 아무런 편견이 없는 백지 상태로 돌아간다. 당신 역시 정치와 문학에 전혀 무지한가? 우리 모두가 셜록 홈즈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장로회 교단 출신의 거물 사상가는 백 년 동안 도서관 서고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기술적 유토피아를 꿈꾸는 자유분방한 생각으로 서고의 책들을 대량으로 스캔하면서, 마침내 세상 밖으로 풀려났다. 지동설은 잘 알면서도 칼라일을 모른다면, 지금 당장 그의 글을 읽어보라. 누구나 읽을 수 있다. 비록 오래되어 흐릿하게 스캔된 페이지 위에 이따금 누군가의 손가락 사진이 함께 찍혀 있는 모습이지만, 그의 저작은 인터넷 세상에 날것 그대로 펼쳐져 있다. 수많은 인턴의 고된 수작업 덕분에 칼라일이 다시 부활한 셈이니, 이 얼마나 절묘하고 어울리는 풍경인가.
인정할 것은 인정하겠다. '에클리페칸의 현인'으로 불리던 칼라일에게도 판단이 흐려지던 날은 있었다. 그는 엄연히 19세기를 살았던 사람이다. 면도를 하더라도 날카로운 외날 면도기를 썼을 것이고, 그가 미래를 내다보던 수정구슬 역시 아주 정밀하지만 어디까지나 아날로그 기기였다. 칼라일은 20세기를 살았던 그 어떤 이들보다도 20세기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다. 하지만 가끔 사상의 흐름에 왜곡이 생길 때면, 전혀 엉뚱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므로 칼라일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적절히 걸러 듣고 시대에 맞게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본인 역시 이를 당연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조율하고 복원해 낸다면, 그는 성숙한 성인이 기댈 만한 훌륭한 사상적 길잡이가 되어준다. 누구나 마음속에 의지할 만한 존재 하나쯤은 필요한 법이니까.
칼라일은 다가올 20세기의 비극적인 학살의 시대를 예견한 몇 안 되는 19세기 작가 중 한 명으로, 당대의 모든 이데올로기를 아울렀다. 정부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당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칼라일의 저작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례로 칼라일을 처음 접하고자 한다면, 1918년판 《과거와 현재(Past and Present)》에 실린 에드윈 밈스의 서문을 추천한다. 그곳에서 당신은 왕당파이자 진보주의자였던 칼라일을 만나게 된다. 또한 왕당파 성향의 파시스트였던 칼라일도 존재한다. 심지어 내 눈에는 왕당파 성향 자유주의자로서의 칼라일도 어렴풋이 보인다. 예컨대 관료제를 뜻하는 대명사가 된 '레드 테이프(번문욕례(繁文縟禮))'라는 표현 자체가 칼라일이 만들어낸 말이다.
여기서 오늘 이야기의 핵심으로 넘어가 보자. 눈치챘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왕당파나 칼라일주의 같은 사상에 빠져들기 전에는 자유주의자였다. 구체적으로는 미제스(Ludwig von Mises)를 따르는 미제스주의자였다. (그보다 훨씬 전에는 블로그 인스타펀딧의 독자이기도 했다. 결국 인터넷이 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셈이다. 이제는 내가 당신을 변화시켜 줄 차례다. 제다이 평의회가 쳐놓은 덫을 과감히 벗어던져라. 그리고 나와 내 스승이 가진 시스의 힘 앞에 굴복하라. 참, 우편으로 후원금을 더 보내주는 것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미제스의 저작을 전부 읽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론과 역사(Theory and History)》나 《전능한 정부(Omnipotent Government)》를 비롯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책들이 내 서재에 꽂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로스바드(Murray Rothbard)에 대한 연구는 공백이 조금 더 큰 편인데, 예컨대 그의 《경제사상사(An Austrian Perspective on the History of Economic Thought)》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미제스와 로스바드의 핵심 이론은 거의 완벽하게 꿰뚫고 있으며, 두 학자에 대한 나의 평가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미제스는 시대를 개척한 거인이고, 로스바드 역시 그에 못지않은 거장이다.
그러나 칼라일이 가장 위대한 사상가인 이유는 그의 시야가 가장 넓기 때문이다. 물론 분석력 측면에서는 미제스가 훨씬 뛰어나다. 미제스와 칼라일의 의견이 부딪칠 때면 대개 미제스가 옳다. 미제스는 틀리는 법이 거의 없다. 반면 칼라일을 두고 '틀리는 법이 거의 없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칼라일은 자주 틀린다. 그의 사상적 필치는 대단히 굵직하다. 치과용 드릴이 아니라 곡괭이로 땅을 파내려 가는 식이다. 하지만 미제스 철학의 핵심 중 칼라일의 사상에 담기지 않은 내용은 사실상 없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지만 말이다.
스승으로서 미제스가 가진 한계는, 그의 고전적 자유주의(혹은 로스바드식 자유주의)가 마치 뉴턴 역학 같다는 점이다. 일상적인 조건 안에서는 기본적으로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특수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이 이론은 무너지며, 이때는 더 포괄적인 사상적 모델이 필요해진다. 방정식에 새로운 변수가 하나 더 추가되는 셈이다. 보통 이 변수의 값은 영(0)이기에 평소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며, 이 변수를 빠뜨려도 방정식은 성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변수가 영이 아닌 순간, 이론의 치명적인 오류가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뉴턴 역학이 느린 속도에서만 들어맞듯, 미제스의 이론 역시 사회 질서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때만 유효하다. 미제스 스스로도 전쟁을 인간행동학(Praxeology)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란 적이 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그에게 전쟁을 설명할 사상적 틀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칼라일은 미제스가 결코 눈길을 주지 않을 법한 인물이었다. 국가주의자이자 왕당파적인 파시스트, 그리고 왕당파적인 진보주의자였던 칼라일은 미제스를 철저히 배척했던 대서양 양안의 사상가들에게 일종의 예언자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론은 가능한 한 단순해야 하지만, 지나치게 단순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칼라일주의를 따르는 자유지상주의자로서 내 생각을 보태자면, 정부 역시 가능한 한 작아야 하지만 지나치게 작아서는 안 된다.
예컨대 미제스의 주장에는 당위적인 규범이 거의 담겨 있지 않다. 그는 당대에 유행하던 개입주의 정책들을 두고 결코 '나쁘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정책들이 애초에 의도했던 결과를 내지 못하거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즉 정책 이면에 깔린 정치적 논리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뿐이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미제스의 진단은 언제나 정확하다. 하지만 그는 정책 자체가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잘못된 근거에 기반하고 있음을 밝혀낼 뿐이다.
예를 들어 미제스는 높은 관세나 환율 조작 같은 중상주의 정책이 수출 기업에 이익을 주는 만큼 소비자에게는 손해를 입힌다고 말한다. 하지만 수출 기업과 소비자가 함께 공존하는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이 정책이 과연 이로운지 해로운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로스바드는 이에 대해 선악을 분명히 가르지만, 종종 지나치게 극단으로 치닫는다.) 미제스의 이론 자체에 따르면, 경제적 선(善)을 측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지표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얻은 이익이 다른 사람의 손해를 상쇄할 수 있는지를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제스는 이러한 정책의 효과를 손익으로 계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의 말이 옳다. 그것은 계산의 영역이 아니다. 칼라일이 그의 저작 《차티즘(Chartism)》에서 "정부는 증기기관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라고 간파했듯 말이다. 정부의 개입은, 그것이 정말 필요한 경우일지라도 오직 정무적 판단을 통해서만 저울질할 수 있을 뿐이다.[1]
그 어떤 책임 있는 자리에서도 공식이나 컴퓨터는 인간의 결정을 대체할 수 없다. 공식은 스스로 지혜를 발휘하거나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 고유의 자질은 책임이 따르는 모든 자리에 필수적이지만, 가장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최고 권력의 자리, 즉 주권자의 통치에서는 무엇보다 절대적이다.
크고 작은 조직, 공공과 민간, 군대와 민간 기업을 막론하고 모든 조직은 단 한 명의 최고 책임자가 이끌 때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된다. 왕정주의가 등장하는 배경이 바로 여기다. 어떤 방식으로 선출되든 주권자의 지위를 가진 최고 책임자의 공식 직함은 결국 왕이나 여왕이다. 그 외의 모든 명칭은 완곡한 표현에 불과하다.[2] 우리가 굳이 그런 눈치 보기식 표현을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가 누구의 눈치를 보는 하수인도 아닌데 말이다.
