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담론 논의를 위한 불문율과 ceteris paribus
우파 담론 논의를 위한 불문율과 ceteris paribus: 우익 독재라는 전제조건
경제학은 ceteris paribus(세테리스 파리부스), 즉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이라는 전제 위에서 작동한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 한계효용 이론, 가격탄력성 등 거의 모든 경제 이론은 관심 변수 외의 외생 변수들을 고정시킨 채 분석을 진행한다. 앨프리드 마셜이 이 방법론을 체계화한 이래, 경제학은 이 인위적이고 고립된 조건 없이는 작동할 수 없는 학문이 되었다.
현대 우파 담론 역시 유사한 구조적 전제를 갖고 있다. "사회는 이래야 한다", "사람은 이래야 한다", "정책은 이래야 한다"는 식의 모든 규범적 주장은 표면적으로는 보편 명제처럼 제시되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조건절을 암묵적으로 전제한다. 그 조건은 바로 "좌파적 헤게모니가 해체되고 우익 정부의 권력이 강력하게 행사되는 상황이라면"이다. 달리 말하면, 우익 독재라는 가정이 현대 우파 담론의 ceteris paribus로 기능한다.
이 전제가 왜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가? 그것은 현대 서구 및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좌파적 가치 체계가 사실상 준헌법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우파의 현실 인식 때문이다. pc주의, wokeism 등은 더 이상 하나의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제도·미디어·교육·기업·법원·국제기구 전반을 관통하는 지배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
이 상황에서 우파는 정치를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해야만한다. "평범한 민주주의적 절차" 안에서는 이민 제한, 반LGBT, 전통적 가부장제 강화, 재정보수주의 등 우파적 정책이 실질적으로 통과될 수 없다. 설령 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사법부·관료제·미디어·기업·시민사회가 총동원되어 해당 정책을 무력화시킨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 헝가리 오르반 정권의 반LGBT 정책, 폴란드 법과정의(PiS) 정부의 사법개혁 등이 겪은 저항이 그 사례다.
결국 우파 입장에서 보면, 현 체제 하에서 자신들의 규범적 이상을 실현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모든 우파 담론은 무의식적으로 "좌파의 반발·법적 저지·매스미디어의 린치·기업 보이콧·국제 제재 등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가정한 채 전개된다. 이것이 바로 경제학의 ceteris paribus가 하는 역할과 비슷하다. 인과관계를 순수하게 고립시켜 분석하기 위해, 방해 요소들을 모두 "고정"시키는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혁명이 단순한 국가 권력 장악이 아니라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기적으로 구축하는 진지전(War of Position)임을 주장했다. 좌파는 이 전략을 충실히 실행했고, 그 결과 "상식"을 장악했다. 성평등, 다문화주의, 기후정의 등은 이제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전제로 받아들여진다.
우파의 대응은 이론상 내부 침투형 전략과 재부팅(reboot)의 두 갈래로 나뉜다. 그러나 커티스 야빈을 중심으로 한 신반동주의(NRx) 계열에서는 실질적으로 재부팅이라는 대응만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된다.
첫째, 내부 침투형 전략은 신반동주의자들에 의해 거의 논박당한 수준이다. 좌파 대성당(Cathedral, 진보주의 성향의 비선출 권력기구의 집합. 이른바 딥스테이트)을 내부에서 뒤엎거나 개혁하려는 시도는 헛된 로망으로 규정된다. 야빈은 대성당을 '바이러스처럼 자가 복제되는' 이념적 네트워크로 보고, 내부에서 도전하면 자동으로 "이단" 취급당해 오히려 강화된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그는 그람시식 진지전을 좌파 전용 전략으로 치부하며, 우파가 따라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둘째, 현 진보주의 체제 폐기와 재부팅 중심의 탈출형 전략. 현대 민주주의를 "버그 투성이의 오래된 OS"로 비유하며, 패치나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완전한 시스템 폐기와 새로운 운영체제 설치를 주장한다.
이 재부팅을 위한 구체적 실행 단계와 목표 상태는 다음과 같다.
정부 관료 전면 해고(RAGE, Retire All Government Employees): 재부팅의 가장 직설적·실행 가능한 첫 단계. 모든 정부 공무원·관료를 대량 해고하여 기존 관료층을 완전히 제거한다. 야빈은 대성당의 수족과 다를 바 없는 관료제를 없애야 시스템이 깨끗하게 초기화된다고 보았다. 이는 단순한 인력 감축이 아니라, 대성당의 물리적 기반을 뿌리째 뽑는 행위다.
