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번햄, 마키아벨리의 역사관

제임스 번햄, 『마키아벨리주의자들: 자유의 수호자들』


제2부 마키아벨리: 권력의 과학


Ⅳ 마키아벨리의 역사관


마키아벨리는 체계적으로 정립된 역사 이론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가 남긴 일반적인 명제들은 대부분 정치 행위의 특정 측면에 한정되어 있으며, 그것들을 나열하는 일은 그의 저작 대부분을 요약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앞에서 이미 살펴본 내용 외에도, 이후 마키아벨리즘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친 보다 포괄적인 원리들이 몇 가지 더 있다.


1.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정치의 세계는 결코 정지해 있지 않다.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누구도 그 흐름을 피할 수 없다. 완전한 국가가 영원히 존속할 수 있다는 생각은 물론이고, 완전함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꽤 훌륭한 국가가 끝없이 유지될 수 있다는 믿음 역시 환상에 불과하다.


변화의 과정은 반복되며, 대체로 순환하는 양상을 띤다. 다시 말해 역사는 비슷한 패턴을 거듭 되풀이하기 때문에, 과거를 연구하면 현재와 미래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반복은 어느 정도 식별 가능한 하나의 순환 과정을 이룬다.


건실하고 번영하며 부강한 국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부패하고 타락한다. 그러나 부패하고 타락한 국가에서도 다시 강건하고 번영하는 국가가 등장한다. 이러한 쇠퇴를 늦출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마키아벨리는 그것을 끝내 막을 수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


오히려 훌륭한 국가를 떠받치는 미덕 자체가 몰락의 씨앗을 품고 있다. 강하고 번영하는 국가는 주변국의 두려움을 사기 때문에 외부의 침략을 받지 않고 평화를 누린다. 그러는 사이 전쟁과 무력을 다루는 능력은 점차 쇠퇴한다. 평화와 번영은 나태와 사치, 방종을 낳고, 그것은 다시 정치적 부패와 폭정, 그리고 국가의 약화를 불러온다.


결국 그 국가는 아직 타락하지 않은 이웃 국가의 힘에 무너지거나, 혹은 스스로 새로운 순환의 국면으로 들어선다. 고난의 시기와 전쟁은 부패를 씻어내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힘과 새로운 덕성, 새로운 번영이 태어난다. 그러나 그 번영도 오래가지 못한다. 머지않아 다시 쇠퇴가 시작된다.


“대부분의 정부는 흔히 겪는 변화 속에서 질서에서 혼란으로 나아가고, 그 혼란은 다시 질서로 돌아간다. 자연은 이 세상 어떤 것도 영원히 고정해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최고의 경지와 완성에 이르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고, 그 순간부터 반드시 쇠퇴하기 시작한다.


반대로 혼란이 극에 달해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게 되면, 다시 이전의 완전한 상태를 향해 되돌아간다. 좋은 법은 나쁜 관습으로 변질되고, 나쁜 관습은 다시 좋은 법을 낳는다.


덕(德)은 평화를 낳고, 평화는 나태를 낳으며, 나태는 분열을 부른다. 분열은 결국 파멸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 반대로도 흐름은 이어진다. 파멸은 새로운 법을 낳고, 법은 덕을 길러내며, 덕은 명예와 번영을 가져온다.”

(『피렌체사』 제5권)


2. 반복되는 변화의 패턴은 정치의 영역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비교적 변하지 않는 핵심을 보여준다. 모든 정부와 정치 체제가 불안정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에 끝이 없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람들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다면 이미 지나간 일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이 말은 결코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앞으로 일어날 일 가운데, 과거에 있었던 일과 닮지 않은 것은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일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열정을 지닌 인간에게서 비롯되며,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결과 또한 본질적으로 같을 수밖에 없다.”

(『로마사 논고』 제3권 제43장)


“고대의 저술가들은 대체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역경 속에서는 고통받고, 번영 속에서는 만족에 빠진다. 그리고 기쁨과 슬픔은 결국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 사람들은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생존을 위해 싸우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지면 야망 때문에 싸운다. 인간의 마음속 야망은 너무도 강해서 아무리 큰 성공과 번영을 이루어도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인간은 본래 많은 것을 욕망하도록 되어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손에 넣을 능력은 없다. 그래서 욕망은 언제나 자신의 능력을 앞서가고, 이미 가진 것만으로는 결코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 운명의 온갖 굴곡이 비롯된다.”