자유주의자인 미제스는 좋든 싫든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전통 속에서 사고한다. 그는 중앙통제식 계획경제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인 수치와 프로세스에만 의존하는 계획경제, 즉 현대 미국식 의미의 공공 정책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할 뿐이다. 그는 '인간의 주관적 판단'이라는 대안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데, 이는 그의 사상과 배치되어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의 세대가 그 판단의 실패를 처절하게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질문: 유럽 대륙에 '피와 땅'의 민족주의를 팔아넘긴 것은 누구인가? 답: 지긋지긋한 보수주의자들이 결코 아니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서 다룬다.)
예를 들어 벤담의 사상을 잇는 현대의 전형적인 공공 정책 설계는 '국내총생산(GDP)'처럼 국가적 효용을 측정하는 지표를 필요로 한다. 이에 대해 미제스와 칼라일은 공통적으로 두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 국가적 효용을 정량화한다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둘째, 이러한 수치나 지표는 정책 결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GDP를 감소시키는 정책이 도리어 이로울 수 있고, 반대로 GDP를 증가시키는 정책이 해악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칼라일주의자의 눈에 이러한 기계적 통치는 사탄에게 주권을 통째로 넘겨주는 꼴과 같다. 이는 마치 전자상거래 서버의 23번 포트를 아무런 보안 장치 없이 열어두는 것만큼이나 위험천만한 짓이다. 미국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미국은 소득 범위를 넘어선 과도한 소비를 통해 GDP를 극대화했고, 그 결과 거대한 부채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아차 싶은 순간 이미 늦은 것이다.
선은 악을 용납하지 않으며, 악을 온전히 몰아낸다. 만약 또 다른 악을 불러들이는 통치 체제가 있다면, 그 체제 자체가 이미 오염되었다고 봐야 한다. 혼란은 더 큰 혼란을 낳을 뿐이다. 질서는 혼란을 완전히 뿌리 뽑거나, 아니면 그 혼란에 굴복해야만 한다. 이처럼 칼라일과 미제스는 접근 방식은 전혀 달랐을지언정 결론은 늘 같았다.
내가 미제스주의자에서 칼라일주의자로 전향했을 때, 이상적인 국가에 대한 나의 비전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나와 같은 이들은 위에서 아래로 설계된 계획사회가 아니라,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원자들이 통제 없이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자생적 질서'의 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며 또 마땅히 그렇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는 미제스에 비할 바는 못 되더라도, 하이에크(Friedrich Hayek)의 논리가 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칼라일주의로의 전향이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은 바로 자유 사회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에 대한 내 인식이다. 만약 자유 사회가 이미 존재한다면, 말콤 엑스의 말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지켜내야 한다. 하지만 만약 그런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 답할 사람 없나? 침묵만이 흐를 뿐이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이 목표를 달성할 '수단'을 찾는 데 애를 먹는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역사상 단 한 번도 성공에 근접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현대 자유지상주의는 로스바드가 고안해 낸 결과물이다. 원형 그대로든, 희석되었든, 아니면 다른 사상과 버무려졌든 결국 본질은 로스바드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위카(Wicca)가 과거 고대 종교의 믿음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현대 자유지상주의 역시 과거 고전적 자유주의의 신념을 계승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당시 세대와의 실질적인 사회적 유대감은 거의 끊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제스 자신은 몇 안 되는 예외 중 하나이지만, 그 역시 매우 보기 드문 사례일 뿐이다.
로스바드는 19세기 정치적 현상이었던 ‘맨체스터 자유주의’를 부활시킴으로써 자유지상주의의 기틀을 마련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놀라운 화석과도 같았던 미제스가 실존하지 않았더라도, 로스바드는 오직 문헌만을 바탕으로 연구를 이어갔을 것이다. 내가 오직 책을 통해서만 칼라일을 만나고 연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미제스가 곁에 없었더라도 그는 그렇게 해냈을 것이 분명하다.
로스바드는 언제나 현실적인, 적어도 실용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이 옳으며 세상을 지배할 자격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흑표당부터 팻 뷰캐넌에 이르기까지, 권력에 다다를 수 있다고 판단한 마차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올라탔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코브던(Richard Cobden)과 브라이트(John Bright)의 정치적 수사였던 맨체스터 자유주의를 다시금 세상에 불러냈다.
물론 역사는 아직 일러서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중 그 어떤 전략도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라스바드의 조직적 후계자인 류 록웰(Lew Rockwell)은 또다시 방향을 바꾸어 에이즈 부정론자 등과 손잡고 좌파 진영을 공략하는 중이다. 학파의 왕조마다 반드시 콤모두스와 같은 암군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왜 자유지상주의는 성공하지 못했을까? 과거 맨체스터 자유주의를 살펴보면, 당시 이 운동은 분명 좌파적 대의를 표방했다. 그 시대에도 좌파와 우파라는 용어는 지금처럼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뜻했다. 사회 문화적 함의 역시 지금과 정확히 일치했다. 19세기 맨체스터 자유주의의 정책은 20세기 라스바드주의 성향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정책과 완전히 같다. 그럼에도 오늘날 자유지상주의는 보통 우파 운동으로 분류된다. 적어도 자유지상주의자 본인들을 제외한 세상 모든 이들에게는 그렇게 통한다.
라스바드주의 성향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이 진영 반전의 의미를 깨달았다면, 자신들의 방식이 왜 성공하지 못하는지, 그리고 왜 앞으로도 성공할 수 없는지 이해했을 것이다. 맨체스터 자유주의라는 민주적 강령은 좌파의 입장에 설 때만 힘을 발휘할 뿐, 우파의 자리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최근 제임스 오키프(James O’Keefe)가 겪고 있듯, 좌파 진영에서 효과적인 전술 중 대다수는 우파 진영으로 넘어오면 무용지물이 된다. 적어도 지금의 미국 사회에서 우파식 알린스키주의(Alinskyism)가 성공할 리 만무하다. 대칭성이 보장되지 않는 방정식에서, 우리는 또 한 번 놓쳐버린 변수를 보게 된다.
자유지상주의자는 ‘독재 대 자유’라는 자신들만의 정치적 축을 설명할 때 늘 난관에 봉착한다. 대다수 사람이 역사를 돌이켜볼 때 분명한 정치적 축을 인지한다는 점이 문제다. 다만 그들이 보는 축은 독재 대 자유도, 큰 정부 대 작은 정부도 아니다. 바로 좌파 대 우파다.
게다가 좌우라는 축을 인지하는 사람은 비단 일반 대중만이 아니다. 우파를 포함한 진영 전체가 그렇게 지각한다. 우파가 다른 우파를 좌파로 오해하거나, 깊이 미혹된 나머지 스스로를 좌파로 포장하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좌파는 우파를 좌파로 오해하지 않는다. 적어도 체계적으로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우파에게서는 좌파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파는 우파고 좌파는 좌파다. 이 축은 실재한다. 조나 골드버그가 히틀러를 좌파라 부를 수도 있고, 실제로 히틀러 본인도 자신의 정당을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라 칭하며 스스로를 좌파라 부르긴 했다. 하지만 히틀러는 지독하리치만치 사악한 우파였을 뿐이다. 물론 거짓말을 일삼는 사기꾼이기도 했다. 당시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지성을 갖춘 이라면 누구나 그를 우파로 인식했다. 지혜로운 우파와 좌파, 그리고 중도파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물론 단어의 정의를 바꿀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깔린 현상 자체는 여전히 명확히 식별된다. 좌파와 우파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추상적이고 무의미하기에 오히려 가장 완벽한 표현이다. 그런데 왜 굳이 이를 뒤집으려 애쓰는가. 안타깝게도 그럴 만한 합당한 이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히틀러가 자유주의자이었다는 식의 이 해괴한 주장은 현재 우파 진영 전반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물론 이 역시 두 가지 면에서 전형적인 좌파식 수법에 불과하다. 첫째, 모든 정치적 라이벌을 파시즘이나 히틀러와 어떻게든 엮어 모욕을 주는 전술은 좌파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둘째, 정치적 목적을 위해 명백한 역사 왜곡을 유포하는 행위 역시 그들이 잘 쓰는 방식이다.
