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스,제도에 의해 성립된 주권자의 권리들에 관하여

토머스 홉스, 《리바이어던》


제18장. 제도에 의해 성립된 주권자의 권리들에 관하여


국가가 제도에 의해 성립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국가는 다수의 사람들이 서로 합의하고 계약을 맺어, 특정한 개인이나 사람들의 집단에게 다수결로 모두를 대표할 권한을 부여할 때 성립한다. 다시 말해, 그 개인이나 집단을 자신의 대표자로 세우는 것이다. 이때 찬성한 사람뿐 아니라 반대한 사람까지도 그 대표자 개인이나 집단이 내리는 모든 행위와 판단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승인하고 책임지기로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 평화롭게 살아가고, 외부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된다.


이 제도에서 비롯되는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신민은 정부 형태를 바꿀 수 없다


국가가 제도에 의해 성립하면, 주권이 국민의 동의로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게 부여되는 순간부터 그들에게 귀속되는 모든 권리와 권한도 함께 성립한다.


우선, 사람들이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는 것은 그 계약과 양립할 수 없는 이전의 계약에는 더 이상 구속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미 국가를 세운 사람들은 계약을 통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행위와 판단을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기로 약속했으므로, 그들의 동의 없이 서로 새로운 계약을 맺어 다른 누구에게든 복종하겠다고 약속할 수 없다.


따라서 군주를 주권자로 둔 신민은 군주의 허락 없이 군주제를 폐기하고 흩어진 군중의 혼란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 또한 자신을 대표하는 권한을 현재의 군주에게서 다른 개인이나 다른 집단으로 옮길 수도 없다. 그들은 서로에게 계약으로 묶여 있으며, 현재의 주권자가 행하고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일을 자신의 행위로 인정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설령 단 한 사람이라도 이에 반대한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 한 사람과 맺은 계약을 깨뜨리는 셈이 되며, 이는 곧 불의다.


더욱이 그들은 모두 자신을 대표할 권한, 곧 주권을 이미 그 주권자에게 부여했다. 따라서 그를 폐위시키는 것은 그에게 속한 권리를 빼앗는 일이므로 역시 불의다.


또한 주권자를 폐위하려다 그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처벌을 받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처벌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국가를 세울 때 이미 주권자가 하는 모든 행위를 자신의 행위로 승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권한으로 정당화한 처벌을 받을 행동을 하는 것은 부정의이므로, 이런 이유에서도 그의 행위는 불의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불복종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간이 아니라 신과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역시 불의다. 신과의 계약은 신을 대표하는 중개자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신 아래에서 주권을 행사하는 신의 대리자뿐이다. 따라서 신과 직접 계약을 맺었다는 주장은, 그것을 내세우는 사람 자신도 거짓임을 알고 있는 명백한 허위다. 그것은 단지 불의한 행위일 뿐 아니라 비열하고 비겁한 태도이기도 하다.


2. 주권은 박탈될 수 없다


둘째, 모든 사람을 대표할 권리는 신민들끼리 맺은 계약을 통해 주권자에게 부여된 것이지, 주권자가 신민들과 맺은 계약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따라서 주권자가 계약을 위반하는 일은 있을 수 없으며, 그 결과 어떤 신민도 주권자가 권리를 잃었다는 이유를 내세워 그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주권자가 미리 신민들과 계약을 맺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만약 계약을 맺는다면, 하나의 당사자인 전체 인민과 맺거나, 아니면 각 개인과 따로 맺어야 한다. 그러나 전체 인민과 하나의 당사자로 계약을 맺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시점에는 아직 그들이 하나의 인격체를 이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모든 사람과 각각 계약을 맺었다고 해도, 주권이 성립한 뒤에는 그런 계약은 효력을 잃는다. 어느 한 사람이 계약 위반을 주장하더라도, 그 문제의 행위는 주권자가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권리로 행한 것이며, 동시에 각자가 승인한 행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떤 사람이 주권자가 국가를 세울 때 맺은 계약을 어겼다고 주장하더라도, 다른 신민이나 주권자 자신이 그런 위반은 없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경우 그 다툼을 판정할 재판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문제는 다시 무력에 의해 해결될 수밖에 없고,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지킬 권리를 되찾게 된다. 이는 국가를 세운 본래 목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따라서 선행 계약을 조건으로 주권을 부여한다는 발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군주의 권력이 계약, 다시 말해 일정한 조건 아래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단순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계약은 말과 약속에 불과하며, 그것만으로는 누구도 구속하거나 억제하거나 보호할 힘이 없다. 계약이 효력을 가지는 것은 오직 공적인 칼, 곧 주권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의 강제력 덕분이다. 그들의 권력은 모든 사람이 승인한 것이며, 모두의 힘이 그들에게 결집되어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효력을 갖는다.


