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식 판타지 로망 가부장제라는 환상에 대한 비판적 고찰
'근대식 판타지 로망 가부장제'라는 환상에 대한 비판적 고찰
고동우 씨의 어느 페이스북 글은 흥미로운 관찰로 시작한다. 여초 페미니즘 커뮤니티에서 근대식 가문 판타지에 열광하는 현상, 그리고 그가 스스로를 "반페미가 존나 병신같아서 깔뿐이지, 페미니즘은 아니다"라고 규정하는 지점까지는 일견 날카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가 도달한 "여초가 바라는건 어쩌면 페미니즘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근대 남성성'의 복구가 아닐까?"라는 결론은 현상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한 오독에 불과하다.
일단 그의 페이스북 글 본문을 그대로 옮겨보겠다.
내가 여초 페미니즘 커뮤니티 자주 하는데
거기서 내가 남자라고 하면 첫번째로 놀라고
남자가 왜 여초 취향 좋아하냐면서 놀라고
...
좀 딥하게 같이 지내면
"완전 가부장제 사고방식인데 근대식 그 가문 판타지 로망 가부장제네.."
-> 그제서야 내가 왜 스스로 "난 반페미가 존나 병신같아서 깔뿐이지, 페미니즘은 아니다"라고 하는지 알게 됨
여기서 내가 느낀건 두가지임
1. "왜 한국은 무출산 국가이고, 결혼도 기피하고, 결혼해도 아파트 거주하려고 하고, 자식은 고작 하나만 가지려고 하고 -> 이러면서 페미니즘 성향 강한 여초는 남초에서도 좆도 관심 없는 서구 근대 가부장제 소재에 그리 열광할까?
2. 진짜 남초가 많이 찐따화 되어서 남성적인 매력을 가진 이들이 현실에서 줄어든 반작용인가?
...
암튼 그렇다
부부동성, 부계 성씨 문화에 거부감 가지는 여초는 근대 - 중세 가문 소재 같은 그런 판타지나 창작물을 매우 좋아하는 것이다
심지어 남편 대신 부인이 가문의 살림 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교육과 계승에도 목숨 걸고 이러는 모습에 대해서도 상당히 몰입한다
...
여초가 바라는건 어쩌면 페미니즘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근대 남성성'의 복구가 아닐까?
"레이디 퍼스트"
"노블리스 오블리주"
"남자가 여자보다 더 돈을 잘 벌고 더 잘 써야 하는 것은 매우 당연"
...
한국 페미들을 보면 오히려 내가 느끼기엔, 현재 한남들보다 더 마초 같음
특히 국가에서 해준게 없는데도 애국심과 민족주의 성향이 투철한 경우면 더 그러함
더 심각한 문제는 댓글란에서 벌어진다. 댓글 중 페미 여초 커뮤니티의 근대식 로망 가부장제 판타지 웹소설 선호에 대해 심각한 오독을 저지른 댓글의 발췌문은 다음과 같다.
고동우: 웃기는 게 뭔줄 앎? 옛날 남성들은 저런거 존나 야망 있고 이야기 좋아했음 근데 요즘 남성들은 전혀 아님
김재용: 요즘 남자애들은 태어나자마자 시작해서 일생 내내 페미니즘, 여성적 감성이 뼛속깊이 체화된 세대라서 그렇죠.
20대 극우화, 반페미 어쩌구 하는건 페미를 자처하는 이상한 집단들이나 하는 얘기일 뿐이고, 실제로는 그 20대야말로 이보다 더 페미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페미니스트들입니다.
지금 한국은 실제와 표현이 완전 뒤집힌 것들이 많죠.
'페미니즘 성향 강한 여초'라고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냥 관습적으로 늘상 그렇게 불러왔으니 그런갑다하고 그런 표현이 별 생각없이 사용되고 있지만, 실제 걔들만큼 반페미인 애들이 없죠. 걔들 하는 얘기 하나하나가 전부 다 페미니즘과 반대되는 것들인데요.
'어쩌면' 정도가 아니라 그냥 대놓고 그러고 있는데요.
여초가 마초고 남초가 페미니까 그런 남자들 입장에서는 여자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게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것 뿐만 아니라 '애써서 충족시키려는 그 자체를 싫어하니까' 결혼을 기피하는 무출산 국가가 된거죠.
이 '실제와 표현의 불일치'는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렇죠.
유럽에서는 주로 이슬람권 이민자들에 대한 태도를 '인권에 대한 태도'로 연결시키는 표현과 사고방식이 관습적으로 지속되고 있는데, 제가 볼때는 다양성 존중, 포용, 다문화 같은게 절대 '인권 친화적'인게 아니거든요.
교육현장에서는 강력한 교권으로 이민자 어린이,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자라나서 잘 적응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고, 그 외 사회전반적으로도 공권력이 강력하게 작동해서 잘 이끌어줘야 그들 및 사회전체의 인권이 잘 보호되죠.
개판치도록 그냥 냅두기만 하면 거기에 뭔 인권이 있나요. 다수의 이민자들의 삶이 불행해지고 위험해지며 결과적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며 인권이 땅에 떨어질 뿐.