칼라일주의자 시각에서 사탄은 혼돈의 군주이자 거짓말의 아버지이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거짓말을 하는 행위는 사탄에게 새끼 고양이를 제물로 바치는 꼴이나 다름없다. 사탄은 이런 행위를 매우 기꺼워한다. 게다가 지상에서 사탄의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은 만큼, 그는 자신을 기쁘게 한 이들을 위해 능력이 닿는 한 온갖 도움을 베푼다. 그리고 그 도움은 때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칼라일주의의 방식은 오직 절대적인 진실만을 모든 정치 전략의 기초로 받아들인다. 냉정하게 말해 자유지상주의자를 비롯한 우파들은 분기별 실적을 올리듯 가끔 진실을 조금씩 왜곡해 봤자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다. 지금 권력을 쥔 그들의 적들은 사탄을 기쁘게 하려고 코뿔소 도살장을 공장식으로 가동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설마 그 정도나 되는 악당들을 상대로 얕은수를 써서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제스주의자 시각에서 역사에 극명히 드러나는 선과 악의 투쟁은 곧 독재와 자유의 싸움이다. 그들에게 악은 독재이며, 선은 자유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 이러한 관점에는 분명한 허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관점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좌파와 우파의 차이를 흐린다는 점에 있다. 좌우의 차이는 분명히 실재하며 질적으로도 확연히 다르다. 만약 좌우라는 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왜 세상 모든 이들이 이를 인지하겠는가. 반대로 좌우 축이 실재한다면 오컴의 면도날에 의해 '독재 대 자유'라는 상하 축은 곧바로 잘려 나가게 된다. 하나의 축으로도 충분히 설명 가능한데 굳이 두 개의 축이 필요하겠는가.
칼라일주의자의 시각에서 역사적 대사건은 결국 좌파와 우파의 투쟁이다. 이는 곧 선과 악의 투쟁이며, 혼돈과 질서의 투쟁이기도 하다. 악은 혼돈이고 선은 질서다. 악은 좌파고 선은 우파다. 악은 허구이고 선은 진실이다. 여러분, 이 외에 다른 길은 없다. 마주한 현실이 마치 입안의 돌덩이처럼 거칠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우리는 이 돌을 씹어 삼켜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하지 않는다면 대체 언제 하겠는가.
만약 이 이론을 성립시킬 방법만 찾는다면, 미제스주의적 관점을 완벽하게 설명해 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당초 예견한 대로 미제스주의는 칼라일주의의 하위 개념으로 흡수된다. 자유는 근본적으로 질서정연한 가치, 즉 우파적 가치이기에 선하다. 반면 독재는 본질적으로 혼돈을 야기하는 가치, 즉 좌파적 가치이기에 악하다.
독재가 혼돈의 한 형태라면, 자유는 질서의 한 형태다. 물론 혼돈과 질서에는 각각 다른 형태도 존재한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혼돈보다 질서를 택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칼라일주의자가 보기에 자유지상주의가 저지른 치명적인 오류는 바로 무정부 상태와 자유를 혼동한 데 있다. 두 개념은 엄연히 다를 뿐만 아니라,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서로 정반대 극단에 위치한다. 자생적 질서인 자유야말로 질서의 궁극적인 형태이며, 무정부 상태는 무질서의 궁극적인 형태다.
칼라일주의자의 시각에서 무정부 상태와 독재는 근본적으로 뗄 수 없는 한 몸이나 다름없다. 다시 말하지만, 무정부 상태와 자유가 비슷해 보이는 현상은 완전히 착각일 뿐이다. 실제로 자유를 극대화하려면 무정부 상태부터 근절해야 한다. 자생적 질서를 이루고 싶다면, 우선은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인 인위적 질서부터 확립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시간을 두고 지켜보며 차츰 규제를 풀어가야 한다.
미제스주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칼라일주의적 청사진은 다음과 같다. 자유라고도 불리는 자생적 질서는 정치적 욕구단계이론에서 가장 높은 정점에 위치한다. 이 욕구의 단계는 바로 평화, 안전, 법치, 그리고 자유다. 질서를 발전시키려면 단계를 건너뛰지 말고 언제나 바로 다음 단계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전쟁 상태라면 평화를 향해, 불안정한 상태라면 안전을 향해, 안전이 확보되었다면 법치를 향해, 그리고 법치가 확립된 상태라면 비로소 자유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자유지상주의의 고전적이고 안정적인 틀은 이 여러 단계 중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다. 일단 법치 정부의 상태에 도달하면, 국가가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유방임 정책을 적용함으로써 스스로 체제를 개선해 나갈 수 있다. 즉, 강제적 질서에서 자생적 질서로 나아가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따른다. 이러한 자유방임 정책이 평화, 안전, 법치라는 더 근본적인 성과를 저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국가가 이러한 고전적이고 안정적인 틀에서 벗어나 혼돈에 빠져있을 때, 미제스와 라스바드의 이론은 그 안정된 상태를 회복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라스바드식 자유지상주의가 칼라일주의적 청사진을 실현하는 데 오히려 실질적인 방해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질서를 회복하는 첫 번째 단계인 평화를 생각해 보자. 전쟁 상태라면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 도덕적 관점에서 어느 쪽이 침략자인지 판가름하기는 매우 어려울 수 있지만, 군사적 관점에서는 대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바로 공세를 취하는 쪽이다. 이들은 현재 점령지를 그대로 인정하는 점유권 보존 원칙(uti possidetis), 즉 현재 상태를 기준으로 전쟁을 끝내는 데 동의하지 않는 세력이다. 쉽게 말해, 어떤 전쟁이든 한쪽은 당장 멈추고 싶어 하고 다른 한쪽은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마련이다.
‘공을 쥐고 앞으로 전진하는’ 침략국의 처지에서는 평화를 얻기가 쉽다. 그저 공세를 멈추는 절제만으로도 평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수세에 몰린 방어국의 처지에서 평화에 이르는 길은 오직 두 가지뿐이다. 항복하거나, 승리하는 것이다.
항복에도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무조건 항복과 단계적 항복이 그것이다. 무조건 항복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당연히 그 길을 택해야 한다. 단계적 항복이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대개는 그렇지 못하다. 포식자는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 큰 것을 요구하러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물론 단계적 항복이 실질적인 억제력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게나마 존재하긴 한다.
따라서 많은 경우 평화는 로마식 방법, 즉 승리를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 모든 군사적 목표가 그렇듯, 승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얻어진다. 대포를 동원하는 것도 포함된다. 명백히 적군은 대포를 쏘아대는데 나만 쓰지 않는다면, 승리할 확률은 극히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유지상주의 진영의 포병 장교는 심각한 도덕적 딜레마에 부딪힌다. 대포를 쏘는 행위가 과연 타격 대상의 자연권을 침해하는가? 포격의 목적 자체가 애초에 상대방의 자연권을 침해하는 데 있다고 본다. 상식적으로 포격 대상이 되는 이들을 직접 붙잡아 그들의 죄가 무엇이든 공정하고 철저한 재판 법정에 세울 수만 있다면, 애당초 대포를 동원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방법이 없기에, 법정 대신 120밀리미터 포탄을 날릴 뿐이다. 결국 폭풍과 파편으로 그들의 자연권을 무참히 짓밟는 셈이다. 심지어 그들이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쾅! 어이, 친구, 그거 정말 아프군.