반면 사람들의 집단이 주권자가 되는 경우에는, 국가가 성립할 때 그런 계약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예를 들어, 로마라는 정치 공동체가 일정한 조건 아래 주권을 행사하기로 로마 시민들과 계약을 맺었고, 그 조건을 어기면 시민들이 그 공동체를 합법적으로 폐위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군주제에서는 이치가 다르다고 여기는 것은, 일부 사람들이 군주제보다 자신도 권력을 나누어 가질 가능성이 있는 집단 통치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결코 차지할 수 없는 군주의 권력보다, 참여할 여지가 있는 의회의 권력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3. 다수의 결정으로 성립한 주권에 반대하는 것은 불의다


셋째, 다수의 찬성으로 주권자가 결정되었다면, 반대했던 사람도 이제는 다수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다시 말해, 그 주권자가 행하는 모든 일을 자신의 행위로 인정해야 하며, 이를 거부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정당하게 제압되거나 제거될 수 있다.


그가 자발적으로 그 집회에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다수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며, 곧 암묵적으로 그런 계약을 맺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수의 결정에 따르기를 거부하거나 그들의 결의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자신이 맺은 계약을 어기는 일이므로 정의롭지 못하다.


설령 그가 그 집회의 구성원이 아니었거나, 그의 동의가 애초에 요구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는 다수의 결정을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국가가 세워지기 이전의 전쟁 상태에 머물러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는 누구에게든 정당하게 공격받거나 죽임을 당할 수 있다.


4. 신민은 주권자의 행위를 정의롭지 못하다고 비난할 수 없다


넷째, 모든 신민은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 주권자가 행하는 모든 행위와 판단의 공동 작성자이자 승인자가 된다. 따라서 주권자가 무엇을 하든 그것은 어떤 신민에게도 법적인 의미의 침해가 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그를 정의롭지 못하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남의 권한을 위임받아 행동하는 사람은 그 권한을 부여한 사람에게 침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국가가 성립할 때 모든 개인은 주권자가 하는 모든 행위의 승인자가 되었으므로, 주권자로부터 침해를 당했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승인한 행위를 문제 삼는 셈이다. 그러므로 그가 비난할 수 있는 대상은 다른 누구도 아니라 자기 자신뿐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 침해를 가했다는 주장 역시 성립할 수 없다. 스스로에게 법적인 침해를 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주권자는 악한 행동이나 도덕적으로 그릇된 일을 저지를 수는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신민에게 불의를 행하거나 권리를 침해할 수는 없다.


5. 신민은 어떤 경우에도 주권자를 처벌할 수 없다


다섯째, 앞에서 말한 내용의 귀결로, 주권을 가진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신민들에 의해 정당하게 사형을 당하거나 그 밖의 어떤 처벌도 받을 수 없다.


모든 신민은 주권자가 행하는 모든 행위의 승인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민이 주권자를 처벌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승인한 행위를 이유로 다른 사람을 처벌하는 셈이 된다.


6. 평화와 방위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는 주권자가 판단한다


여섯째, 국가를 세우는 목적은 모든 사람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데 있다. 목적에 대한 권리를 가진 사람은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수단에 대한 권리도 가진다. 따라서 주권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은 평화와 방위를 위한 수단이 무엇인지, 또 그것을 가로막거나 해치는 요소가 무엇인지 판단할 권리를 갖는다.


또한 국내의 불화와 국외의 적대 행위를 미리 막아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으며, 평화와 안전이 이미 무너졌다면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일을 할 권리도 갖는다.


