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번햄, 마키아벨리의 현실적 목표

제임스 번햄, 『마키아벨리주의자들: 자유의 수호자들』


제2부 마키아벨리: 권력의 과학 


1. 마키아벨리의 현실적 목표 


단테의 《제정론(De Monarchia)》은 결코 정치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가 아니다. 하지만 단테에게 도덕적 지향이나 목표가 있다는 사실 자체 때문에 그의 저작이나 그와 유사한 방법론을 쓴 글들이 비과학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간혹 그렇게 오해하는 이들도 있지만 말이다. 사실 인간의 모든 활동에는 행위자 본인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겉으로 드러나거나 숨겨진 여러 목표가 있기 마련이다. 과학적 탐구 활동 역시 예외는 아니다.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또한 단테처럼 자신의 저작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와 실천적인 과제를 품고 있었다. 다만 그가 지향한 목표는 앞서 우리가 단테에게서 발견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과학이라는 학문에는 그 자체를 존재하게 하는 독특하고 고유한 목표가 있다. 바로 공적 사실에 대한 정확하고 체계적인 기술(記述), 이러한 사실들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내 법칙으로 정립하려는 시도,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어느 정도의 확률로 예측하려는 노력이다. 많은 과학적 탐구가 이러한 특수한 목표를 넘어서려 하지 않으며, 실제로 그럴 필요도 없다.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역사·사회·정치과학 분야에서도 오직 이러한 목표들만이 유의미하게 다루어지기도 하며,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결국 다른 어떤 목적이 더 있든 없든 간에, 이러한 핵심 목표들이 빠진 연구는 과학이라고 부를 수 없다. 


단테의 《제정론》에는 이 같은 과학 고유의 목표가 존재하지 않는다. 단테가 취한 방법론으로는 애당초 이러한 목표를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마키아벨리의 저작에는 이 목표들이 늘 살아 숨 쉬고 있으며, 그의 탐구 과정을 이끄는 논리적 뼈대를 이룬다. 


어떤 연구가 과학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과학 고유의 목표 외에 다른 목적을 함께 추구하려면, 추가하려는 목표가 몇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그 목표는 초월적인 것이 아니어야 한다. 즉, 구체적인 시공간과 역사로 이루어진 현실 세계 안에서 설명될 수 있는 목적이어야 한다. 둘째, 실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과학자는 결핵이나 다른 질병을 치료하는 약, 폭격기의 위협에 대응할 새로운 방어 무기, 병충해를 막아주는 새로운 비료, 또는 무선 송전 방식의 개발을 목표로 삼을 수 있다. 이러한 목표들은 모두 현실 세계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우리가 무엇을 논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다. 게다가 목표를 달성했는지 여부도 확실히 가려낼 수 있으며, 조금이나마 실현될 가능성도 품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단테가 내세운 형식적인 목표는 종교적·형이상학적 이상(理想)에서 볼 수 있듯 초월적이거나, 14세기에 영원히 통일된 평화로운 세계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구상처럼 논할 가치조차 없을 만큼 터무니없고 실현 가능성이 희박했다. 반면 그 형식적인 목표 아래 숨겨진 진짜 목표는 비록 구체적이기는 했으나, 악의적이고 시대역행적이었다. 


과학은 목표나 목적이 지니는 기능을 제한하는 엄격한 기준을 한 가지 더 요구한다. 목표 그 자체는 결코 증거가 될 수 없으며, 사실이나 사실들 사이의 연관성을 왜곡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목표는 단지 우리의 소망이나 희망, 두려움을 표현할 뿐이기에 세상의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 아무것도 증명해주지 못한다. 환자를 치료하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더라도, 그 소망은 환자의 증상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거나 병의 경과를 정확히 예측하는 일, 또는 약의 효능을 가늠하는 일과는 무관하다. 평화를 원한다고 해서, "모든 인간은 본성적으로 평화를 갈망한다"라는 명제를 증명하려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현실을 왜곡하는 것은 과학적 태도가 아니다. 역사가 명백히 보여주듯, 인간은 결코 평화만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등한 민주주의에 관심이 많다고 해서, 인류 역사에 끊임없이 이어져 온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의 기록을 외면하는 과학적 핑계로 삼을 수도 없다. 