이것이 바로 전쟁이다. 로마인들이 믿었듯, 전쟁 중에는 법이 침묵하는 법이다(inter arma silent leges). 물론 누구나 이 격언을 뒤집어 생각할 수 있다. 마치 수많은 자동차 범퍼 스티커에 적힌 대로, 아인슈타인이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격언을 뒤집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천 년 동안 이어져 온 격언을 거꾸로 뒤집을 때는, 그 결과 역시 정반대로 나타날 수 있음을 반드시 각오해야 한다. 어쩌면 예상치 못한 좋은 결과가 찾아와 기분 좋게 놀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마찬가지로 전면적인 군사 충돌이 끝나면 평화가 찾아온다. 하지만 단순한 평화는 질서의 가장 낮은 단계에 불과하다. 따라서 평화를 이룩한 국가는 이제 안전이라는 다음 단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국가가 강제력을 독점할 때 비로소 안전이 확보된다. 안전이 사적인 강제력, 즉 범죄의 완전한 소멸을 뜻하지는 않는다. 범죄를 원천 차단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안전이란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범죄가 전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아울러 도적 행위나 납세 거부, 테러, '시민 불복종'에 이르기까지, 국가 권력에 조직적으로 저항하는 행위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를 뜻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저항은 어떻게 '사라지게' 되는가? 물론 저절로 사라지는 일 따위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어림없는 소리다. 오히려 그 반대다. 매우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조직적 범죄를 합법화하여 질서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은 있다. 실제로 국가의 명령이 물리적으로 집행 불가능하다면, 국가는 그 명령을 재고해야 마당하다. 달이 뜨고 지는 것을 법으로 막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대마초 관련 법률이 아마 이에 해당하는 사례일 것이다. 이는 대마초라는 약물이 무해해서가 아니라, 그 식물의 강인한 생명력 때문에 단속이 불가능해서다.
그 외의 경우라면 안타깝게도 방법은 하나뿐이다. 안전은 저항을 짓밟을 때 비로소 확보된다. 이 과정에서 대포까지 동원할 필요는 없어야 한다. 만약 여전히 대포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국가가 아직 평화 달성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방증이다. 반면 모든 안전 문제가 어떤 상황에서든 권리를 보장하는 사법 절차만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가정 역시 전혀 근거가 없다.
여기서 우리는 구면인 오랜 친구, 바로 ‘계엄령’을 마주하게 된다. 계엄령은 수천 년 동안 인정받아 온 주권의 전통적인 속성이지만, 어찌 된 일인지 20세기 후반 들어 묘하게 잊혀 버렸다. 물론 엄밀히 말해 계엄령은 진정한 의미의 법이 아니라, 군 사령관의 자의적인 명령에 불과하다. 즉, 법적 질서라기보다 군사적 질서에 가깝다. 실제로 세계에는 리비아 사막을 막 건너온 낙타가 물 한 잔을 갈구하듯, 이러한 군사적 질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국가들이 제법 많이 존재한다.
대포와 마찬가지로 군사적 질서 역시 군사적 혼돈에서 자유지상주의적 질서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필수 단계다. 대포를 동원해 전쟁에서 승리할 수는 있어도, 계엄령을 통해 그 결과를 공고히 유지하지 못하는 국가는 결코 백성들에게 안전함을 느끼게 해줄 수 없다. 완전히 안전한 사회에서 살아본 적이 있는가? 불행히도 우리 대부분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경험이다.
하지만 군사적 질서는 본질적으로 일시적일 뿐이다. 일단 군사적 질서가 확보되면 다음 단계인 법치로 넘어갈 때다. 국가가 자신의 의지에 저항하는 모든 세력을 진압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국가 스스로 자신의 행동에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부여해야 한다. 이러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제도가 바로 법이다.
대륙법식 성문법과 영미법식 판례법의 장단점을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린다. 법률가도, 비교법학을 공부하는 학생도 아니지만, 나는 관습법을 그저 중세의 폐단일 뿐이라고 여기는 이들의 시각에 마음이 기운다. 영국이 불행하게도 축적된 선례들을 명확히 정제하여 성문화하지 못한 결과물이 바로 관습법이기 때문이다. 명백히 말해 관습법 체제 아래에서의 사법 정의는 딱히 신속하지도, 저렴하지도, 그렇다고 특별히 공정하지도 않다. 다른 장점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안전이 확보되기 전에 법치를 먼저 달성하려는 시도는 안전을 구축하는 작업 자체를 방해할 뿐이다. 반면 안전이 온전히 확보된 상태에서 확립되는 법치는 독자적인 무법자들은 물론, 국가 권력으로부터도 우리를 지켜주는 헤아릴 수 없이 큰 축복을 선사한다. 공권력의 행사가 법에 따라 이루어지면 예측 가능성이 생기기 마련이다. 국가의 행동이 예측 가능해질 때 비로소 합리적인 개인은 이를 미리 가늠하고 법을 위반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 자의적일 수밖에 없는 군사적 '계엄령'은 결코 이러한 보장을 제공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일단 법치가 실현되면, 정부는 마침내 긴장의 끈을 늦추고 격식을 내려놓은 채 편하게 맥주 한 잔을 들이켜며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도록 방치할 수 있다. 인위적인 강제적 질서를 자생적 질서로 대체하는 것이다. 자유가 무질서로 변질될 위험이 전혀 없음을 알기에, 정부는 민간에 대한 개입과 규제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고전적이고 안정적인 틀을 벗어난 상태에서 자연권이라는 자유지상주의적 원칙을 고집하는 행위는, 국가를 그들이 바라는 자생적 질서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방향인 혼돈과 패배, 그리고 파멸로 몰고 갈 뿐이다. 적들은 대포를 쏘아대는데 자신은 쓰지 않고, 적들은 재판 따위로 골머리를 앓지 않는데 자신은 법정만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는 나약해질 수밖에 없으며, 자생적이든 아니든 그 어떤 종류의 질서도 구축해 내지 못하게 된다.
반면 자유지상주의자에게 자유란 그저 독재가 없는 상태에 불과하다. 따라서 자유를 얻으려면 자연권을 침해하는 그 어떤 정부, 즉 독재를 무너뜨리면 그만이다. 이러한 규칙이 특정 상황에서는 올바를지 몰라도, 다른 상황에서는 칼라일주의적 정교한 메커니즘을 망가뜨리는 치명적인 방해물이 될 수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칼라일주의를 따르는 포병 장교는 질서를 바로잡는 여정에서 수많은 자연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히 무정부주의적 성향이 강한 자유지상주의자(예를 들어 엄격한 라스바드식 무정부 자본주의자)들에게는 자생적 질서라는 진정한 열망을 실현해 줄 것처럼 보이던 환상적인 수법이, 결국에는 배신자로 돌변하여 혼돈의 한 형태가 되어버린다. 이 때문에 자유지상주의는 혼돈을 추구하는 세력에게 매력적인 구호로 비칠 수 있으며, 심지어 그들로부터 어떤 동력을 얻기도 한다. 솔직히 말해, 젊은 남성들은 혼돈의 냄새가 풍기는 곳이라면 본능적으로 이끌리기 마련이다. 이는 인류라는 종이 가진 어쩔 수 없는 성격적 결함일 뿐이다.
하지만 진짜 혼돈은 제 동족을 알아보는 법이다. 내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무정부주의 서점이 하나 있다. 그곳에서는 라스바드나 그 어떤 '무정부 자본주의자'의 책도 취급하지 않는다. 그들은 좌파와 우파의 차이를 정확히 알기 때문이다. 두 진영의 지지 기반이 아주 낮은 수준에서 일부 겹칠 수는 있겠지만, 그 결합 지점은 위험 선보다 훨씬 아래에 위치한다. 지지자가 많다고 해서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사실 미제스주의자가 자유지상주의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 그 방법에는 '한스 헤르만 호페(Hans-Hermann Hoppe)'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호페 교수의 저서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Democracy: The God That Failed)》는 내가 읽은 반민주주의 팸플릿 중 여전히 최고로 꼽히며, 최초의 책이기도 했다. 호페 교수가 미제스급은 아닐지라도, 심지어 라스바드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라스바드 이후의 시대를 이끄는 최고의 라스바드주의 학자임은 틀림없다.
호페 교수는 이 고전적이고 안정적인 틀 안에 머물기 위해, 자유지상주의 특유의 박해를 피하기 위한 자기기만을 활용한 세련된 공중 제비를 선보인다.
군주제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인 묘사를 늘어놓았음에도, 나는 군주주의자가 아니며 다음 내용 역시 군주제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군주제를 바라보는 나의 정확한 입장은 다음과 같다. 만약 최고 의사결정권(사법권)과 과세권을 강제적으로 독점하는 기관으로서의 '국가'가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면, 민주제보다는 군주제를 택하는 편이 경제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국가가 정말로 필요한지, 즉 군주제와 민주제 모두를 대체할 제3의 대안이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겨둔다. 역사 또한 이 질문에는 답을 주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역사는 해왕성에 청룡이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답을 줄 수 없다. 그저 지금까지 단 한 마리도 관측된 적이 없다는 사실만을 말해줄 뿐이다.