댓글란에서 김재용 씨가 제시한 "실제와 표현의 불일치" 분석조차, 여전히 "여초는 마초고 남초가 페미"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모두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다. 바로 여성들이 '진짜로' 전통을 원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상에 대한 근본적 오해다. 여성들은 전통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착취 시스템의 첨단화를 원할 뿐이다.
고동우 씨는 "부부동성, 부계 성씨 문화에 거부감 가지는 여초는 근대-중세 가문 소재 같은 그런 판타지나 창작물을 매우 좋아하는 것"이라며 이를 모순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모순일까? 마크 유레이(Mark Yuray)의 ‘오늘날의 여성들은 과거의 창녀들과 같다’라는 글은 이 '모순'이 사실은 완벽한 일관성임을 보여준다.
[...] 여성들이 대부분의 직업에서 배제되고 아내들은 재산을 소유할 법적 권리가 없었던 시기에, 덴버의 홍등가를 지배한 제니 로저스와 매티 실크스 같은 여성들은 넓은 토지와 가치 있는 부동산을 소유했다.
매춘부들은 당시 모든 미국 여성들 중 가장 높은 임금을 받았다. 몇몇 유곽 주인들은 너무나 부유해 서부 개척 시대의 기초를 다지는 관개 시설과 도로 건설 프로젝트에 자금을 댔다. [...]
마크 유레이는 계속해서 19세기 '화장한 여성들(painted ladies)'의 특징을 나열한다.
[...] 매춘부들은 다른 미국 여성들보다 결혼을 늦게 하고 이혼을 더 자주 했다. 여성들이 '사적 영역'에 속한다고 배웠던 시기에, 매춘부들은 종종 홀로 광범위하게 여행하며 대담하게 '공적 여성'으로 활동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도박과 공공장소에서의 음주는 금지되었지만, 매춘부들은 서부 살롱의 중심 인물이었고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도박꾼들 중 일부가 되었다. 가장 역설적인 점은, 서부 매춘부들의 메이크업, 의상, 헤어스타일은 노골적인 성적 표현으로 비난받았지만, 결국 미국 여성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하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심지어 영부인들조차 이를 당당히 착용할 정도로 존중받게 되었다. [...]
이 목록은 놀랍도록 친숙하다. 재산 소유, 늦은 결혼, 잦은 이혼, 독립적 여행, 화장과 성적인 복장...이것이 바로 고동우 씨가 관찰한 '여초 커뮤니티'의 실제 라이프스타일이 아닌가? 그들이 웹소설에서 소비하는 "근대 귀족 부인" 판타지는 본질적으로 19세기 고급 매춘부의 삶을 낭만화한 것에 불과하다. 마크 유레이는 19세기의 전통적인 관점에 대해 명확히 지적한다.
[...] 19세기에 전통적인 관점은 여성이 재산을 소유해서는 안 되며, 일찍 결혼해야 하고, 절대 이혼해서는 안 되며, 겸손해야 하고, 남성 친척 가까이에 머물러야 하며, 술집이나 살롱 근처에서 어울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은 임의적인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여성이 매춘부나 19세기 당시의 스트리퍼와 캠걸에 해당하는 사람들과 연관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립스틱과 매춘부들의 다른 표식들이 나쁜 평판을 얻은 이유는 가부장제의 자의적인 변덕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이 매춘을 용이하게 했기 때문이다. [...]
고동우 씨는 이 역사적 맥락을 완전히 놓치고 있다. 여초가 소비하는 "근대 가문 판타지"는 전통의 회귀가 아니라, 매춘부 라이프스타일의 낭만화다. "남편 덕봐서 귀족 놀이"라는 판타지는 본질적으로 "고급 매춘부로서 부유한 후원자의 돈으로 사치 생활"이라는 19세기 현실의 재포장에 불과하다.
마르티네즈 퍼스펙티브(Martinez Perspective)의 ‘극우파 남성들에게 기생하는 용병 여성들’이라는 글에서는 전통주의 우파인 척 행세하는 페미니스트 여성들의 현대상을 포착한다.
[...] 온라인 영역에서 우익 내셔널리즘 사상이 급부상하면서, 여성들이 이 남성 공간을 침범하여 자신들의 이기적인 금전적 이득을 위해 전복시키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사례는 '전통주의 코스프레 창녀들(tradthots)'입니다. 이들은 늘어나는 인터넷 유명 여성들로, '전통주의자' 가정주부 페르소나를 내세워 주로 유튜브와 같은 소셜 미디어 사이트에서 수천 명의 갈증 난 온라인 '보빨러(beta orbiter)'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
고동우 씨가 관찰한 여초의 "레이디 퍼스트", "노블리스 오블리주", "남자가 여자보다 더 돈을 잘 벌고 더 잘 써야 하는 것은 매우 당연"이라는 로망은, 바로 이 '전통주의 브랜딩'을 통해 자신의 여체를 남자에게 비싸게 팔려는 심리의 연장선상이다. Martinez Perspective는 계속해서 이렇게 적는다.