요약하자면 현실적 목표는 과학적 탐구의 방향을 제시하고, 우리가 그 탐구를 통해 무엇을 성취하려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지 보여줄 수는 있다. 그러나 과학적 탐구의 논리 자체를 지배하는 것은 현실적 목적이 아니라, 사실을 기술하고 그 연관성을 밝히려는 과학 고유의 목표다. 이런 측면에서도 단테는 과학의 요구를 저버렸다. 그의 저작은 단지 자신의 소망을 정교하게 투영한 것에 불과하며, 우리에게 그 어떤 사실도 말해주지 않는다. 


마키아벨리의 가장 직접적이고 중요한 현실적 목표는 이탈리아를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는 데 있었다. 그의 저술에는 이 밖에도 여러 현실적 목적이 담겨 있으며, 그중에는 더 보편적인 성격을 지닌 것들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그러나 이탈리아를 하나의 통일된 국가로 만드는 일은 그의 사상에서 언제나 중심을 이루는 변함없는 목표였다. 


단테가 내세운 찬란한 이상에 비하면 이 목표는 분명 소박하고, 어쩌면 속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은 구체적이고 분명한 의미를 지닌 목표였다.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국민국가가 무엇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16세기 초에 글을 쓰던 마키아벨리와 그의 동시대 사람들도 프랑스, 영국, 스페인의 사례를 눈앞에 두고 있었기에 그 목표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그것은 허황되거나 공상적인 꿈이 아니었다. 당시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그런 일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이탈리아에서도 그것이 실현될 수 없다고 볼 이유는 없었다. 


단테의 경우에는 겉으로 내세운 목표와 그 이면에 숨겨진 실제 목표를 신중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에게는, 그리고 모든 과학적 저술에서 그러하듯, 그런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목표와 실제 목표는 하나이며, 모두 분명하고 명시적으로 제시된다. 『군주론』의 마지막 장 제목도 그대로 「이탈리아를 야만인들, 곧 외세로부터 해방시키라는 권고」이다. 이 장에서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를 통일의 과업으로 이끌 지도자의 등장을 강력히 촉구한다. 


“지금까지 논한 모든 것을 곰곰이 따져 보고, 오늘날 이탈리아의 정세가 새로운 군주의 등장을 뒷받침할 만큼 무르익었는지, 또 뛰어난 덕성과 지혜를 지닌 인물이 새로운 질서를 세워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고 모든 백성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았다. 그 결과 지금만큼 새로운 군주가 등장하기에 유리한 조건이 갖추어진 때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 이탈리아는 누군가가 깃발을 들고 나서기만 하면 기꺼이 그를 따를 준비가 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당신의 빛나는 가문, 곧 메디치 가문보다 더 큰 희망을 걸 수 있는 대상도 보이지 않는다. 그 가문은 스스로의 용기와 영향력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하느님과 교회의 은총까지 받고 있다. 더욱이 지금 교회의 수장 역시 메디치 가문 출신이니, 이탈리아를 구원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만일 앞서 언급한 위대한 인물들의 삶과 행적을 본보기로 삼는다면, 이 일은 결코 어려운 과업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뛰어나고 경이로운 인물이었다 해도 결국은 인간이었으며, 당신만큼 유리한 여건을 누리지는 못했다. 그들의 사업이 당신의 것보다 더 정당하거나 더 쉬웠던 것도 아니고, 하느님이 그들에게 당신보다 더 큰 은총을 베푼 것도 아니었다. 정의는 당신의 편에 서 있다. 필요한 전쟁은 정당한 전쟁이며, 다른 어떤 희망도 남아 있지 않을 때 싸우는 것은 신앙에 부합하는 일이다. 백성은 이미 한마음으로 이를 바라고 있다. 이처럼 뜻이 하나로 모여 있다면 저항은 크지 않을 것이다. 특히 내가 본보기로 제시한 인물들의 방식을 따른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군주론』 제26장) 


『전술론』에서 마키아벨리는 치밀하게 전쟁의 원리를 논하고, 『리비우스 논고』에서도 전쟁 문제를 길게 다루는데, 그 모든 논의에는 한 가지 일관된 목적이 깔려 있다. 곧 이탈리아인들에게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 스페인의 군대를 물리칠 수 있는 전쟁 방식을 가르치고, 이를 통해 이탈리아 민족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피렌체사』는 과거의 역사 속에서 오늘날의 투쟁과 이어질 수 있는 전통적 정신을 찾아낸다. 또한 『리비우스 논고』는 고대와 당대의 여러 사례를 함께 제시하며, 이탈리아가 나아가야 할 정치적 방향을 보여 준다. 