또한 역사는 우리 인류가 대략 5,600만 년 전, 그러니까 최초의 나무쥐가 최초의 나뭇가지에 영역 표시를 한 이래로 줄곧 주권(主權)의 지리적 독점 체제 위에서 살아왔음을 증명한다. 여러 치안 기관이 같은 지역에서 중첩되어 경쟁하는 실험은 차라리 침팬지들에게 맡겨두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아니면 해왕성의 청룡들을 고용해 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우리는 여기서 혼돈의 순수한 독소라 할 수 있는 무정부주의가 또다시 우파 진영에 불쑥 고개를 드는 모습을 보게 된다. 대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이것이 우파를 더 유능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더 무능하게 만드는가? 무정부주의를 품은 우파가 그렇지 않은 우파보다 승리할 가능성이 더 높겠는가, 아니면 낮겠는가? 그리고 일단 권력을 잡았을 때, 과연 그들이 정치를 더 잘해내겠는가, 아니면 더 망치겠는가?
자, 만약 우리가 좌파 성향의 우파, 즉 좌파의 무기를 휘두르도록 변질된 우파의 역사로 논의를 확장해 본다면,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다름 아닌 히틀러다. 좌파의 색채를 띤 우파 사상이 바로 파시즘이다. 그리고 그 본질은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물론 오늘날 파시즘에는 적들이 차고 넘친다. 그러니 첫째, 이 방식은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둘째, 설령 성공한다 해도 결국 제2의 히틀러를 낳을 뿐이다.
물론 아주 미미한 무정부주의적 성향이 섞여 있다고 해서 호페 교수가 히틀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성향은 그의 영향력을 크게 떨어뜨린다. 그가 기존의 안정적인 틀을 벗어나 ‘군주제’라는 낯설고 새로운 영역을 본격적으로 탐색하는 것을 완전히 가로막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대신, 해왕성의 청룡과도 같은 라스바드식 환상, 즉 경쟁적 치안 기관이라는 이론으로 퇴보하고 만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민주제는커녕 그 어떤 대안도 결코 손에 넣지 못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때 묻지 않은 평범한 인간이었던 나는, 우리 사회의 훌륭한 교육 기관들에서 철저히 길러진 덕분에 핵심적인 미제스주의적 자유지상주의에 입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공식적인 현실에서 절반쯤 발을 뺀, 마치 예언자 무함마드와도 같은 기묘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거대한 거짓말의 그물망에서 상체는 완전히 빠져나왔지만, 엉덩이는 여전히 끼어 있는 형국이었다.
나는 제다이 평의회를 포기하려 했다. 시스의 옛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는 모든 길이 어둡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걸어가야 한다. 사방이 어둡고, 빛은 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자유지상주의와 민주주의가 서로 대립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지상주의를 민주주의의 완성으로 보았다. 내가 꿈꾸던 미래에는 대중도 결국 자유지상주의라는 명백한 진리를 깨닫고, 그 생각을 줄곧 유지할 것이라 믿었다. 그리하여 영원히 자유지상주의 정치인을 뽑아 줄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 정치인들은 자유지상주의에 걸맞게 나라를 다스릴 터였다.
이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겉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그 생각들이 얼마나 실체 없고 부질없는지 곧바로 드러났을 것이다. 단지 자유지상주의적 민주주의자였기에 마음속으로만 막연히 그렇게 믿었을 뿐이다. 민주주의라는 체제 자체를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민주주의를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하자, 자유지상주의가 얼마나 민주주의에 뿌리를 박고 있는지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민주주의가 없다면 자유지상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굳이 필요하기나 할까? 애초에 그런 사상을 떠올릴 수나 있었을까?
자유지상주의는 정부를 운영하는 하나의 공식이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정부를 어떤 공식에 맞추어 운영하겠다는 발상 자체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미제스는 자유지상주의가 아닌 다른 공식들이 왜 잘못되었는지 성공적으로 증명해 냈지만, 정작 자유지상주의를 포함해 그 어떤 공식으로든 정부를 굴리는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점은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공식에 따라 정부를 운영하자는 주장은 결국 단 하나의 목적, 즉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통할 수 있는 정부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결국 자유지상주의는 정부를 다스리는 방법인 동시에, 그 방법을 세상에 강제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한 셈이다. 여기서 통치 방법이란 최소한으로 다스리는 것이고, 수단이란 유권자들에게 작은 정부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그 믿음을 계속 유지하게 만드는 일이다. 글쎄,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이 문제를 바라보는 또 다른 방법은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신봉하는 ‘제한된 정부’라는 개념을 살펴보는 것이다. 내 안의 까칠한 영어 교사 기질을 발휘해 보면, 이 표현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수동태라는 점이다. 도대체 누가 정부를 제한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도 계속 정부를 잘 감시하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만약 제3의 집단이 정부를 제한한다면, 그 집단은 또 누가 제한한단 말인가? 이는 결국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라는 고전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로스바드가 내놓은 해답 역시 유베날리스의 탄식보다 나을 것이 전혀 없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이 질문에 어떤 잘못된 답을 내놓느냐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우선 민주적 자유지상주의자는 국민 주권이 정부를 제한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사람들은 아마 지난 200년 동안 창밖으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전혀 보지 않은 게 틀림없다. 사법적 자유지상주의자는 사법 주권, 즉 헌법 원칙과 영미법 전통을 따르는 사법부가 정부를 제한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들은 지난 75년 동안 세상의 변화에 눈을 감고 있었던 셈이다.
민주적 자유지상주의와 사법적 자유지상주의가 지닌 근본적인 문제는, 역사 속에서 두 사상이 성공을 거둔 사례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성공이 언제나 좌파 진영에서만 일어났다는 점이다. 로스바드가 잘 보여주듯 영미권 역사는 국가 권력에 맞선 대중의 저항과 사법부의 저항을 보여주는 풍부한 보고다. 하지만 이러한 저항은 왕정이나 귀족정 같은 더 높은 권력을 무너뜨리는 과정에서만 힘을 발휘했을 뿐이다. 일단 대중 스스로가 권좌에 오르고 나면, 그들은 더 이상 권력을 제한하라는 식의 불만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오늘날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유권자나 사법부에 자유지상주의 정부를 요구하는 것은, 기득권 집단에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대중은 이미 온갖 권력을 손에 쥐고 있으며, 이 권력을 휘둘러 자신들이 원하는 정부 서비스를 받아내고 있다. 정부 서비스를 없애려면 결국 그들의 권력부터 빼앗아야 하는데, 이는 기득권의 힘을 강제로 꺾겠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법부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정부의 황금기를 살아가고 있다. 현대 정부 시스템에서 내리는 굵직한 행정 결정을 보면,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결국 판사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뉴딜 정책 시절의 법현실주의 법학이 낳은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그런데 사법부가 단지 착한 마음씨를 가졌다는 이유로 이 탐스러운 고깃덩어리를 스스로 내려놓으리라 기대하는가? 도대체 무슨 수로 그 권력을 빼앗겠다는 말인가?
코크 경(Edward Coke)이 찰스 1세와 치열하게 맞서던 시절에는 사법부의 권한으로 정부 권력을 제한한다는 발상이 너무나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판사 역시 인간일 뿐이다. 만약 이 땅에 천사가 살고 있었다면, 우리는 진작에 그들에게 이 감시의 임무를 맡겼을 것이다.
그리하여 결론은 또다시 한곳으로 수렴한다. 자유지상주의는 좌파에게는 유용한 무기가 되지만, 우파에게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상이다. 절대 권력을 쥔 유권자와 사법부는 타인의 권력, 즉 국왕의 권세를 빼앗고 제약하는 일에는 기꺼이 동참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스스로의 권력을 내려놓으라고 설득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민주주의가 구체제의 잔재와 싸울 때는 정부 권력을 제한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일단 그 잔재들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권력을 장악하고 나면, 민주주의는 곧 사회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 될 뿐이다.