(『로마사 논고』 제1권 제37장)


3. 마키아벨리는 정치에서 ‘포르투나(Fortuna, 운명 또는 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그는 때로 포르투나를 거의 하나의 인격처럼 다루며, 고대에서 중세까지 이어져 온 전통에 따라 여신을 이야기하듯 묘사하기도 한다. 또한 포르투나는 그의 저작 곳곳에서 단편적으로 언급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장에 걸쳐 길고 상세하게 논의될 만큼, 그의 정치사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개념이다.


이 대목들을 종합해 보면,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포르투나’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포르투나는 인간의 의도적이고 이성적인 통제를 벗어나 역사의 흐름을 움직이는 모든 힘을 가리킨다.


마키아벨리는 개인의 삶에서나 국가의 흥망에서나 이러한 힘이 매우 다양하며, 때로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고, 장기적으로는 역사를 좌우하는 지배적인 요인이 된다고 보았다. 그렇다고 인간의 의지와 이성이 역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본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일은 포르투나와 신의 섭리에 의해 지배되며, 인간의 지혜로는 그것을 바로잡거나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예로부터 많은 사람이 품어온 생각이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애써 노력하기보다 모든 것을 자연스러운 흐름과 결과에 맡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생각은 우리 시대에 더욱 힘을 얻었다. 인간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수많은 격변이 잇따라 일어나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때로는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다 보면 그 견해에 어느 정도 마음이 기울곤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완전히 부정해서는 안 된다. 내 생각에는 포르투나는 우리 행동의 절반 정도를 좌우할 뿐이며, 나머지 절반, 혹은 그보다 조금 적은 부분은 우리 자신의 손에 맡겨져 있다.


나는 포르투나를 거세고 사나운 강물에 비유하고 싶다. 강물이 범람하면 평야를 휩쓸고, 나무와 집을 쓰러뜨리며, 한곳의 흙을 떠내 다른 곳에 쌓아 놓는다.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두려워하고 피하지만, 그 격류를 정면으로 막아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필요는 없다. 강이 잔잔할 때 미리 둑을 쌓고 제방을 만들며 물길을 정비해 두면, 다음에 홍수가 나더라도 물을 운하로 흘려보내거나 그 파괴력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포르투나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것은 맞설 준비와 역량이 없는 곳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며, 자신을 막아설 둑도 제방도 없다는 것을 알면 더욱 거침없이 위력을 떨친다.”

(『군주론』 제25장)


“그러므로 인간은 역경을 맞았다고 해서 지나치게 비난받을 일도 아니고, 번영을 누린다고 해서 지나치게 칭찬받을 일도 아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운명의 흐름에 떠밀려 몰락하고, 또 다른 많은 사람은 큰 영예를 얻는다. 이때 지혜는 불행을 막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하며, 어리석음 역시 행운을 가로막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포르투나가 어떤 큰일을 이루려 할 때는, 자신이 마련한 기회를 알아보고 붙잡을 만한 용기와 능력을 지닌 사람을 선택한다. 반대로 커다란 파멸을 가져오려 할 때는, 자신의 뜻을 밀어붙이고 계획을 실행할 도구가 될 사람들을 미리 준비해 둔다. 그리고 그 계획을 조금이라도 방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제거하거나 권한을 빼앗아 아무런 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게 만든다.”

(『로마사 논고』 제2권 제29장)


이러한 포르투나의 개념은 앞에서 살펴본 ‘시대의 흐름에 자신을 맞출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군주다운 정치가’라는 생각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포르투나를 정복할 수는 없지만, 그 흐름을 읽고 그것을 자신의 이익으로 활용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번 단언한다. 역사의 모든 사례가 이를 증명하듯, 인간은 포르투나의 흐름에 힘을 보탤 수는 있어도 그것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인간은 포르투나가 이끄는 방향을 따라갈 수는 있지만, 그 뜻을 꺾거나 뒤집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포르투나에 맡긴 채 체념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포르투나가 어디로 향하는지 끝까지 알 수 없으며, 그 움직임은 예측하기 어렵고 일정한 법칙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 흐름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돌아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과 역경에 처하더라도 언제나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해야 하며, 바로 그 희망이 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로마사 논고』 제2권 제29장)


