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각하의 '노예적 체념의 일상화'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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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적 체념의 일상화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의 정서를 슬픔과 비극 그리고 애잔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민요의 가냘픈 가락과 가사에 담긴 슬픔은 억센 반항 끝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될 대로 돼라’ 또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식의 소극적인 체념에서 온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의 비극은 유럽 사람들이 생각하는 비극과 근본부터 다르다. 유럽 스타일의 비극은 운명에 맞서 싸우다가 장엄하게 쓰러지는 것으로, 부정을 다시 부정해서 이를 이겨 내려는 힘과 긴장이 팽팽한 반면, 우리의 슬픔이나 애수는 비극이 아니라 가엾음이요, 체념의 새김질이다. 이는 굴복하고 복종하는 정신이 굳어진 까닭이다. 따라서 억세게 헤치고 나가려는 유럽 식의 비극 의식은 한국에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그저 나약한 눈물과 값싼 동정이 있을 따름이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래인 <아리랑>을 보면 소극적인 체념이 고질화된 한 단면을 알 수 있다. 노래 가사를 보면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라는 구절이 있다. 자기를 뿌리치고 떠나가는 임을 그리워하면서도 “여보, 날 두고 어디를 가시오” 하고 막아서는 대신 혹시 십 리쯤 가서 요행히 발병이라도 나서 돌아와 주었으면 하는 애처로움이 그를 대신한다. 유럽 사람들 같으면 따라 나서든지 목에 매달려 못 가게 할 터이다. <밀양 아리랑>도 가사가 “정든 임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 해 /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이다. 소극적이고 표정 없는 일면이다. 우리 겨레의 이런 정서는 벌써 신라의 향가에서 그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처용가」를 보면 “(...) 밤 깊도록 노니다가 / (집에)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 다리가 넷이어라 / 둘은 내 것인데 / 둘은 뉘 것인고 / 본래 내 것이다마는 / 빼앗김을 어찌하리” 장탄식을 늘어놓고 있다. 유럽의 사나이라면 바로 권총을 들어 둘을 다 쏴버렸을 것이다.
이러한 체념은 대결 의식이 없고 굴복하는 인생 태도이며 운명에 순순히 굴하는 태도라 하겠다. 따라서 운명을 개척하거나 새 길을 찾아보려고도 하지 않으며 불가능한 것을 바꿔 보려는 용기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점(占)이니 관상이니 사주택일 같은 운명관에 사로잡혀 가난은 고질화되고 살림살이를 바로잡으려는 의욕이 움트지 못했던 것이다.
체념은 소극적인 현실 도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노래에는 조금이라도 힘들면 ‘못살겠다’, ‘죽겠다’ 같은 말이 서슴지 않고 튀어나온다. 이와 같은 현상은 조선 전제정치 등쌀에 괴롭힘을 당하던 인생의 일단을 말해 주는 동시에, 값싸게 삶을 포기하려는 나약한 인생 태도와, 현실 도피를 무슨 고상한 일로 착각하는 패배의식에서 비롯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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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평설 우리 민족의 나갈 길』,기파랑(2017), p68-79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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