후기 미제스 지지자로서 나는 세 번째 부류에 속하는 자유지상주의자다. 바로 국왕의 통치를 지지하는 ‘군주제 자유지상주의자’, 즉 군주주의자다. 호페 교수가 발을 들이기 두려워했던 영역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훌륭한 국왕을 찾아내어 왕위에 앉히고 그 자리를 온전히 지키게 만드는 문제에 천착하기로 했다. 군주주의자 입장에서 볼 때, 훌륭한 국왕이 자유지상주의 정책이 필요한 시점에 이를 충실히 이행하리라는 점은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다.
이 단계에 이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호페의 책을 읽자마자 곧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다른 저작들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자유지상주의 성향이든 아니든 가리지 않았다. 이런 책들이 내가 가진 상식과 도덕관념을 거스를 것이 뻔했기에, 내심 악마의 유황 냄새라도 풍기지 않을까 각오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그런 책들을 제법 많이 찾아낼 수 있었다. 세상에는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저작이 생각보다 꽤 많다. 다만 1945년 이후에 나온 책은 거의 없었다. 대개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논문이나 저술은 오래된 것일수록 깊이가 있었지만, 빅토리아 시대 전성기의 저작들은 아주 훌륭한 예외였다.
그렇게 찾아낸 인물이 바로 칼라일이었다. 그는 실로 유황 냄새를 풀풀 풍기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바라본 유황 가득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증언했다. 그리고 그가 예언했듯, 세상은 실제로 훨씬 더 지옥처럼 변해갔다. 칼라일이 눈앞에서 악마의 존재를 한번 똑똑히 보여주고 나면, 그 누구도 더 이상 그 존재를 모른 척할 수 없게 된다.
미제스 지지자를 위해 칼라일의 시각에서 던지는 간단한 수수께끼가 여기 있다. 다음 질문들에 답해 보라.
1. 당신은 도시에 살고 있는가? 아니라면 왜 살지 않는가?
2. 만약 도시에 살고 있다면, 낮이든 밤이든 그 도시의 어느 곳이든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가?
3. 만약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없다면, 도대체 어떤 권력이 당신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면 다음 두 가지 사실 중 하나가 극명하게 드러날 터다. 당신이 사는 행성이 우리가 아는 지구가 아니거나, 당신의 천부적 권리를 가장 직접적이고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존재가 공권력이 아닌 비공식적인 세력이라는 사실 말이다. 쉽게 말해, 당신의 자유를 가로막는 것은 경찰이 아니라 범죄자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좌파 진영이 득세하는 동안 범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칼라일의 사상적 관점과 정확히 일치하며, 실제로 칼라일 본인이 예언했던 바이기도 하다. 예컨대 소설 『주홍색 연구(A Study in Scarlet)』로 돌아가 보면, 셜록 홈즈가 늘어놓는 흥미로운 불평을 한 편 마주하게 된다.
“요즘 세상에는 범죄도 없고 범죄자도 없군.” 그가 뾰로통한 말투로 불평했다. “우리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머리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내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릴 만한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네. 범죄 수사를 위해 나만큼 치열하게 연구하고 타고난 재능을 쏟아부은 사람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테니까 말일세. 그런데 결과가 고작 이거라니. 수사할 범죄 자체가 아예 없거나, 기껏해야 스코틀랜드 야드의 그 둔한 수사관들조차 단번에 알아차릴 만큼 동기가 뻔히 보이는 어설픈 악행뿐이잖나.”
공식 통계는 코난 도일이 글을 쓰던 시절 이후로 영국의 범죄율이 대략 50배나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물론 그의 소설 속 셜록 홈즈는 당대의 생생한 현실 세계를 배경으로 활약했으며, 실제로 작품의 거대한 성공은 현실의 세밀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은 집요한 묘사 덕분이었다.
따라서 DNA 검사나 폐쇄회로 카메라가 없던 시절에도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정부는 범죄를 거의 완벽히 뿌리뽑았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오늘날의 영국 정부와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굴러가는 다른 정부들은 범죄를 근절하고 싶어 하는 시늉만 낼 뿐, 실제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가식적인 태도를 의심해 보아야 할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 우리가 이를 의심할 자격이 있을까?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범죄를 근절하겠다는 태도가 정말로 가식에 불과하다면, 그리고 공권력의 집행으로 범죄를 충분히 막을 수 있다면, 우리는 현 체제에 대단히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범죄를 뿌리뽑을 수 있는데도 그러지 않기로 선택한 정부는 결국 범죄의 공범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전례 없는 심각한 직무유기를 인정하기는커녕, 사실 자체를 부정하며 무능하다는 뻔한 핑계만 늘어놓고 있다. 과거 나치 친위대가 리가 지역 유대인들에 대한 경찰 보호를 철회했을 때, 그 이후 발생한 라트비아인들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도덕적 책임은 온전히 친위대에 있었다. 설령 당시 지휘관들이 점심을 먹으러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므로 자유지상주의자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천부적 권리를 지키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은, 범죄에 대한 경찰의 무자비한 소탕 작전을 지지하는 일이다. 예컨대 역사적으로 검증되었고 실현도 가능한 빅토리아 시대의 법 집행 기준과 방식을 다시 도입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실책이 생기고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에 사는 자유지상주의자로서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려는 사람이라면, 그 가해자가 누구든 어떤 제복을 입었든 간에 사회 전체의 권리 침해 건수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마땅하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범죄자가 아닌 경찰의 편에 서야 한다. 경찰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는 대개 실수나 일부 직무유기 때문이지만, 범죄자는 아예 일상적으로 타인의 권리를 짓밟기 때문이다. 실제로 누가 경찰이고 누가 범죄자인지 구별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푸른 파도를 몰아칠 때가 왔다! 영화 속 트래비스 비클(Travis Bickle)의 대사처럼, 언젠가 진짜 비가 내려 이 거리의 모든 오물을 씻어내 줄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비는 이미 내리기 시작했다. 바로 브라운 대통령이라는 이름의 비다. “브라운 대통령을 건드리는 풋내기들은 모두 끝장나고 말 것이다!” 그 시원한 빗줄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예방 구금 시설들이 버섯처럼 우후죽순 생겨날 터다. 그리하여 미국의 거리들은 다이아몬드처럼 깨끗하게 청소되고, 백악관 잔디밭만큼이나 안전한 곳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물론 이는 로스바드의 여러 면모 중 하나, 즉 라스바드-록웰 리포트 시절의 모습을 다소 과장한 버전이기는 하지만 결코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유지상주의 원칙을 이렇게 확장하는 것이 왜 부적절한지 변명하는 논리들이 여럿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내 기억에 남겨둘 만큼 가치 있는 변명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러한 ‘경찰 공권력을 무자비하게 풀어 범죄를 소탕하는 자유지상주의’의 세부적인 내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사실은 로스바드주의 이론이 스스로 모순에 빠진다는 점이다. 통치자는 타인의 권리 침해를 최소화하는 임무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엄격한 로스바드식 방법론을 그대로 적용했는데도, 정작 결론은 전혀 로스바드답지 않은 기묘한 지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인간 행동에 대한 선험적 인간행동학에서 출발해 뜬금없이 조 아파이오(Joe Arpaio) 같은 강경파 보안관을 도출해 낸 셈이다. 이 결론 자체가 틀렸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미제스 학파의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낯설고 기이한 결과임이 분명하다.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반동주의 사상가 퀴넬트 레딘(Erik von Kuehnelt-Leddihn)이 처음 대중화한 공식, 즉 ‘우파는 옳고 좌파는 그르다’라는 명제를 마주할 때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참고로 그는 호페 교수의 책을 읽은 뒤에 함께 읽기 아주 좋은 작가다. 다른 건 몰라도 미제스 연구소에서 그의 책들을 소장하고 있으니, 학계에서도 그의 사상을 인정한 셈이다.
그렇다. 나는 우파는 옳고 좌파는 그르다는 이 명제를 진심으로 믿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순수한 우파 사상일 때만 그렇다. 순도 100퍼센트의 진정한 우파만이 옳고 좌파는 그를 뿐이다. 만약 두 사상이 어설프게 뒤섞인다면, 그 결과가 어떨지는 오직 악마만이 알 터다. 20세기를 얼룩지게 한 두 가지 거대한 전체주의 독재 체제는 모두 우파와 좌파, 즉 질서와 혼돈이 한데 버무려진 결과물이었으며 두 성향 모두 뚜렷하게 나타났다. 만약 단순한 무정부 상태보다 더 악마 같은 무언가가 존재할 수 있다면, 두 사상의 끔찍한 혼종이야말로 그 증거다.