이처럼 시대의 흐름에 자신을 맞추는 것, 오늘날의 표현으로 말하면 ‘기회주의적 적응’을 넘어, 인간과 국가는 비르투(virtù)를 발휘할 때 포르투나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흔들리지 않는 결단력과 과감함, 신속한 판단을 갖추고 우유부단하거나 비겁하고 소심하지 않을 때, 포르투나가 주는 기회를 최대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어떤 일을 의논하든 가장 바람직한 것은 곧바로 핵심 문제로 들어가 불필요한 망설임 없이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 우유부단하게 시간을 끌고 결정을 미루는 태도는 나약하고 선견지명이 부족한 군주와 정부의 공통된 결함이다. 그들의 판단은 더딜 뿐 아니라 확신도 없으며, 이러한 태도는 그 자체로 커다란 위험을 초래한다.”

(『로마사 논고』 제2권 제15장)


4. 마키아벨리는 종교가 국가의 안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보았다. 그러나 인간 본성을 논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가 관심을 둔 것은 오직 종교의 정치적 기능이었다. 그는 신학적 논쟁에 뛰어들거나 특정 종교가 참인지 거짓인지 따지는 데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사는 종교적 신념과 의례가 정치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밝히는 데 있었다.


좀 더 넓은 의미로 말하면, 마키아벨리는 ‘신화’가 정치에서 수행하는 기능을 분석한 셈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신화가 정치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라고 보았다.


“비록 로마는 로물루스가 세웠고, 그의 손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나라였지만, 하늘은 로물루스의 제도만으로는 그처럼 거대한 제국을 유지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내다보았다. 그래서 로마 원로원이 그의 뒤를 이어 누마 폼필리우스를 왕으로 세우도록 이끌었다. 이는 첫 번째 통치자가 남긴 부족한 부분을 두 번째 통치자가 완성하게 하려는 뜻이었다.


누마는 로마 시민들이 호전적이고 거칠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평화로운 방법으로 그들을 시민으로서의 질서와 복종에 익숙하게 만들고자 했으며, 그 수단으로 종교를 선택했다. 그는 종교가 국가를 유지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라고 여겼다. 그래서 종교 제도를 정비한 결과, 오랜 세월 동안 어느 나라보다도 신에 대한 경외심이 로마 공화국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이러한 경외심은 원로원이든 통치자든 국가가 추진하는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1]


“로마의 역사를 살펴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종교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종교는 군대를 통솔하고, 시민을 하나로 결속시키며, 사람들을 올바르게 살도록 이끌고, 악한 행동을 억제하는 데 매우 유용했다. 그러므로 로마가 로물루스와 누마 가운데 누구에게 더 큰 빚을 졌는지를 따진다면, 나는 누마에게 더 높은 공을 돌릴 것이다. …


종교를 없애면 국가를 떠받치는 기초도 함께 무너진다. … 자신의 국가를 온전하게 유지하고 부패를 막으려는 군주와 공화국은 무엇보다 종교와 그 의례를 소중히 여기고, 시민들이 그것을 깊이 존중하도록 힘써야 한다.”

(『로마사 논고』 제1권 제11장·제12장)


5. 앞에서 이미 살펴보았듯, 마키아벨리의 가장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목표는 이탈리아의 국가적 통일이었다. 지금까지 정치 활동의 본질에 관한 그의 분석을 검토하면서는, 그가 궁극적으로 어떤 정치적 목표나 이상을 지향했는지는 따로 다루지 않았다. 이제 이 문제로 다시 돌아가, 마키아벨리는 어떤 형태의 정부를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 보고자 한다.


마키아벨리의 저작 전체를 살펴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그가 가장 바람직한 정치 형태로 본 것은 공화정, 곧 그가 말한 ‘커먼웰스(commonwealth)’였다.