또한 어떤 사상과 학설을 가르칠 것인지도 주권자가 판단한다


여섯째, 어떤 의견과 학설이 평화에 해롭고 어떤 것이 평화에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하는 권한도 주권에 속한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 어디까지, 무엇을 사람들에게 말하도록 허용할 것인지, 또 대중 앞에서 발언할 사람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결정하는 권한 역시 주권자에게 있다. 출판되기 전에 모든 책의 내용을 심사할 사람을 임명하는 권한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행동은 그가 가진 의견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사람들의 의견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것은 그들의 행동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일이며, 이는 평화와 화합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물론 학설을 판단할 때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은 오직 진리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평화를 위해 학설을 규제하는 것이 진리와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평화에 반하는 학설이 진리일 수는 없다. 평화와 화합이 자연법에 어긋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통치자와 교육자의 무능이나 태만 때문에 거짓된 학설이 오랫동안 널리 퍼진 나라에서는, 오히려 참된 학설이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진리가 갑작스럽고 격렬하게 등장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평화를 깨뜨리는 일은 없다. 진리가 하는 일은 기껏해야 이미 존재하던 전쟁을 드러낼 뿐이다.


어떤 의견을 지키거나 새로운 의견을 퍼뜨리기 위해 무기를 들 정도라면, 그런 사람들은 애초부터 평화로운 상태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서로를 두려워해 무기를 잠시 내려놓았을 뿐이며, 언제든 전투가 벌어질 수 있는 전쟁 직전의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견과 학설을 심사할 것인지, 또는 그 일을 맡을 심사관을 임명할 것인지는 주권자의 권한에 속한다. 이는 불화와 내전을 미리 막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권한이다.


7. 각자의 권리를 정하는 규칙을 제정할 권한도 주권에 속한다


일곱째, 모든 사람이 어떤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누릴 수 있으며, 어떤 행위를 다른 신민의 방해 없이 할 수 있는지를 정하는 규칙을 제정할 권한 역시 주권에 속한다.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재산권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주권이 성립하기 전에는 모든 사람이 모든 것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태는 필연적으로 전쟁을 낳는다. 따라서 재산권은 평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그것은 주권에 의해서만 성립한다. 다시 말해, 재산권은 공공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주권이 행사하는 권한의 산물이다.


무엇이 내 것이고 무엇이 남의 것인지, 무엇이 선과 악이며 무엇이 적법하고 위법한지를 정하는 이러한 규칙이 바로 시민법이다. 곧 각 국가가 제정한 법을 말한다. 오늘날에는 '시민법'이라는 말이 흔히 고대 로마의 시민법만을 가리키는 데 쓰이지만, 그것은 당시 로마가 세계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법이 널리 시민법으로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8. 재판과 분쟁을 최종적으로 판단할 권한도 주권에 속한다


여덟째, 재판권 역시 주권에 속한다. 다시 말해, 시민법이든 자연법이든 법과 관련된 모든 분쟁은 물론, 사실관계에 관한 모든 다툼을 심리하고 판결할 권한은 주권자에게 있다.


분쟁을 최종적으로 해결할 권한이 없다면, 어느 신민도 다른 신민의 침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다. 무엇이 내 것이고 무엇이 남의 것인지를 규정한 법도 아무런 의미를 잃는다. 결국 사람들은 자기보존이라는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욕구에 따라 다시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지키려 할 것이며, 이는 곧 전쟁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를 세운 본래 목적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9. 전쟁과 평화를 결정할 권한도 주권에 속한다


아홉째, 다른 나라나 국가와 전쟁을 할 것인지, 평화를 맺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권한 역시 주권에 속한다. 다시 말해, 무엇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판단하고, 그 목적을 위해 어느 정도의 병력을 모집하고 무장시키며 유지할 것인지 결정하는 권한도 주권자가 가진다. 또한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신민에게 세금을 부과할 권한도 주권에 포함된다.


국민을 보호하는 힘은 군대에서 나오고, 군대의 힘은 하나의 지휘 아래 모두의 역량이 결집될 때 비로소 생긴다. 그 지휘권은 국가를 세울 때 주권자에게 부여된 것이다. 실제로 군대를 지휘하는 권한만으로도 그 사람은 주권자가 된다. 따라서 누군가가 군대의 장군으로 임명되더라도, 최고사령관은 언제나 주권자 자신이다.