예컨대 우파가 옳고 좌파가 그르다면, 19세기와 20세기에 일어난 모든 주요 정치·군사적 갈등에서 무조건 우파의 편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나치뿐만 아니라 독일 제국의 카이저, 오스만 제국의 술탄, 심지어 미국 남부 연합의 편까지 들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물론 이 결론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역시나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스스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그 답은 우리가 우파의 만행을 목격하는 곳마다, 근본적으로 혼돈을 유발하는 요소에 의해 체제의 질서가 심각하게 오염된 우파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에 수많은 반동적 세력이 존재했음에도, 왜 하필 나치가 최종 승자로 떠올랐을까?
나치즘이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살아남아 성공하기에 가장 적합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하층 계급의 천박한 편견인 반유대주의를 적극 활용하여, ‘조직된 유대인 집단’이라는 만만한 희생양을 내세울 수 있었다. 대중이라는 사냥개들에게 소수자라는 신선한 고깃덩어리를 미끼로 던져준 셈이다. 반면 타트크라이스(Tatkreis) 같은 정통 보수 지식인 집단에게는 군중을 유혹할 만한 그런 천박한 미끼가 없었다. 바이마르 체제가 무너진 뒤 독일의 보수혁명론자들이 집권했다면 나라를 어떻게 다스렸을지는 알 길이 없다. 민주적인 바이마르 체제 하에서는 그들이 결코 선거로 뽑힐 리 없었고, 그렇다고 체제를 스스로 뒤엎을 힘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파 운동이 좌파적 담론을 차용하는 현상을 여기서도 목격하게 된다. 히틀러는 도대체 어디서 독일 민족주의라는 사상에 물들었을까? 이 고약한 벌레 같은 사상은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 어쩌면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민족주의로부터 건너왔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다뉴브강을 건너 헝가리 민족주의에서 흘러들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어디에선가 시작되었을 터다.
(이후에 등장한) 독일이나 (종종 나타난) 프랑스의 민족주의라는 뚜렷한 예외를 제외하면, 유럽의 모든 민족주의 운동은 사실 영국과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이 애지중지 키워낸 합작품이었다. (그렇다. 온전히 그렇지는 않더라도 대개는 그 맨체스터 자유주의자들이 맞다.) 마치니(Giuseppe Mazzini),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 코슈트(Lajos Kossuth) 같은 인물들이 런던을 방문했을 때 군중이 환호성을 지르며 열렬히 맞이했던 것처럼 말이다. (반면 하이나우 장군(Julius Jacob von Haynau) 같은 반동적인 인물은 목숨이라도 건져 도망치면 다행인 처지였다.)
민주주의라는 토양이 없다면 민족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이 둘을 마치 카포시 육종과 에이즈처럼 동시에 발병하는 합병증으로 보아야 한다. 나치는 민주주의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이 카포시 육종 같은 민족주의를 결코 해서는 안 될 무기로 역이용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러한 꼼수는 절대 쓰지 말아야 한다. 이 방식이 (어느 정도) 통했던 유일한 사례마저도 결과가 참혹하기 그지없었을 뿐만 아니라, 대개는 그저 적의 면역 체계를 자극해 경계심만 키우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도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만을 말하는 편이 실전에서 얼마나 유리한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보다 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왕당파가 자유지상주의자나 급진적 공화주의자를 설득할 때 던질 수 있는 또 하나의 쉬운 질문이 있다. 바로 프리드리히 대왕과 히틀러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결국 두 사람 모두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절대적인 개인 권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히틀러의 독일에서는 난민들이 밖으로 탈출했던 반면, 프리드리히 대왕의 프로이센은 오히려 난민들이 찾아드는 망명처였다. 과연 이러한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예측할 수 있었을까?
왕과 독재자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인류 역사와 늘 함께해 온 왕정이라는 제도를 20세기가 낳은 괴물 같은 기형적 독재 정권과 계속해서 혼동할 수밖에 없다. 사실 20세기의 독재 정권들은 구체제의 활력을 되찾으려는 시도였다. 다만 그중 나쁜 독재 정권들은 시도 자체가 엉망이었을 뿐이다. 나쁜 것은 나쁜 것이다. 왕정이든 민주주의든 세상에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제도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히틀러 역시 토머스 칼라일의 열렬한 팬이었다. 하지만 히틀러는 어디까지나 히틀러였을 뿐이다. 히틀러와 프리드리히 대왕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코 히틀러를 잘 몰라서가 아니다. 오늘날의 지식인은 나치 독일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상(像)을 가지고 있다. 사실 그들이 이해하는 모든 역사적 시기 중 제3제국을 가장 잘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개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보다 나치 시대를 더 잘 이해한다. 생존해 있는 민주주의 체제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민주주의적 미화가 끼어들기 마련이지만, 이미 사라진 나치 체제를 바라볼 때는 나치식 위선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반면 정작 구체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다.
히틀러와 프리드리히 대왕 사이에는 수많은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꼽자면 단연 안정성이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대외적인 적들로부터 완전히 안전하지는 않았을지언정, 대내적인 반대 세력으로부터는 매우 안전했다. 그를 죽이려는 사람도 없었거니와, 설령 죽인다 한들 반대파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전혀 없었다. 한 마디로 그는 왕이었다. 왕이 세상을 떠나면 그 자리는 이미 정해진 다음 후계자가 자동으로 승계한다. 설마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선왕이 암살당하더라도, 새로 즉위할 왕은 대개 그 암살자나 배후 세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재자는 전혀 다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히틀러를 암살하려 했고, 그 시도가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그야말로 악마가 도운 기적이었다. 만약 엘저(Georg Elser)의 폭탄 테러가 성공했더라면 역사의 물줄기는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다. 무대 뒤에서 대기하는 '히틀러 2.0'도, 부(副)총통도, 히틀러의 아들도 없었기 때문이다. 온갖 결점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대체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암살을 시도할 유인은 충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히틀러는 프리드리히 대왕과 달리 결코 안전하지 않은 자신의 주권을 공고히 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여야만 했다. 예컨대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고 공산주의자들과 싸워야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주권은 대중적 인기에 기반을 두었고, 대중이 증오하는 적들과 싸움으로써 그 인기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히틀러라는 존재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히틀러는 부하 직원 여러 명에게 같은 업무를 맡겨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이른바 '상자 속의 둘(two in a box)' 경영 방식으로도 유명하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이라면 결코 추천하지 않을 방식이다. 다른 일 처리도 대개 이런 식이었다. 따라서 히틀러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었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그에게는 폭정을 부릴 만한 합리적인 동기가 있었던 셈이다. 그의 정권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었고, 그렇기에 본질적으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히틀러의 가장 강력한 적수였던 스탈린에게서 훨씬 더 끔찍한 형태로 나타난다.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기이한 문서 중 하나는 웹 부부(시드니 웹과 비어트리스 웹)가 쓴 에세이 《스탈린은 독재자인가?(Is Stalin a Dictator?)》이다. 물론 그들의 대답은 '아니다'였다.
간혹 형식이야 어떻든 간에, 실제로는 공산당이 행정부 전체를 장악하고 있으며 그 당마저도 결국 이오시프 스탈린이라는 단 한 사람의 의지에 따라 좌지우지되므로 결과적으로 국가 전체가 그의 지배를 받는다는 주장이 제기되곤 한다.
하지만 우선 무솔리니나 히틀러를 비롯한 여타 현대의 독재자들과 달리, 스탈린에게는 일반 시민은 물론 자신이 속한 당의 구성원들에 대해서조차 어떠한 법적 권한도 부여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스탈린이 독재자가 아닌 이유는, 히틀러와 달리 '법적으로' 독재자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서류상으로 그는 자신의 직함 그대로 소련 공산당 총서기일 뿐이다. 직함이 고스란히 보여주듯, 이는 순전히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서기직에 불과하다.
현실에서의 스탈린은 당연히 독재자였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그의 지위는 오히려 매우 위태로웠다. 나치당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공산당 특유의 명목상 집단 지도체제, 즉 상향식 민주주의 구조 안에서 스탈린은 일개 서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성문화되지 않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 그는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차르(Tsar)였다.