[...] 이 자기애성 강한 여성들은 남성 철학자들과 활동가들의 고된 노력 덕분에 내셔널리즘적이고 전통주의적인 사상이 들불처럼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고, 마치 침입종처럼 전장으로 달려들어 대부분 남성인 청중들에게서 돈을 뜯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전통주의 코스프레 창녀'인 로렌 서던(Lauren Southern)은 팬들에게 15분간의 스카이프 대화를 위해 200달러를 요구합니다. [...]
15분에 200달러. 이것이 '전통주의' 매춘부의 시장 가격이다. 고동우 씨는 여초가 "근대 남성성의 복구"를 원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전통주의를 상품화하여 베타 남성들을 착취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작동하고 있을 뿐이다.
Roosh V는 ‘전통주의 코스프레 창녀는 전통적이지 않다’라는 영상에서 자신의 직접적 경험을 통한 전통주의 코스프레 창녀의 실상에 대해 폭로한다.
나는 2017년 ‘전통사상 전쟁’을 시작했다. 이유는, 반체제 우파 진영에 있는 몇몇 여성들이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자들을 속이고 있다. 많은 남자들이 그들을 ‘이상적인 전통 여성상’이라고 착각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이 근처의 어떤 나이트클럽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문란한 여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더 나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내가 왜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가? 그리고 내가 했던 말들을 보면 알겠지만, 왜 지금 이게 문제로 떠오르는가? 최근 여러 사람들로부터 그 여성들이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공적인 모습과 사적인 행동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이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남성들을 속이고 있는지, 그 행태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 지난 몇 달 동안, 한두 명이 아니라 여러 출처로부터 그들의 행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나는 ‘삼각관계식 조작(triangulation)’을 당하고 있다. 이해해야 할 게 있다. 나는 사실 이 운동의 중심 인물이 아니다. 나는 말 그대로 세상과 단절된 곳에 있다. 해가 오후 2시에나 지는 그런 외딴 곳에서 말이다. 몇 달째 태양도 본 적이 없다. 그게 내 정신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나는 반체제 우파 운동의 핵심 인물도 아니고, 그냥 아무도 없는 외딴 곳에서 내 악마들과 씨름하며 내 일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저 여자애가 그런 짓을 한다, 또 다른 여자애가 그런 짓을 한다는 얘기들이 계속 들려오고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들이 대중 앞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다. 그러던 중 나는 새로운 ‘사상 유튜버’인 로런 로즈(Lauren Rose)의 트윗을 봤다. 갑자기 나타난 이 여자가 “나는 내 민족과 전통주의를 믿는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 여자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다. “여성을 다시 고귀하게 만들자”고 하면서 정작 카메라 앞에서 몸을 드러내고 유튜브에 얼굴을 내밀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손질해서 남성 시청자 99%에게 매일 수백 개의 칭찬을 받는다는 거다. 하루에 내가 받는 칭찬이 몇 개인 줄 아나? 두 개 정도다. 그 정도로는 내 자존심이 부풀지도 않는다. 그런데 여자는 하루에 100개의 칭찬을 받는다. 게다가 서구 사회에서 이미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최고의 사회적 지위로 여겨지지 않나? 거기에 더해, 틴더(Tinder)에서의 수많은 매치와 그녀 주변을 맴도는 ‘베타 오비터(beta orbiter, 여자를 짝사랑하거나 추종하는 남자들)’들까지 있다. 그런데 이제 유튜브를 통해 수천 명의 새로운 베타 오비터들을 더 얻게 되는 거다? 세상에, 그게 어떤 결과를 낳겠나? 결국 그 여자를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아는 남자 같은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 여자는 자기한테 아무 생각도 없는데도 자신이 뭔가 대단한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냥 참을 수가 없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입을 다물고 있질 못하잖아. 그래서 이렇게 썼다. “관심과 돈을 얻으려고 수만 명의 목마른 베타 오비터들을 끌어모으는 여자가 이런 말을 한다니, 하하하.” 그럼 진짜 전통적인 여성이라면 이런 말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겠지. “세상에, 저 끔찍한 남자를 봐!”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대신 스스로 남자처럼 굴었다. “왜 화났어, 꼬마야? 내 패트리온(Patreon)에 후원이나 해.” “아, 나 아직 계정은 없어. 생기면 링크 보내줄게.” 요컨대 그녀가 한 말은 이거였다. “네 좆 작잖아. 그러니까 내게 돈이나 줘.” 그러니까 그녀는 이미 어떻게 돈을 벌어들일지 계산하고 있었던 거다. “그게 바뀌면(=후원 계정이 생기면)”이라고 말한 것도 결국 남성 팬들의 돈으로 여행 다닐 방법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기서 큰 거짓말이 나온다. 