이탈리아를 하나의 국가로 통일한다는 그의 목표에는 어떤 모호함도 없다. 마키아벨리를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목표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을 선택하든, 자신이 무엇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지는 분명히 알고 결정하게 된다. 마키아벨리의 사상에는 공상이나 허깨비 같은 것이 없다. 그는 현실이라는 밝은 세계 속에서 사고하고 글을 쓴다. 


또한 마키아벨리의 이 목표는 단테의 이상과는 달리, 당시의 역사적 현실에 잘 부합하는 것이었으며, 더 나아가 분명히 시대를 앞서 나가는 진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마키아벨리 시대의 이탈리아는 로마 제국이 붕괴한 이후 줄곧 그래왔듯이, 수많은 국가와 영지, 반쯤 독립적인 세력으로 갈라져 끊임없는 혼란을 겪고 있었다. 남부 대부분은 나폴리 왕국에 속해 있었으며, 낙후되고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농촌에서는 봉건 질서가 여전히 지배적이었다. 무질서한 봉건 영주들은 각자의 영지를 제멋대로 다스렸다. 중부에는 교황령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교황과 그의 정치적 구상에 따라 그 경계와 영향력은 끊임없이 변했고, 유럽 각국의 정치적 음모와도 깊이 얽혀 있었다. 북부의 일부 농촌은 여전히 봉건 지배 아래 있었지만, 대부분의 지역은 베네치아·밀라노·피렌체 같은 강력한 도시국가와 제노바·페라라·볼로냐 같은 소규모 도시국가들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이처럼 분열된 이탈리아는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모험가들, 왕가의 방계 인물들,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온 기사들, 국왕과 황제들이 차례로 침입했고, 도시와 영토의 지배권은 몇십 년마다 노르만인에서 스페인인으로, 프랑스인으로, 다시 지방의 유력자와 독일인, 교황에게로 끊임없이 넘어갔다. 그럼에도 북부의 눈부신 도시국가들은 14세기와 15세기 동안 이탈리아를 유럽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는 근대 국민국가나, 현재의 전쟁을 거치며 형성되고 있는 거대한 지역 공동체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이 도시들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도시들이 가장 큰 영향력과 힘을 발휘했던 시대는, 유럽 전체가 여전히 봉건적이고 농업 중심의 사회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봉건 사회의 조직 원리는 본질적으로 분권적이었다. 각 봉건 영주는 자신이 다스리는 영지와 봉신, 농노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했으며, 오직 자신의 직속 군주에게만 충성을 바쳤다. 


봉건제 아래에서는 강력한 중앙 권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 따라서 중세의 국왕이 지닌 주권도 대부분 명목에 불과했다. 실제 권력이 미치는 범위는 자신의 직할령에 한정되었고, 그 밖의 지역에서는 다른 봉건 영주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협력해 줄 때에만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15세기에 이르기 전까지 국왕들은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를 확립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봉건 영주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고, 대체로 그 저항이 성공을 거두었다. 


더욱이 당시에는 시장을 위한 제조업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고, 화폐 경제도 미숙했으며, 광범위한 해외 무역이나 편리한 교통·통신 수단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이러한 원시적인 경제 구조에서는 지속 가능한 대규모 정치 공동체를 뒷받침할 사회·경제적 기반이 존재할 수 없었다. 


봉건제가 해체되기 시작한 초기 단계에서 훗날 국민국가로 이어질 새로운 정치 질서를 추구한 사람들은 불리한 조건에서 싸워야 했다. 그들은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이었다. 아직 기초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나치게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려 했던 셈이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 그리고 성격은 다소 달랐지만 저지대 지역과 독일 일부의 도시국가들은 가장 큰 기회를 맞이했다. 그들은 지나치게 거대한 목표를 추구하지 않았다. 규모는 독자적으로 존속할 만큼 충분히 작았고, 동시에 당시의 기준으로는 정치적 독립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컸다. 


이들 도시국가는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 농촌을 지배했다. 또한 시민군이나 용병을 동원해 군대를 편성할 수 있었고, 설령 상대가 프랑스 국왕이나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자처하는 군주라 하더라도 봉건 영주와 제후들의 군대에 맞설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도시들은 산업과 무역, 상업, 금융에 역량을 집중했다. 필요한 물건만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았고, 해마다 또는 계절마다 열리는 장터를 기다려 물건을 교환하지도 않았다. 일반 시장을 겨냥해 상품을 생산했고, 상품뿐 아니라 화폐를 통한 거래도 날마다 이루어졌다. 그들은 선박과 육상 운송망을 유럽과 지중해 전역에 운영했으며, 곳곳에 무역 거점인 상관을 세웠다. 