따라서 이 체제가 비공식적인 짜르 체제에서 공식적인 '민주주의적 중앙집권제'로 한순간에 되돌아갈 가능성은 매 순간 잠재해 있었다. 공식적이고 제도적인 차원에서 스탈린주의는 상향식의 극단적인 좌파 민주주의 정부다. 그러나 비공식적인 실제 현실에서 스탈린주의는 하향식의 극단적인 우파 전제정치 정부다. 이 괴리는 너무나도 컸다. 흑과 백이 하나의 책상을 공유하는 파멸적인 혼란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스탈린은 차르의 권력을 가졌지만, 차르의 안정성은 결코 누리지 못했다.
스탈린이 그토록 많은 원로 공산주의자들을 숙청한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일단 숙청의 칼을 뽑아 든 이상 멈출 수 없었다. 그야말로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었다. 스탈린이 사망하자 베리아(Lavrentiy Beria)가 그 자리를 차지해 이 체제를 유지하려 했다. 베리아에 대해 수많은 악평이 쏟아졌고 그중 대부분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겠지만, 내가 알기로 그를 나약하고 겁 많은 인물로 묘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덕에 그는 예상외로 오래 버텼다. 거의 네 달이나 자리를 지켰다. 물론 그 뒤에는 총살당했지만 말이다. 이후 소련에는 다시는 진정한 의미의 독재자가 등장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민주주의 국가가 된 것은 결코 아니었고, 과두제 체제로 전환되었다. 이후의 서기장들은 정치국원들 사이에서 엄격하게 '동등한 자들 중의 제1인자'에 불과했다.
이처럼 우리는 독재 정권에 내재된 필연적인 혼란을 목격하게 된다. 독재자가 타락하는 이유는 안정성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개인의 정신적 안정 여부와 관계없이, 체제 자체의 불안정성이 그로 하여금 폭정을 휘두르도록 강요하는 셈이다. 물론 그가 편집증적인 사디스트(sadist)라면 그 성향 역시 폭정을 부추길 수 있으며, 실제로 이러한 성격은 독재자 자리에 오르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왕정에서 이러한 성격은 결코 군주의 자격 요건이 될 수 없다.
물론 독재도 왕정으로 진화할 수 있다. 역사상의 모든 왕정은 어떤 의미에서는 독재에서 출발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사례가 좋은 예다. 하지만 독재가 이러한 전환을 이뤄내고 안정과 영속성을 확보하려면, 처음부터 그렇게 되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야만 한다. 20세기의 독재 정권들은 주로 자신들을 권력의 자리에 앉힌 그 과정의 요구에 맞춰 설계되었다. 그 과정은 추악했으며, 안정성과 영속성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에 결국 폭군을 길러낼 수밖에 없었다. 잘못 돌아가는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이 사악하고 혼란스러운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폭군뿐이었기 때문이다.
왕당파로서 나는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절대왕정을 지지한다. 즉, 일정한 책임 메커니즘을 전제로 하는 무조건적인 개인의 권위다. 그렇다고 내가 특정 왕조를 추종하거나, 왕위 계승 방법으로서의 세습 원칙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엘리자베스 시대의 또 다른 정치적 혁신이었던 주식회사 모델을 선호한다. 국가는 그 수혜자들의 지분에 따라 비례적으로 운영되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처럼 경영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스튜어트 왕가의 복위와 영미권 공화주의 전통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전자를 선택하는 입장도 존재한다.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보통선거에 의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선출될 수도 있다. 히틀러와 같은 인물의 등장을 의도한다면, 이러한 경로가 그 방법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칼라일을 홍보하는, 혹은 최소한 그가 어떤 인물인지 설명하는 역할은 제법 잘 해낸 것 같다. 하지만 내 홍보가 정말 사실일까? 그리고 칼라일에 관한 글을 읽기 전에, 먼저 그의 글을 직접 읽어보라고 권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제 더는 머뭇거리지 말고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개인 통치에 대한 추상적인 이론은 이쯤 해두자. 이제 실제 사례를 살펴볼 차례다. 칼라일의 에세이 중 다소 도전적이면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글을 하나 골라보았다. 이론이라는 약은 이미 삼켰으니, 이제는 실전이다. 이 빨간 약을 마저 삼켜낼 수 있다면 당신은 치유된 셈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그게 아마 정상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그러니까.
일부 좌파 진영의 잘못된 비난과는 달리, 피노체트 장군(Augusto Pinochet)이 자유지상주의 진영에서 딱히 인기가 많거나 칭송받는 인물은 아니다. 게다가 자유지상주의자 중 천 명에 한 명꼴도 안 되는 이들조차 19세기 파라과이에 존재했던 그의 닮은꼴 인물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바로 칼라일의 위대한 에세이 《닥터 프란시아(Dr. Francia)》(1843)의 주인공 이야기다.
칼라일이라는 독특한 사상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싶다면, 《닥터 프란시아》는 아마 최고의 입문서가 될 것이다. 우선 이 글은 세간의 통념을 거스르기 시작한 칼라일 후기 작풍의 서막을 여는 작품이다. 바쁜 현대인이라면 그의 저작 중 오직 이 후기 시기의 글들만 읽어도 충분하다. 게다가 우리가 실제 프란시아 박사에 대해 아는 바는 당시 칼라일이 알았던 것보다도 훨씬 적기 때문이다.
칼라일은 어설픈 문인에 불과한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대 어떤 학자보다도 철저히 사료를 검증했던 근면한 역사학자였다. 그런 그조차 사료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오늘날이라고 상황이 딱히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파라과이학(學)이 대학에서 인기 있는 전공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구글에서 실제 프란시아 박사를 검색해 보기 전에, 우선 이 책을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 위키백과의 서술이 당시 로버트슨 형제가 출간한 모호한 회고록 《파라과이에서 보낸 편지(Letters on Paraguay)》보다 더 명확한 시각을 보여주는지는 결코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키백과의 내용은 그 회고록을 요약해 놓은 수준에 불과해 보인다. 그렇다면 로버트슨 형제의 기록이 전적으로 옳았던 걸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 베일에 싸인 아득한 과거여.
그리고 만약 《닥터 프란시아》를 읽고도 여전히 충격을 받았다면, 처방은 단 하나뿐이다. 당신이 충격을 받은 이유는 그 사안 자체만을 절대적인 기준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선택지가 아닌 다른 대안과 비교해 보지 않은 탓이다. 그렇다면 그 대안이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독자 여러분에게 2010년 반드시 봐야 할 첫 번째 영화, 혹은 최소한 꼭 시청해야 할 인터넷 영상 하나를 기쁜 마음으로 추천하고자 한다. 바로 셰인 스미스가 제작한 《바이스 가이드 투 라이베리아(Vice Guide to Liberia)》다. "우리 바이스 제작진은 아주 오랜 기간 라이베리아라는 나라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영상은 이렇게 시작하며, 식인 풍습을 가졌던 군벌 '엉덩이를 깐 장군' 조슈아 밀턴 블라히(Joshua Milton Blahyi)의 존재를 우리에게 소개한다. 자, 당신이라면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프란시아 박사인가, 아니면 블라히 장군인가? 독자 여러분, 조건은 대등하다. 어떤 대안이 더 나은지 똑바로 비교해 보라.
- 주석 -
[1] 《차티즘》에서 언급된 이 구절은 통계학의 역할을 설명하는 맥락에서 나온다.
통계학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학문이며 수많은 중요한 학문의 토대다. 하지만 다른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통계학 역시 증기기관처럼 기계적으로 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현명한 통찰력이 필수적이다.
[2] 이 장의 후반부에서 잠시 다루겠지만, 몰드버그는 국왕을 '교체 가능한 최고경영자(CEO)'로 보는 주식회사 모델을 옹호한다. 이 모델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는 《무조건적 유보에 대한 친절한 입문서(A Gentle Introduction to Unqualified Reservations)》 제4장과 《패치워크: 21세기를 위한 정치 체제(Patchwork: A Political System for the 21st Century)》를 참고하면 된다.
- 원문 링크: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10/02/from-mises-to-carlyle-my-sick-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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