그녀가 이렇게 말한 것이다. “누가 이 사람이 누군지 아나요?”— 이건 순 거짓말이다. 너 나 누군지 다 알잖아. 네 엄마도 나를 알지도 몰라. 내 위신이 너보다 높다고 가장하지 마라. 왜냐면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네가 관심을 조금이라도 받는 유일한 이유는 네가 새롭고 어린 여자이기 때문이라는 걸. 다른 ‘여자 인플루언서’들은 이제 나이를 먹고 있고, 그들이 무슨 짓을 했다는 소문도 돌기 시작했다. 그래서 네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거다. 그런데 고작 19살짜리가 자기 나이의 두 배인 남자에게 “넌 작은 남자야”라고 말하고 있다. 정작 그녀 자신은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데 말이다.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들이 한 말을 되풀이하고, 그들의 주장만 베껴내는 여자일 뿐이다. 마치 똑똑한 남학생의 숙제를 베껴서 냈는데, 선생이 그 여자를 꼬시고 싶어서 성적을 더 높게 주는 그런 경우와 같다. 그 숙제는 사실 ‘똑똑한 남자가 한 숙제의 복사본의 복사본’일 뿐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누가 그러더라 — 그녀가 겨우 19살이라나. 이 여자애는 19살이다. 그런데도 수많은 멍청하고 절박한 남자 추종자들이 달라붙어서 그녀 자존심을 부풀려주니까,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 착각하고 있는 거다. 우리 모두 알지 않나. 그녀에게 ‘보지’가 없었다면, 팔로워가 고작 10명도 안 됐을 거다. 그녀는 트위터 알 계정(기본 달걀 아이콘만 있는 계정) 수준이었을 것이다. 프로필 사진조차 없는 그런 존재 말이다.
아무도 그녀가 실제로 무슨 말을 하는지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약간 화가 나는 건 사실이다. 나는 이렇게 진짜로 생각하고, 머리를 쓰며, 다리 사이의 본능(성욕)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데, 그녀는 곧 팔로워 천만 명을 거느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왜 내가 이렇게 화가 나는가? 왜 이런 여자들이 수천 명의 남자들을 속이는 게 신경 쓰이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 그건 사기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닌 사람인 척하면서, 결국 돈을 벌겠다는 목적 아래 그런 가면을 쓰는 것, 그건 단순한 이미지 장사 이상의 기만 행위다. 말하자면, 그건 틴더에서 예전 날씬했을 때 사진을 올려놓고, 막상 만나보면 ‘오는 길에 사람 한 명쯤 잡아먹었냐?’ 싶을 정도로 달라진 여자보다 훨씬 더 나쁜 짓이다.
그게 더 나쁜 이유는, 그녀가 그걸로 돈을 벌고 있거나 벌려고 하기 때문이다. 내가 신경 쓰는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속았기 때문이다. 나는 전통적인 성향의 여자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데이트하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년은 스탑럴커를 한 페미니스트(crypto feminist)였다. 그 년은 마치 나만큼이나 도널드 트럼프를 좋아하는 것처럼 행동했지. “저기 있는 도널드 트럼프 봐, 그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야.” 이런 식으로 말이야. 그런데 결국 다 끝나고 나니까, 그 년은 도널드 트럼프를 증오하더군. 그 여자는 저기 침대에 누워 있었던 여자다. 네가 잘 안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수도 없이 많은 밤을 함께했지. 내가 그 년을 수없이 탐했고, 그래서 난 그 년을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전혀 몰랐던 거다. 그 년은 내게 배우였던 거지. 완전히 연기하고 있었던 거다, 친구. 이건 또 다른 이야기다. 이것만으로도 팟캐스트 한 시간은 할 수 있을걸. 완전히 속았다.
그러니까 말이다, 내 침대에 있던 여자한테조차 내가 속을 수 있었다면, 유튜브에서 카메라 앞에서 예쁘게 꾸미고, 인스타그램에 귀엽게 셀카 올리는 여자는 얼마나 많은 남자들을 속일 수 있겠나? 생각해봐라. 그리고 들어봐라. 나는 내 전 생계를 남자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일로 벌어왔다. 내가 이런 여자들이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으면, 그걸 누가 너희에게 알려주겠나? 그리고 또 한 명 있지. 바로 타라 맥카시(Tara McCarthy)라는 여자다. 그 년은 “대안 우파는 페미니즘과 싸우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인구학적 통제를 되찾는 게 목적이다”라고 말했다. 이 병신같은 년아, 인구 구성이 왜 그렇게 망가졌다고 생각하냐? 그게 다 페미니즘 때문이잖아!
너 같은 년들은 자기 사진을 올리고, 대중을 모으는 데만 더 관심이 있지, 진짜로 네가 말하는 그 “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 그러니까 입 다물고 애 낳는 일 — 은 전혀 안 하잖나. 나는 여자가 애를 낳든 말든 상관 안 쓴다. 백억 명의 흑인 남자든, 무슬림 남자든, 아시아 남자든 누구랑 자든 신경 안 쓴다. 그런데 제발, 그런 걸 반대한다고 말하면서, 세상에 나와서 “나는 전통적인 이상적인 아내예요” 같은 소리를 하지 말란 말이다. 그게 아니잖아. 그건 사기다. 그리고 또 이런 여자도 있지. 그 년은 이렇게 말했다. “대안 우파는 언제나 여성혐오적인 병신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이런 유아적 남자들과 한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타라 맥카시같은 여자들에게 집착하는 이 남자들은 한심하다.”