대안교육단체(Antiversity): 진보주의적 교리를 퍼뜨리는 대학에 반발하고 우파적 담론의 재생산을 구축하는 지적 기반 마련. 대성당이 "진보주의적 거짓말"을 생산한다면 Antiversity는 현실주의·반동적 진실을 생산·전파하는 분산형 네트워크다.
신관방주의(Neocameralism): 국가를 주권 기업(sovcorp, sovereign corporation)으로 재구성한다. CEO형 군주가 절대 권력으로 국가를 "소유"하고 운영하며, 시민은 투표권 대신 자유롭게 이주(exit)할 권리만 가진다. 경제는 자유시장을 유지하되, 정치·법·안보는 CEO가 독점한다. 민주주의는 폐기되고, 국가는 효율성과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기업 모델로 전환된다.야빈은 이를 대성당의 지적 독점을 깨는 전제 조건으로 보았다.
패치워크(Patchwork): 재부팅 후의 목표. 세계를 수천 개의 작은 주권 국가 조각으로 분할한다. 각 "패치(patch)"는 독립적 주권을 가지며, 경쟁을 통해 효율적인 국가만 살아남는다. 싱가포르·두바이 모델의 극단적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분산형 소형 주권국가 체제라고 볼 수 있다. 이 패치워크 개념은 이후 발라지 스리니바산(Balaji Srinivasan)의 네트워크 국가(Network State, 암호화폐·온라인 커뮤니티 기반 탈출 국가), 시스테딩(Seasteading, 바다 위에 부유하는 도시), 암호화폐 기반 탈출 프로젝트 등으로 확장·변형되었다. 이들 모두 기존 체제를 버리고 새로운 주권 공간을 만들어 우익적 질서를 실현하려는 시도이며, 물류와 기술을 장악해 경제 구조를 재편함으로써 좌파 대성당으로부터 분리독립을 꾼다. 테드 카진스키가 논한 기술 비판적 맥락과는 정반대로, 기술을 사용해 우파의 주권 회복을 위한 탈출을 시도하는 셈이다.
어느 쪽이든 "좌파 대성당이 지배하는 현재 민주주의 하에서는 아무나 체제 변혁을 쉽사리 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래서 우파 담론은 필연적으로 체제 전환 또는 체제 탈출을 상정한 채 규범적 이상을 논한다.
경제학의 ceteris paribus는 이론적 유용성을 갖지만, 현실에서는 절대 충족되지 않는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이라는 가정 자체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파 담론의 전제 조건 역시 현실에서는 거의 충족되지 않는다.
좌파 헤게모니가 해체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파적 규범을 주장하면 "비현실적", "낭만주의", "위선"으로 비쳐진다. 반대로 그 조건을 명시적으로 전제하면 "우익 독재 찬양", "반민주주의", "파시즘 미화"로 공격받는다. 우파 담론은 이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내재적 모순이다. "우리가 원하는 질서를 실현하려면 먼저 좌파적 질서를 해체해야 하는데, 그 해체 자체가 (대안우파를 제외한)주류 우파의 규범적 이상(자유, 도덕, 질서 등)과 충돌한다." 예를 들어,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면서 동시에 좌파 미디어를 억압해야 하고, 법치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좌파 사법부를 무력화해야 한다. 주류 우파가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거나 모순을 대놓고 직면하고 직진하지 않는 이상, 우파 담론은 영원히 케케묵은 이론 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현대 우파가 "사람은 이래야 한다", "사회는 이래야 한다", "국가는 이래야 한다"를 논할 때, 그것은 사실상 "만약 좌파들의 반발 없이 정책을 효율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강력한 우익 독재가 시행 중이라면"이라는 조건 하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경제학이 ceteris paribus라는 비현실적 가정 위에서 이론을 전개하듯, 우파 담론 역시 우익 독재라는 비현실적(또는 실현 불가능한) 전제 위에서 규범적 주장을 펼친다.
그렇다면 우파 담론이 진지하게 논의를 이어가려면, 단순히 "우파적 가치"를 외치는 것을 넘어 "ceteris paribus 조건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좌파 대성당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우익 주권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새로운 질서를 어떻게 안착시킬 것인가? 앞서 말했듯, 이 시스템 전환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현대 우파 담론은 영원히 조건 속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조건을 현실화하려는 시도 자체가 주류 우파의 규범적 이상과 충돌할 수도 있다는 딜레마는 여전히 남는다. 그래서 현대 주류 우파 담론은 구조적으로 공허할 수밖에 없으며, 이 공허함은 ceteris paribus라는 방법론적 전제의 불가피한 귀결이다. 경제학이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면서도 이론적 정합성을 유지하듯, 주류 우파 담론 역시 현실을 바꾸지 못하면서도 규범적 일관성을 유지하려 한다. 그것이 암묵적 전제 위에서 작동하는 담론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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