10. 평시와 전시를 막론하고 모든 고문과 관리를 임명할 권한도 주권에 속한다


열째, 평시와 전시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고문, 행정관, 재판관, 그리고 각종 공직자를 임명할 권한 역시 주권에 속한다.


주권자는 공동체의 평화와 방위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수단을 선택하고 활용할 권한도 당연히 그에게 주어진다.


11. 상벌을 내릴 권한도 주권에 속하며, 법에 규정이 없을 경우 그 기준은 주권자의 재량에 따른다


열한째, 신민에게 재산이나 명예를 내려 포상하고, 신체형이나 벌금, 또는 명예를 박탈하는 방식으로 처벌할 권한 역시 주권에 속한다. 이러한 상벌은 주권자가 미리 제정한 법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러나 법에 그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주권자는 무엇이 공동체에 가장 도움이 되는지를 기준으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국가를 위해 봉사하도록 장려하고, 국가에 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상과 벌을 정할 권한을 가진다.


12. 명예와 서열을 정할 권한도 주권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사람은 본래 자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다른 사람에게 존중받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타인의 가치는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경쟁과 다툼, 파벌 싸움이 끊이지 않고, 결국에는 서로를 파멸시키는 전쟁으로까지 이어진다. 또한 이러한 분열은 공동의 적에 맞설 공동체의 힘까지 약화시킨다.


그러므로 누가 국가에 공을 세웠거나 앞으로 공을 세울 자격이 있는지를 평가하는 명예의 기준과 법이 필요하다. 또한 그 기준을 실제로 집행할 권한을 가진 기관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미 살펴보았듯이 군사력 전체와 모든 분쟁에 대한 재판권은 모두 주권에 속한다. 따라서 명예로운 칭호를 수여하고, 각 사람이 어떤 지위와 서열을 차지할지 정하며, 공적인 자리와 사적인 자리에서 서로에게 어떤 예우를 갖추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권한 역시 주권자에게 속한다.


이러한 권리들은 나눌 수 없다


지금까지 살펴본 권리들이 바로 주권의 본질을 이루는 권리들이다. 또한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게 주권이 귀속되어 있는지를 판별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이 권리들은 서로 나눌 수도 없고 떼어낼 수도 없다.


주권자는 화폐를 발행할 권리나 미성년 상속인의 재산과 신분을 관리할 권리, 시장에서의 우선매수권과 같은 여러 법률상의 특권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수 있다. 그렇게 하더라도 신민을 보호할 권한 자체는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나 군사권을 넘겨주면서 재판권만 가지고 있는 것은 법을 집행할 힘이 없으므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반대로 조세를 거둘 권한을 넘겨주면 군대를 유지할 수 없게 되어 군사권도 무력해진다. 또 사상과 학설을 통제할 권한을 포기하면, 사람들은 영적인 존재에 대한 두려움에 휩쓸려 반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이처럼 앞에서 열거한 권리들 가운데 어느 하나만 떼어놓고 살펴보더라도, 나머지 권리만으로는 국가를 세운 목적, 곧 평화와 정의를 유지하는 데 아무런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없음을 곧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스스로 분열한 나라는 설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이러한 주권의 분할이 먼저 일어나지 않았다면, 서로 적대하는 군대가 갈라져 내전을 벌이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에서 왕과 귀족원, 그리고 하원이 주권을 서로 나누어 가진다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국민이 둘로 갈라져 이처럼 내전에 빠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정치 문제를 둘러싼 대립이었고, 이어서는 종교의 자유를 둘러싼 분쟁으로 번졌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주권의 본질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영국에서는 이 권리들이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평화가 다시 찾아오면 이러한 인식은 더욱 널리 받아들여질 것이며, 사람들이 전쟁의 참상을 잊기 전까지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다만 그 이후에도 이러한 이해가 이어지려면, 일반 대중이 지금까지보다 더 올바른 교육을 받아야 한다.