당시의 기준에서 이 도시국가들은 명실상부한 강대국이었다. 그들이 파견한 대사와 사절은 어느 궁정에서나 존중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적·정치적 번영은 유례없는 문화적 융성과도 나란히 이어졌다. 


이처럼 도시국가들은 시대를 앞서 출발한 이점을 누렸다. 그러나 그들에게 초기의 우위를 안겨주었던 바로 그 조건들이, 마키아벨리가 글을 쓰던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몰락의 원인으로 바뀌고 있었다. 새로운 시대의 질서가 점차 뚜렷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자, 그 시대를 가장 먼저 열었던 도시국가들은 이미 늙고 사회적으로도 쇠퇴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비록 영토는 넓지 않았지만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안락과 사치를 누리며 '가진 자'의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싸우기보다 다른 이들이 대신 전쟁을 치르기를 바랐다. 마키아벨리가 거듭 비판하듯, 그들은 시민들의 힘과 덕성을 믿기보다 돈과 외교 조약에 의존하려 했다. 


무역은 한때 도시국가들을 번영으로 이끌었고, 그들 역시 무역의 발전을 크게 촉진했다. 그러나 이제 무역은 도시국가들이 감당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빠르게 확대되고 있었다. 15세기 말에 이르러 배들은 희망봉을 돌아 동방으로 향했고,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나아갔다. 시장은 세계 규모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상품의 생산량은 급격히 늘어났고, 금과 은이 대량으로 유입되었으며, 농노들은 토지를 떠나 상품 생산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제조 시설도 점점 더 대규모로 발전했다. 


새로운 경제를 키워 낸 주역이었던 도시국가들은 이제 오히려 그 성장을 가로막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한때 피렌체의 모직물과 베네치아의 유리, 제노바의 무기의 품질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던 길드 규제는, 이제는 기존 구성원들의 특권을 지키는 데만 매달린 나머지 새로운 노동력과 자본의 유입을 막고 있었다. 


도시국가의 국가 권력과 군사력만으로는 더 이상 교통로를 안전하게 유지하고, 해상 항로를 보호하며, 도적을 소탕하거나 자신들의 시대가 끝나 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 봉건 영주들의 횡포를 제어할 수 없었다. 또한 넓은 지역에 걸쳐 통일된 조세 제도와 안정적이고 표준화된 화폐 체계를 마련할 필요도 커지고 있었다. 이러한 과제들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정치 체제는 근대적인 국민국가뿐이었다. 


마키아벨리 시대의 이탈리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었다. 스페인, 특히 프랑스와 영국의 사례는 이미 그 선택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 주고 있었다. 


하나는 기존의 정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낡은 질서를 고수한다면 이탈리아는 경제와 문화 모두에서 쇠퇴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유럽의 변방으로 밀려날 것이 분명했다. 


다른 하나는 프랑스와 영국을 본받아 국가를 통일하고 국민국가를 건설하는 길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이탈리아는 계속해서 유럽의 선두에 설 수 있었고, 나아가 근대 세계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국가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이것이 바로 당시 이탈리아가 직면한 문제였고, 마키아벨리는 무엇보다 그 정치적 의미를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분명한 선택을 내렸고, 그 이유를 설명했으며, 그 길을 끈질기게 주장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그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대가는 역사 속에서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30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이탈리아는 뒤늦게 마키아벨리가 제시했던 길을 따라가려 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듯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새로운 형태의 야만인들이 새로운 방식의 힘을 앞세워 다시 한번 북쪽에서 내려와 이탈리아를 휩쓸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를 통일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군주가 앞장서 나라를 하나의 국민국가로 통합하는 데 있다고 결론지었다. 정치를 과학적으로가 아니라 감상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 결론을 쉽게 오해하기 마련이다. 마키아벨리가 이런 결론에 이른 것은 군주제나 절대정치를 더 선호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정치적 선호가 무엇이었는지는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그는 당시의 현실이 보여 주는 증거를 검토한 끝에 그것이 불가피한 결론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더욱이 이 결론은 역사적으로도 옳았다. 유럽의 모든 국민국가는 한 명의 군주, 혹은 여러 세대에 걸친 군주들의 주도로 통합되었으며, 당시의 조건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을 찾기 어렵다. 프랑스도 그랬고, 영국과 스페인도 마찬가지였다. 


