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종교에 대한 고찰 feat. 국가 시스템 설계








있어 보이는 척하기 전에 구조부터 봐야 함.


위 댓글에서 보갤러(116.127)좌 댓글의 내용을 보면 대충 보면 뭔가 있는 말 같지만, 정작 뜯어보면 감정 조합물에 불과한 허술한 구조 얘기. 민족성이 위험하니 고등 종교로 덮자는 식인데, 이건 애초에 정치를 설계가 아니라 종교쇼로 퉁치려는 감정 장사일 뿐임.


본 필자는 이미 말했지. "정치는 구조고, 국가는 설계다. 감정은 설계의 재료가 아니라 리스크다."

감정을 누르는 또 다른 감정을 '설계'라고 착각하는 건, 설계의 개념 자체를 모르는 티고, 거기다 로마, 푸틴, 비스마르크까지 예시 드는 거 보니까 역사도 기능 단위로 본 적이 없다는 게 드러나는 듯.


“민족 억제용 고등 종교”? 시스템도 없이 뭘 덮겠다고?


민족주의가 위험하니까 종교로 억제하자고 한다.


이건 대놓고 이렇게 말하는 거랑 다를 게 없음. 
“불 끄려고 기름 들이붓자”

왜냐면, 종교는 기능이 아니라 감정 재생산 장치에 가깝기 때문임. (동의안할테지만) 내 철학서의 제2장(국가관. 기술윤리 기반 국가설계주의-질서국가주의를 향하여)에도 적었지만, 국가는 감정으로만 묶이지 않음. 궁극적으론 구조로 구성되고, 윤리로 유지되는 시스템임.


“민족이 감정의 근거라면, 국가는 기능의 장치다.” – 제2장

필자 생각엔 종교는 어디까지나 기호화된 감정 처리기임.


아무리 '보편 종교' 운운해도, 그것도 원래 민족 종교 출신이고, 제국들이 잠깐 시스템에 얹은 거지,
그 자체가 시스템은 아니었던 게 현실 아닌가?


종교는 감정적 구호를 정당화할 뿐이고, 설계나 책임 구조엔 관여하지 않음. 설계 없는 종교는 결국 “조직화된 민족감정”일 뿐. 감정을 덮겠다는 핑계로 더 큰 감정 자극 시스템을 얹는 건 그냥 폭주 유발기지, 통치 시스템이 될 순 없음.


로마? 비스마르크? 푸틴? 사례는 이것저것 들었는데 시스템은 안 봤네.


이거 진짜 대표적인 역사 포장질이다.


이 사례들, 하나하나 까보겠음.


- 로마 제국: 기독교 공인은 제국의 시스템이 망가진 이후의 생존책이었음. 그 이전의 로마는 다신교 기반의 기능 분산형 통치체제였고, 종교가 시스템이 아니라 단순한 의례적 통합 도구였음.


- 비스마르크: 이 양반은 종교보다 프로이센 관료제, 산업기획, 외교 균형에 집중한 실용주의자였음. 개신교 권장은 그냥 국민 정체성 정비용 사운드트랙이지, 시스템의 핵심 축이 아님.


- 푸틴: 푸틴의 정교회 활용은 딱 민족감정 포장지고, 실제 국가 시스템은 부패 + 억압 기반의 비가시적 권력 집단 통치임. 종교는 통치의 상징 연출용이지, 아무 기능도 안 한다. 시스템은 이미 위에서 썩고 있음.


그래서 결론은? 이 예시들은 전부 감정 통합을 시도한 겉핥기식 통치 사례일 뿐, 실제로는 구조 설계와는 거리가 먼 정치적 연출에 불과. 실제 국가 설계와 통치 구조는 원초적 감정이 아니라 정책, 기획, 책임, 하중 조율 같은 기능적 요소로 작동했거나 그걸 못해서 망했거나 둘 중 하나다.


종교와 민족 감정, 왜 위험한가? 국가 시스템에 DDoS 거는 주범임. ㅇㅇ


종교가 민족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는데, 나는 정반대로 본다.


종교는 감정의 동원 장치고, 그 감정이 민족성과 결합하는 순간 시스템엔 감정 트래픽 폭주가 발생할걸?


“좌파는 감성을 논리로 오인하고, 질서를 압박하는 과부하로 시스템의 안정성을 방해한다.” – 제1장에서 필자가 했던 말.

이건 비단 좌파 놈년들에게만 적용되는 소리가 아니고 종교든 우파든 똑같다. 고등 종교든 뭐든, 결국 대중 감정 위에서 정당성을 찾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설계는 뒷전이 되고, 체제는 개돼지 민중의 감정의 변동폭에 휘둘리기 시작함.


종교는 감정 해석기지, 궁극적인 설계 도구가 되기엔 글렀음. 고등 종교는 절대로 기능 구조를 설계하지 않음, 아니 못한다고 봐야겠지. 기여, 책임, 보상, 하중 조정 이런 걸 전부 적절히 다루기엔 한계도 있다 이런 소리. 


뭐, 기독교 우파나 종교 기반 정치세력들은 자기 종교가 기여-책임-보상 구조를 포함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테지. 하지만 문제는 그 구조가 ‘해석의 권위’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임.


좀 더 자세히 적어보마.


종교적 설계는 ‘윤리 규범’을 가지고 있을 순 있어도, ‘책임의 배분’, ‘하중의 조정’, ‘예산 편성’, ‘공적 보상 체계’ 같은 실제 시스템 운용의 기술적 층위를 다룰 수는 없다는 얘기였던 거임.


즉, 종교는 “옳고 그름의 감정적 구도”는 줄 수 있어도, “누가 얼마나 감당하고, 언제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라는 실무적 연산은 못 다룬다.


예를 들어, 세금 징수 기준을 기도해서 정하냐?


국방과 복지의 균형을 신의 계시로 맞추냐?


인플레이션 조정 비율을 성경 구절로 보정하냐?


말이 안 되잖아.


'순자'가 이런 말을 했었지. 순자(荀子)의 예론(禮論)을 보면 이런 글이 있음.


예자는 인도지극야, 비천도야

(禮 者 人道 之 極 也 非 天道 也)


이 말의 뜻풀이를 하자면 “예(禮)란 인간의 도리를 극대화한 것이지, 하늘에서 내려온 질서가 아니다.”란 뜻임.


종교가 아무리 신성한 명분을 들고 와도, 국가의 구조는 원초적 감정이 아니라 피땀흘려 머리를 쥐어짜낸 인간의 설계로 짜여야 함. 도덕은 동기일 수는 있어도, 시스템을 짤 수는 없는 노릇.


결론? 보갤러(116.127)좌가 하는 얘기는 설계가 아니라 감정 선동 수단이지. “설계된 억제”가 아니라 “감정 위에 감정 얹기”란 소리.


종교를 감정의 방화벽으로 삼겠다는 건, 불끄겠다고 불쏘시개 던지는 격임.


민족주의가 감정적이면 종교는 덜하냐? 그 감정 더 오래가고 더 집요하다.


본 필자는 정치를 시스템 설계자의 작업으로 본다. 정치란 단순히 권력 휘두르기가 아니라, 하중 감당, 에너지 조율, 시스템의 과부하 방지 설계가 본질이어야 한다고.


정치에서 종교와 민족은 도구가 될 수는 있어도, 그게 주체가 되는 순간 시스템은 개돼지 민중들의 원초적 감정에 휘청이게 될 거다.


설계 없이 원초적 감정으로 시스템 억제하겠다는 애들은, 결국 감정에 떠밀려 시스템 자체를 박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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