정말 한심한 일이지. 그 년이 평소에 얼마나 특정한 이상(ideals)을 홍보해왔는지를 생각하면 말이다. 만약 내가 “그 트윗을 쓴 사람이 제시카 발렌티(Jessica Valenti)나 린디 웨스트(Lindy West) 같은 페미니스트다”라고 말하면, 너는 그 차이를 알아볼 수 있겠나? 이건 완전히 페미니스트들의 언어다. 이른바 ‘전통적인 여자’라는 애들을 조금만 파보면, 조금이라도 유명세가 있는 애들은 결국 모두 페미니스트라는 게 드러난다. 매번 그렇다. 얘들아, 정말 좆같은 세상이다. 명예도 없고, 아무런 절제도 없는 여자들 — 그런 걸레년들이 사방에 널려 있잖나.
솔직히 말해서, 나도 안다. 너희가 진심으로 믿고 싶어한다는 걸 말이다 — 여자들이 너희를 아껴주고, 나라를 걱정하고, 거짓말하지 않고, 결혼하고 나서도 살찌지 않으며, 바람피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다는 거. 나도 그래. 나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환상이다. 그리고 그 환상을 믿으면, 결국 너희는 속게 된다. 그런 여자들에게 속거나, 아니면 내 인생에서처럼 너를 직접 속일 여자에게 당하게 될 거다. 나도 거의 그렇게 당할 뻔했으니까. 이제, 소문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래, 고민이 된다. 내가 알고 있는 걸 정말 말해야 할까? 그렇지만 그 정보를 내게 신뢰하고 알려준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진 않다. 그래서 다 말하진 않겠지만… 특히 한 이야기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요컨대, 어떤 여자가 전과자, 범죄자랑 자면서도 입으로는 “나는 전통적인 여자예요” 하고 떠든다는 것이다. 이건 정말로 매노스피어(manosphere)에서 말하는 “알파는 섹스를 하고, 베타는 돈을 낸다(Alpha fucks, beta bucks)” 이론을 완벽히 증명하지. 예외가 없다, 얘들아. 진짜 단 하나도 없다. 모든 여자는 다 똑같다. 여자를 특정한 환경에 넣어두면, 결국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게 돼. 예외는 없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그건 그녀가 이런 독성 문화에 전혀 노출되지 않은 아주 특별한 환경에서 자란 경우뿐이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유튜브에 있고, 트위터를 하고, 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리고, 또 자신을 둘러싼 베타 오비터가 돈 대는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있다면 — 그 컨퍼런스에서 그녀가 뭘 하고 있을 것 같나?
너는 그 년이 미국을 구하겠다고, 문화를 지키겠다고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아니야. 화장실에서 다른 남자랑 섹스하고 있겠지. 내게는 이런 게 너무나도 명백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은 뭐냐 하면, 이 년들이 우쭐대면서 자기들 베타 군단을 내게 보내 내가 말하는 걸 막으려 한다는 거다. 나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데, 그 여자들은 자기네의 비겁한 군대를 동원해서 “오, 다리우스 발리자데(Daryush Valizadeh, a.k.a. Roosh V)는 강간범이야”, “그는 무슬림이야”, 뭐 이런 식으로 떠드는 거다. 그래서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나? 결국 거짓말쟁이들이 더 힘을 얻는 꼴이지. 그런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건 절대 옳지 않다. 게다가 지금 이 여자들 중 많은 애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왜냐면 곧 정체가 드러날 거라는 걸 알고 있거든.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특정 여자를 공개적으로 폭로하는 건 내 역할이 아니다.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지.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사는 게 정말 옳은 인생일까?
사람들을 속이고 진실이 드러날 그 순간을 기다리며 사는 거 — 그건 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거다. 이 계집년들은 이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해. 내가 그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할 거다. “봐라, 결국 다 드러나게 돼. 솔직해져라. 거짓말하지 마라. 남자들을 속이려 들지 마라. 완전히 정직해지고, 다 털어놔라.” [...]
내가 쓴 글 중에 「왜 여성 반(反)페미니스트는 사실상 위장한 페미니스트인가」라는 게 있다. ‘여성 반페미니스트’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 단지 제약된 여성만 있을 뿐…
고동우 씨가 목격한 현상은 이 착취 시스템의 소비자 측면이다. 인플루언서들이 "전통주의" 브랜드로 베타 남성들의 돈을 수확하듯, 한국의 여초 커뮤니티는 "근대 귀족 판타지"를 소비하며 동일한 착취 구조를 내면화한다. 둘 다 본질은 같다. 전통적 여성의 의무는 거부하되, 전통적 가부장제가 제공했던 남성의 자원과 보호는 최대한 뽑아먹겠다는 것.