그는 단지 공화정을 선호한 데 그치지 않았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공화정은 어떤 형태의 군주정보다도 더 강하고, 더 오래 지속되며, 더 현명하고, 변화하는 상황에도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견해는 무엇보다 그의 가장 중요한 저작인 『로마사 논고』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사실 그가 남긴 거의 모든 저작에 암묵적으로 흐르고 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그는 「제노비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의 모든 저술이 ‘민주적 정부에 대한 깊은 애정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을 받자, 그 지적이 옳다고 솔직하게 인정한다.


“공화정보다 군주정을 더 낮게 평가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이단자나 경솔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나는 바로 그런 정치체제를 가진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그곳에서 공직을 맡았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시점에도 그 도시는 공화정 아래 있었고, 그 체제 덕분에 부와 위대함, 그리고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내가 일부러 단정적인 주장을 피하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토론 연습에 열중하는 젊은 학자들처럼 독단적으로 말하고자 했다면, 지금까지 내가 제시한 논의만으로도 훌륭한 제도 위에 세워진 민주적 공화정이 가장 뛰어나고 가장 이상적인 정부 형태라고 쉽게 결론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결론이 반박될 것이라고는 조금도 두렵지 않다.


내 생각에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권력자에게 아첨하는 자들이나 궤변가들뿐이다. 그들은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글까지 제멋대로 해석해, 마치 두 철학자가 군주정을 옹호한 것처럼 꾸며 낸다. 나아가 세상을 다스리는 신의 통치가 절대권력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그것과 가장 닮은 군주정이 최고의 정치체제라고까지 주장한다. 아마 이는 단테의 사상을 염두에 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비교를 성립시키려면, 그들이 신격화하려는 불쌍한 군주에게 인간을 넘어서는 본성을 부여해야 한다. 모든 존재가 그에게 필연적으로 의존하도록 만들어야 하고, 무한한 지혜와 선함은 물론, 마침내는 전능함까지 갖추게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공화정을 선호한 사실이 이탈리아의 국가적 통일을 위해서는 군주의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그의 결론과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공화정이 가장 바람직한 정치 형태라고 해서, 모든 시대와 모든 상황에서 공화정을 곧바로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이상은 언제나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에 의해 제약받았다. 그리고 그가 보기에 당시의 현실은 분명했다. 적어도 통일의 초기 단계에서는 군주의 지도력 없이는 이탈리아를 하나의 국가로 통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화정을 가장 바람직한 정치 형태로 보았다고 해서, 마키아벨리가 유토피아를 그린 것은 아니다. 그는 공화정의 장점만이 아니라 그 한계와 결함도 솔직하게 인정했다.


더 나아가 그는 정부 형태의 선택 자체를 유토피아 사상가들처럼 절대적인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자신의 이상적인 체제만 실현되면 모든 인간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과 달리, 마키아벨리는 어떤 정치체제도 그런 만능의 해답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의 생각에 인간의 모든 문제는 물론, 대부분의 문제조차 완전히 해결하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 형태에 대한 그의 선호를 넘어,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마키아벨리가 내세운 것은 ‘자유(liberty)’였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자유란, 특정한 공동체의 입장에서 볼 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독립, 곧 다른 공동체의 지배나 예속을 받지 않는 상태다. 둘째는 국내적으로 법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상태다. 다시 말해 군주든 평민이든 어느 한 개인의 자의적인 의지가 아니라, 법이 국가를 다스리는 정치질서를 뜻한다.


자유의 첫 번째 조건인 독립은 결국 시민 스스로의 무장한 힘에 의해서만 지켜질 수 있다. 용병이나 동맹국, 혹은 돈에 의존해서는 결코 독립을 유지할 수 없다. 따라서 무력은 자유를 떠받치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다.


마키아벨리가 보기에 자유를 오래 지켜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의 힘뿐이다.