봉건 영주들은 국민국가의 탄생을 원하지 않았다. 국민국가가 자리 잡으면 결국 자신들의 권력과 특권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대중은 정치를 주도할 만큼 충분히 조직되어 있지 않았고, 지식도 부족했으며, 힘도 미약했다. 또한 교회는 국민국가 체제가 성공할 경우 자신이 누려 온 초국가적 지배력이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국민국가의 탄생을 가장 절실히 필요로 했던 사회 세력은 새롭게 성장하던 시민 계층, 곧 상공업자와 상인, 초기 자본가들이었다. 그러나 이 계층은 아직 너무 젊었고 정치적 경험도 부족했으며, 스스로 국가를 이끌 만큼 충분한 힘을 갖추지 못했다. 


반면 군주제 역시 국민국가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국민국가가 성립되어야만 국왕은 정치적 주권을 중앙에 집중시키고, 봉건제의 분권적 성향을 억누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양측은 사실상의 동맹을 맺었고, 군주를 중심으로 국민국가가 형성되어 갔다. 


이를 잘 보여 주는 사례가 마키아벨리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토머스 모어(Thomas More)이다. 그는 런던에서 가장 성공한 변호사이자 런던 상인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으며, 평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잉글랜드의 대법관에 올랐다. 또 마키아벨리보다 조금 뒤의 동시대인이자 같은 피렌체 출신인 카트린 드 메디시(Catherine de Médicis)는 『군주론』의 헌정 대상인 메디치 가문의 일원으로, 은행가의 딸이었지만 훗날 프랑스의 왕비이자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었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 국민국가로 나아가는 길이 군주제를 통해 열렸다면, 마키아벨리는 왜 이탈리아에서는 그 길이 더욱 불가피한지를 설명했다. 이탈리아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정치적 분열이 훨씬 심했기 때문이다. 


그처럼 흩어진 여러 세력을 하나로 모으고, 통일을 이루는 데 필요한 힘과 열의를 결집시킬 수 있는 존재는 오직 군주뿐이었다. 서로 갈라져 있던 정치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다시 하나로 묶어 낼 수 있는 길도 그것뿐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가 국민국가로 거듭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았다. 


거의 모든 마키아벨리 연구자들은 그의 가장 중요한 독창성과 사상의 핵심이 '정치를 윤리로부터 분리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그는 중세 정치사상을 지배해 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과 분명하게 결별했다. 


이들은 마키아벨리의 방법이 인간의 정치적 행동을 더욱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를 무엇이 옳고 선한가에 대한 윤리적 기준의 '통제'에서 해방시켰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은 매우 위험한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만으로도 이러한 평가는 혼란스러운 것임을 알 수 있다. 마키아벨리가 정치를 윤리로부터 분리했다는 것은, 모든 과학이 윤리와 구분되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만 옳다. 과학적 설명과 이론은 어떤 윤리 체계가 요구하는 바가 아니라, 사실과 증거에 근거해야 한다. 


만약 마키아벨리가 정치를 윤리로부터 분리했다는 말이, 정치학의 결론을 자신의 도덕 원칙이든 다른 누구의 도덕 원칙이든 거기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왜곡하거나 조작하는 일을 거부했다는 뜻이라면, 그 평가는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부, 곧 객관적 진실에 대한 충실함 자체가 이미 하나의 도덕적 태도이다. 더욱이 다른 의미에서 보면, 마키아벨리는 매우 분명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치를 연구했으며, 이 장에서 살펴본 이탈리아의 통일도 그 목적 가운데 하나였다. 모든 목적이 그렇듯, 이러한 목표에도 윤리적 의미가 담겨 있다. 본래 윤리란 인간의 행동을 목적과 기준, 규범, 이상이라는 관점에서 성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정치를 윤리로부터 분리한 것은 특정한 종류의 윤리, 곧 초월적이고 내세를 지향하며, 덧붙여 말하자면 이미 심각하게 타락한 윤리로부터였을 뿐이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오히려 정치와 윤리를 더욱 긴밀하게 연결하고, 둘 모두를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세계, 곧 시간과 공간, 그리고 역사 속의 현실에 굳건히 자리 잡게 하려는 데 있었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단테 못지않게 윤리적인 정치사상가였다. 다만 두 사람의 차이가 있다면, 마키아벨리의 윤리가 훨씬 더 뛰어났다는 점이다. 


James Burnham, The Machiavellians: Defenders of Freedom (Endeavour Media Ltd, 2019), pp.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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