Roosh V는 이어서 이렇게 진심을 담아 말한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여성이, 특히 서구 사회에서 살며 선택권이 충분히 있는 여성이, 왜 그걸 포기하고 ‘전통적인’ 삶을 택하겠어?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는 여자가, 왜 일부러 스스로를 제한하겠어? 과시하려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 그게 전부다. 그리고 내가 정말 궁금한 건 — 아버지들은 어디 있는 건가? 오빠나 남동생들은 이런 여자들에게 왜 이런 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느냐고 말하지 않는 걸까? 이건 정말 이상한 게임이다, 진짜로. 그런데 그 이유는, 아버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많은 여자들이 약하거나, 딸에게 인생에 대한 조언을 해주지 못하는 아버지를 둔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대신 아버지 역할을 해야 하는 거지. 내가 그들의 대리 아버지다. “내 말을 들어. 인터넷에서 좀 꺼져. 점점 열 받게 만들고 있어.” 이건 사기다.
그건 거짓말이다. 전혀 고결하지도 않고. 너는 ‘전통적인 여자’가 아니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꺼져라. 사회의 문제는 남자들이 스스로 해결하게 놔둬. 너희는 그저 뒤에서 조용히 지원만 하면 돼. 하지만 네 사진을 온 인터넷에 뿌리고, 얼굴을 드러내고, 돈을 벌어서 여행 다니며 ‘알파남’이랑 놀겠다고? 말도 안 돼. 난 그런 짓을 하는 너희를 공개적으로 비판할 거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많은 남자들도 그렇게 할 거다. 그러니까 이제 ‘전통적인 여성’이라는 허상을 좀 끝내자. 만약 그런 여자가 진짜 존재한다면, 절대 인터넷 따위엔 없을 거다. 관심 끌려고 칭찬 낚시질 따위도 안 하겠지. 그런 여자는 그냥 세상 어딘가, 아주 평범하고 조용한 곳에서 존재할 뿐이다.
특정 공동체나 교회, 작은 마을에 사는 여자 — 진짜 ‘전통적인’ 여자는 이런 여자들을 싫어할 거다. 솔직하지도 않으면서 주목받는 걸 즐기는 저 여자들을 말이다. [...]
고동우 씨는 자신을 "반페미"와 구분하며, 여초 커뮤니티가 "페미니즘 뿐만 아니라" 근대적 남성성을 원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앤드류 디카이오마타(Andrew DiKaiomata)의 ‘모든 페미니스트는 트래드콘(tradcon)이다’라는 글에서는 이 구분 자체가 환상임을 밝혀낸다.
남성인권운동(MRM)에서 우리는 종종 페미니스트와 전통주의 보수주의자들이 비교되고 대조되는 것을 본다. 우리는 전통주의 보수주의자(tradcon)들이 페미니스트만큼이나 나쁘다는 말을 듣는다. 이 글에서 나는 모든 페미니스트가 트래드콘이라고 주장하지만, 모든 트래드콘이 페미니스트인 것은 아닐 수도 있다고 본다.
디카이오마타는 다섯 가지 측면에서 페미니즘과 전통주의의 구조적 동일성을 입증한다.
1. 여성을 위한 별도의 규칙
페미니스트들은 모든 트래드콘들처럼 여성에게 거절하는 것을 정말 힘들어한다. 그들에게 남성으로서 당신은 여성을 만족시키고 보호해야 한다. 그녀를 어린아이처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그들에게 남성은 절대 여성을 울려서는 안 되며, 그녀의 모든 필요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예를 들어, 그들은 "여성을 때리는 것은 절대 괜찮지 않다!"고 외친다. 자신이나 자녀를 방어하기 위해서도 안 되나? 다른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안 되나? 아니다. 트래드콘들에게, 그리고 내가 트래드콘이라고 말할 때 페미니스트들을 포함하는데, 여성은 약하므로 무고하다. 남성은 강하므로 학대적이다. 여성은 트래드콘적 사고방식을 위반하지 않고 남성을 때릴 수 있는데, 왜냐하면 "여성이 남성에게 정말로 무슨 해를 끼칠 수 있겠는가? 남성이 더 강하다." 이것이 페미니스트와 트래드콘 모두가 학대받는 남성을 조롱하고 그들의 문제를 축소하는 지점이다. 그들에게 더 강하다는 것은 학대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동우 씨가 관찰한 "연약한 어린아이와 노약자, 숙녀를 다치게 하는 것은 내가 용서치 않는다, 우리 가문의 명예를 걸고!!"라는 판타지는, 바로 이 "여성을 위한 별도의 규칙" 시스템을 낭만적인 것 마냥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2. 진짜 남자
"남자답게 행동하고 페미니스트가 되어라!", "남자답게 받아들여라!". 페미니스트들은 트래드콘으로서 "진짜 남자"라는 개념으로 남성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을 좋아한다. "진짜 남자는 페미니스트다" 몰랐나? 그럼 나는 진짜 남자가 아닌 모양이다.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요점에 편승하여 "진짜 남자는 여성을 때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짜 남자는 여성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성이 여성의 이익을 위해 자신에게 해가 되도록 희생해야 하며, 그것이 "진짜 남자"가 되는 방법이다. "자비로운 가부장제" 알겠는가? 그것은 문제가 있다, 여성에게 직접적으로 이익이 될 때를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경우에는 그것은 "대규모로 쓰인 여성혐오"이다.