국내의 자유 역시 결국 힘 위에 세워진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가의 공적 강제력이어야 한다.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행사하는 사적 폭력은 예외 없이 자유를 위협하는 직접적인 위험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적 강제력에 의해 뒷받침될 때, 국내에서의 자유는 법에 의한 통치를 의미하게 된다. 다시 말해 모든 통치는 적법한 절차를 엄격히 지키는 법질서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자유의 수호자로서 개인 자체를 신뢰하지 않았다. 인간은 끝없는 야망에 이끌리고, 때로는 자기 자신마저 속이며, 권력을 손에 쥐면 결국 부패하기 쉽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명한 법이 마련한 제도적 틀 안에서는 개인의 행동을 적어도 어느 정도, 그리고 일정 기간은 통제할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 『로마사 논고』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는 해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여러 장에 걸쳐, 자유를 지키려면 다음과 같은 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누구도, 어떤 공직자도 법 위에 서서는 안 된다. 모든 시민은 다른 시민이나 공직자를 법적으로 고발할 수 있어야 한다. 공직의 임기는 짧아야 하며,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연장해서는 안 된다. 처벌은 엄정하고 공정해야 한다. 또한 시민들의 야망이 사적인 권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공공의 이익을 위한 통로 안으로 이끌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법이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법은 결국 힘을 토대로 성립한다. 그러나 그 힘 또한 제어되지 않으면 오히려 법을 파괴한다. 그리고 힘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에 맞서는 또 다른 힘뿐이다.


따라서 사회적 관점에서 자유의 토대는 서로 다른 힘이 균형을 이루는 상태, 곧 마키아벨리가 말한 ‘혼합 정체(政體)’에 있다.


마키아벨리는 어떤 정파나 종파, 특정 집단의 선전가도 아니었고, 그들을 변호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모든 반대 의견을 억누르기 위한 구실로 내세우는 ‘통합’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그리고 자유가 특정 개인이나 특정 계층만의 고유한 속성이라는 믿음이 얼마나 치명적으로 잘못된 것인지를 분명히 지적했다. 군주든 민주파든, 귀족이든 민중이든, 혹은 이른바 ‘다수’든 어느 누구도 자유를 독점할 수는 없다.


마키아벨리에게 자유는 서로 다른 세력이 끊임없이 견제하고 충돌하는 과정 속에서만 살아남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이었다.


“모든 도시는 언젠가는 정치체제를 바꾸게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생각하듯 자유와 예속이 서로 맞서기 때문이 아니라, 예속과 방종이 번갈아 나타나기 때문이다. 방종을 조장하는 자들은 늘 ‘자유’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귀족들은 ‘예속’을 추구한다. 하지만 양쪽 모두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법이나 그 어떤 제약에도 구속받지 않는 것이다.”

(『피렌체사』 제4권)


“나는 타르퀴니우스 왕조가 몰락한 뒤부터 호민관이 설치되기까지 로마에서 일어난 소요와 갈등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또한 로마 공화국이 지나치게 혼란스럽고 분열에 찬 나라였으며, 뛰어난 행운과 용맹이 그 결함을 보완해 주지 않았다면 다른 어떤 공화국보다도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견해에 대해서도 반드시 반박하고 싶다.


내 생각에 귀족과 민중 사이의 갈등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바로 로마의 자유를 낳은 가장 중요한 원인을 비난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그러한 갈등 뒤에 따라오는 소란과 고함만 바라볼 뿐, 그 갈등이 실제로 가져온 유익한 결과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


모든 공화국에는 언제나 서로 맞서는 두 가지 성향이 존재한다. 하나는 민중의 성향이고, 다른 하나는 귀족의 성향이다. 그리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모든 법은 바로 이 두 세력의 갈등 속에서 탄생한다.”

(『로마사 논고』 제1권 제4장)


이처럼 서로 대립하는 이해관계가 균형을 이루며 충돌할 때 자유는 더욱 굳건하게 유지된다. 그리고 국가는 특권과 부가 지나치게 한쪽에 집중되지 않도록 막을 때, 이러한 자유를 한층 더 확실하게 지켜낼 수 있다.


“어떤 나라가 오랫동안 건전함과 정의를 유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자유를 지키고 부패를 막아 온 공화국들은 어느 시민도 지나치게 큰 권세와 부를 누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이다. … 그곳에서는 모든 시민이 서로 대등하고 평등한 위치에서 살아간다.”

(『로마사 논고』 제1권 제55장)


결국 마키아벨리에게 최고의 이상은 자유였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에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유토피아적 자유나, 수사에 그치는 추상적인 자유가 아니었다. 그의 자유는 한계를 지닌 현실의 인간들이, 운이 따른다면 실제로 이루고 지켜 낼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자유였다. 이것이야말로 마키아벨리 정치사상의 중심에 놓인 이상이자, 모든 정치를 평가하는 최종 기준이었다.