주권 자체를 명시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한, 이러한 권리들은 양도될 수 없다


이 권리들은 주권의 본질을 이루며 서로 떼어낼 수 없는 것이므로, 설령 그 가운데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다는 말이 사용되더라도, 주권 자체를 명시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한 그런 양도는 효력이 없다. 또한 권리를 넘겨받은 사람들 역시 그를 더 이상 주권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지 않는 이상, 그 양도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주권자가 넘겨줄 수 있는 모든 권리를 이미 넘겼다고 하더라도, 주권 자체가 다시 그에게 귀속되는 순간 그 권리들도 모두 함께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그 권리들은 본래 주권에 떼어낼 수 없도록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권자의 권력과 명예 앞에서는 신민의 권력과 명예도 빛을 잃는다


주권은 이처럼 나눌 수 없는 권한이며, 그 권리에 본질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따라서 군주는 개개의 신민보다 강한 권력을 가지지만, 모든 신민을 합친 힘보다는 약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만약 여기서 '모든 신민을 합친 힘'이 하나의 인격으로 결합되지 않은 단순한 개인들의 집합을 뜻한다면, 그것은 결국 '모든 사람'과 '각 개인'을 같은 의미로 쓰는 셈이므로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것이 하나의 인격으로 결합된 공동체를 뜻한다면, 바로 그 인격을 대표하는 사람이 주권자다. 따라서 '모든 사람을 합친 힘'은 곧 주권자의 권력과 동일하다. 이 경우에도 앞의 주장은 모순이다.


사람들은 주권이 인민의 집회에 있을 때는 이 점을 쉽게 이해하면서도, 군주에게 있을 때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주권의 권력은 누구에게 귀속되든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권력뿐 아니라 명예 또한 주권자가 어떤 신민보다도, 나아가 모든 신민을 합친 것보다도 더 높아야 한다. 모든 명예는 주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영주, 백작, 공작, 왕자와 같은 모든 작위는 주권자가 부여하는 것이다.


주인이 있는 자리에서는 모든 하인이 서로 동등하며, 누구도 특별한 명예를 갖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주권자 앞에서는 모든 신민이 동등하다. 주권자가 없는 곳에서는 어떤 사람은 더 빛나고 어떤 사람은 덜 빛날 수 있다. 그러나 주권자 앞에서는 그들의 명예도 태양 앞의 별처럼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한다.


주권의 권력 자체가 해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없는 상태가 더 큰 해악이다. 또한 신민이 겪는 고통의 대부분은 기꺼이 복종하지 않으려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여기서 누군가는 이렇게 반론할 수 있다. 이처럼 아무런 제한도 없는 권력을 가진 사람의 욕망과 제멋대로인 정념에 신민이 좌우된다면, 그들의 처지는 매우 비참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군주 아래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군주제 탓으로 돌리고, 민주정이나 다른 형태의 집단 주권 아래 사는 사람들은 그 체제 자체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그러나 신민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을 만큼 완전한 정부라면, 어떤 형태의 국가든 주권의 권력은 본질적으로 같다.


사람들은 인간의 삶이 어떤 경우에도 불편과 고통을 완전히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는다. 또한 어떤 형태의 정부 아래에서든 국민 전체가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부담조차도, 내전이 가져오는 참혹한 비극이나 법과 강제력이 사라져 약탈과 복수가 난무하는 무정부 상태에 비하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작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다.


더구나 주권자가 신민에게 부담을 지우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을 괴롭히거나 약화시키는 데서 즐거움이나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주권자의 힘은 신민의 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민이 자신의 안전을 위한 비용을 기꺼이 부담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통치자는 평화로운 시기에 필요한 재원을 최대한 확보해 두어야 한다. 그래야 뜻밖의 위기나 갑작스러운 전쟁이 닥쳤을 때 적을 막거나 그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모든 부담을 실제보다 훨씬 크게 보이게 만드는 돋보기, 곧 자신의 욕망과 이기심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래서 작은 세금이나 의무도 견디기 어려운 고통처럼 느낀다. 그러나 멀리 다가오는 재앙을 내다볼 수 있는 망원경, 곧 도덕과 정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은 갖추지 못했다. 그런 부담을 감수하지 않으면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재앙이 눈앞에 닥쳐오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출처: https://www.gutenberg.org/files/3207/3207-h/3207-h.htm#link2HCH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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