고동우 씨의 "레이디 퍼스트",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다른 말로 하면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진짜 남자"의 의무다. 페미니스트든 전통주의자든, 남성을 통제하는 메커니즘은 거의 동일하다.
3. 여성과 아이들
배가 침몰하기 시작하면 모두가 "여성과 아이들 먼저!"라고 외친다. 이것은 남성들이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여성들에게 가지도록 훈련받은 이타적인 희생적 사랑을 보여준다. 하지만 페미니스트에게, 그리고 아마도 남성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일상적인 트래드콘에게조차, 이 이타적인 희생적 사랑은 실제로는 여성에 대한 증오, 여성혐오에 기반한 것이다. 페미니스트가 이 주장을 하려는 것을 듣게 되는 불행한 위치에 있으면, 생각하지 않으면 말이 된다고만 말해두자. 이것은 페미니즘 내에서 반복되는 주제인데, 여성혐오라는 단어로 증오라는 개념을 절대적으로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트래드콘과 페미니스트가 의견을 달리하는 입장처럼 보일 수 있는데, 여성에 대한 사랑이 증오라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다음 요점을 명심하라.
4. 남성은 섹스를 위해 여성을 노린다
트래드콘과 페미니스트는 남성은 오직 섹스를 위해서만 여성을 노린다는 생각에 모두 동의한다. 그가 뭔가 좋은 일을 한다면, 조심하라! "착한" 남자? 아니 아니, 순진한 남성인권운동가여, 남성은 쓰레기다, 그들은 위험하다. 크고 나쁜 남자를 조심하라. 그들에게 남성은 억제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무고한 여성을 공격할 준비가 된 늑대인간과 같기 때문이다. 전통적 보수주의에서처럼 여성은 남성과 "시시덕거릴" 수 있지만, 같은 상황의 남성은 잠재적 포식자로 여겨진다. 남성은 오직 섹스만을 생각하며 나쁜 짓을 꾸미고 있다는 전제가 있는 반면, 여성은 순수하고 무고하다. 남성 성욕의 표현은 다양하게 "섬뜩하거나"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반면, 여성 성욕은 다양하게 여성에게 더 넓은 복장 규정을 주거나 "창녀 자부심"이라는 칭호를 부여한다. 절대 창녀 수치심을 주지 마라, 이 섬뜩한 놈아!
5. 남성은 슈퍼맨이고 여성은 곤경에 빠진 여인이다
이 마지막 것이 아마도 페미니즘이 전통적 보수주의와 어떻게 겹치는지 보여주는 가장 큰 요점일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둘 다를 외친다. "여성을 구하라!", "여성을 위해 싸워라!". 그 용감한 백기사들, 페미니스트들, 그리고 다른 트래드콘들은 그 불쌍한 곤경에 빠진 여인들을 구출하라는 외침을 나팔처럼 울린다. "당신은 숙녀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여성에게 맨스플레인하기 전에 당신의 특권을 점검하라." 이것은 페미니즘 내에서 거대하며 그들이 이용하기를 좋아하는 정서다. 엘리베이터게이트(Elevatorgate), 아니타 사키시언(Anita Sarkeesian), 그리고 일반적으로 페미니즘을 생각해보라. 페미니즘의 전체적인 것은 "남성은 사악한 억압자들이다", "여성은 억압받는다"는 상투적 수법이다.
고동우 씨와 김재용 씨가 관찰한 "여초의 마초성"과 "애국심과 민족주의 성향"은, 실은 이 "여성을 구하라" 시스템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여성이 애국적이고 민족주의적인 것처럼 보이는 착시가 생기는 이유는 그것이 남성들로 하여금 "여성과 민족을 위해" 희생하도록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고동우 씨는 "근대식 로망 판타지 가부장제"를 관찰하며,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 "진짜" 욕망의 표현이라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헤스티아(Hestia)의 "보수적 남성혐오"라는 글에서의 분석은, 보수주의와 종교 내부조차 이미 여성중심주의에 완전히 포획되었음을 보여준다.
[...] 남성혐오와 페미니즘의 폐해는 흔히 특정한 한 형태, 즉 이 주제가 거론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좌파적 계열의 페미니즘과 결합된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문화 속에서 눈에 가장 잘 띄는 반(反)남성적 흐름이 실제로 그것일 수는 있으나, 이것이 유일한 형태도 아니고, 가장 해로운 유형도 아니다. 내가 '보수적 페미니즘'이라 부르는 또 하나의 계열이 존재하는데, 이는 흔히 반짝이와 리본, 장식끈으로 포장된 채 등장한다. [...]
헤스티아는 보수적 세계관에서 남성을 '지갑'으로 취급하는 방식을 폭로한다.