그렇다면 폭정은 자유의 정반대다. 마키아벨리만큼 폭정을 분명하고 단호하게 적대한 사상가는 드물다. 그만큼 명확하게 폭정을 비판한 사람도, 그만큼 힘 있는 언어로 폭정의 위험을 경고한 사람도 많지 않다.


14세기 피렌체에서는 외부의 위협과 내부의 분열이 겹치자, 시민들은 통치권을 외국인인 아테네 공작에게 넘기기로 결정했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사』에서 공작이 완전한 권력을 장악하기 직전의 상황을 서술하면서, 공화국의 오랜 자유를 수호하는 임무를 맡았던 한 시뇨레(Signori)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은 연설을 전한다.


“각하께서는… 오랫동안 자유롭게 살아온 이 도시를 예속시키려 하고 계십니다. … 자유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어떤 무력도 그것을 뿌리 뽑을 수 없고, 어떤 세월도 그것을 지워 버릴 수 없으며, 어떤 은혜도 그 가치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부디 생각해 보십시오. 이 같은 도시를 억눌러 다스리려면 얼마나 막대한 힘이 필요하겠습니까? 아무리 많은 외국 군대를 불러들여도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도시의 시민들을 믿을 수도 없습니다. 지금은 각하의 편에 서서 이 결정을 지지하고 있지만, 그들이 원수를 무너뜨리고 나면 다음에는 틀림없이 각하를 몰아내려 할 것입니다. …


지금 각하께서 가장 믿고 있는 민중도 작은 계기 하나만 생기면 등을 돌릴 것입니다. 머지않아 도시 전체가 각하의 적이 될 것이며, 그 결과는 이 도시와 각하 자신 모두의 파멸일 수밖에 없습니다. 군주가 안전할 수 있는 것은 적이 소수일 때뿐이며, 그런 적은 추방하거나 처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증오를 받는 자에게는 어떤 안전도 없습니다. 그 증오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결국 어느 누구에게서도 자신을 지킬 수 없습니다.


설령 각하께서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고 온갖 방법으로 자신의 안전을 지키려 한다 해도, 그것은 오히려 시민들의 증오를 더욱 키우고 복수심을 더욱 굳게 만들 뿐입니다.


자유를 향한 우리의 열망은 결코 세월이 지운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도시의 사례를 알고 있습니다. 자유를 직접 누려 본 적조차 없는 후손들마저 조상들에게서 전해 들은 기억만으로 자유를 소중히 여겼고, 그것을 되찾기 위해 싸웠으며, 마침내 되찾은 뒤에는 어떤 위험과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지켜 냈습니다.


설령 조상들이 그 전통을 전해 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공공 건물과 관청, 그리고 시민이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자유의 상징들이 그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워 줄 것입니다.


도대체 각하께서 무엇을 하신다 한들 자유가 주는 달콤함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백성의 마음속에서 자유를 향한 갈망을 어떻게 지워 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일은 결코 불가능합니다. 설령 각하께서 토스카나 전역을 이 나라에 편입시키고, 날마다 새로운 승리를 거두며 개선장군처럼 이 도시에 돌아온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영광은 각하의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시민들은 자유로운 국민이 아니라 단지 새로운 주인을 섬기는 노예가 하나 더 늘었을 뿐이라고 느낄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훌륭하게 통치한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각하의 지위를 굳힐 수 없습니다. 삶이 아무리 청렴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아무리 온화하며, 재판이 아무리 공정하고, 베푸는 은혜가 아무리 크다 해도 시민들의 마음을 얻지는 못합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자유롭게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어떤 사슬도 무거운 짐이며, 어떤 속박도 견디기 어려운 부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 주석 -

[1] (『로마사 논고』 제1권 제11장) 마키아벨리는 여기서 리비우스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로마의 종교 제도가 누마의 의도적인 계획에서 비롯되었다는 리비우스의 설명은 사실과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의 정치적 기능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분석 자체가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James Burnham, The Machiavellians: Defenders of Freedom (Endeavour Media Ltd, 2019), pp. 4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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