[...] 보수적 세계관에서는 이 생계 부담이 한층 더 심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성은 아이들과 함께 집에 머물 권리가 있다고 배우며, 남편이 이 생활수준을 유지할 만큼의 소득을 제공하지 못하면, 그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거나 죄인이거나 신앙이 타락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디도서 2장 같은 '여성의 권리'를 지지하는 성경 구절들이 인용될 때, 아내에게 검소할 것을 당부하거나, 집에서 사업을 하거나, 채소밭을 가꾸어 식재료를 마련하라는 식의 협력적 의무는 언급되지 않는다. [...]
고동우 씨는 댓글란에서 "남편만 돈 잘벌면 안될듯"이라고 마지막에 덧붙이지만, 그가 관찰한 여초 커뮤니티의 판타지는 실제로는 남편만 돈을 잘 벌어야 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롤로 토마시(Rollo Tomassi)의 ‘잃어버린 언약의 약탈자들’이라는 글은 종교 지도자들조차 이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음을 폭로한다.
[...] 또 한 번, 여성들의(페미니즘적 영향이 반영된)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재정적 고려가 또 다른 종교 지도자에게서 드러났습니다. 이는 제가 네 번째 책을 쓰기 시작한 이후 인터뷰해온 목사들과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공통된 관점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일종의 비즈니스 프랜차이즈와 같으며, 목사와 교회 지도자들이 전기 요금을 내고 운영을 유지하기 위해 십일조가 계속 들어오길 원한다면, 서구 세계에서 주요 소비자의 감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합니다—그 대상은 바로 여성입니다. 이제 교회 지도자들은 여성들의 눈과 귀가 설교와 공개 석상에서 자신들의 말을 세밀하게 평가하여, 목사가 ‘여성 편’에 서 있는지 확인할 것이라는 사실을 내면화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바로 ‘언약적 결혼’과 ‘계약적 결혼’을 분리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이들 남성에게 있어 문자 그대로 ‘당연한 결정’인 이유입니다.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자신들의 교회에 스며든 페미니즘적 시대정신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분리를 인정하는 것은, 남성이 여성을 불행하게 만들어 신을 불쾌하게 한다면 여성이 누릴 수 있는 금전적·물질적 기회를 부인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저는 아마도 파이퍼 박사님에게서 더 많은 것을 기대했었던 것 같습니다. 공통된 기반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여성 중심적 명령에 맞춰진 교리를 고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가 가부장적 권위를 논의할 때, 그는 처음부터 권위를 행사하는 것과 지배적인 인간이 되는 것의 차이를 미리 전제하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남성 권위를 경시하는 여성 중심적 교회에서는 이런 태도를 이미 예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교회는 ‘권위’라는 개념을 재정의하여, 여성이 허용할 수 있는 ‘가부장적 권위’의 다른 측면을 논의하기에 앞서 먼저 ‘책임’으로 해석하도록 만듭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마치 정신적 질환과도 같습니다. 아내가 완벽하게 행복하거나 아름답지 않다면, 그 모든 것이 남편 탓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혼에 대한 혐오스러운 시각으로, 일반적인 기독교 부부의 불행만을 증가시킬 뿐입니다. 왜냐하면 여성을 항상 행복하게 유지할 방법은 없고, 나이가 들면 여성도 늙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삶의 일부이며, 여성은 단지 우아하게 나이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럼에도 일부 목사들은 남성들을 세뇌시켜, 아름다움이 부족한 것이 전적으로 남편 탓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
롤로 토마시는 "언약적 결혼(Covenant Marriage)"과 "계약적 결혼(Contractual Marriage)"의 구분이 실은 남성을 기만하는 수사에 불과함을 지적한다.
[...] 제가 이해하기로, ‘언약적 결혼(Covenant marriage)’은 남성과 여성이 결혼에 들어가기 전에 각자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책임에 대한 상호 종교적 존중과 이해를 전제로 합니다. 이는 두 사람이 서로 떨어져 있을 때보다 함께 있을 때 더 나은 존재가 된다고 믿는다는 합의 위에 세워집니다. 문면상으로 보면 이는 상당히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전제를 내포하고 있으며, 특히 오늘날 여성의 입장에서 그렇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잠시 후 자세히 설명드리겠지만, 제가 보는 ‘언약적 결혼’의 정의는 남성과 여성이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과 일대일 결혼의 의무에 따라, 사랑을 기반으로 결혼한다는 상호 이해를 전제로 한다는 뜻입니다.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계약적 결혼’과 구별되는 하나의 결혼 모델이 제시되는 셈입니다.
‘계약적 결혼(Contractual marriage)’은 상호적인 지원을 기반으로 하며, 설령 결혼이 해소되더라도 그 지원이 지속될 것이라는 일종의 보증 위에 성립됩니다. ‘믹타우’ 남성들은 이를 형편없는 사업 계약에 비유합니다. 만약 이것이 결혼이 아니라 단순한 계약이라면, 제정신인 남성이라면 누구도 결코 서명하지 않을 계약이라는 것입니다.
‘계약적 결혼’은 오늘날의 표준 형태입니다. 파이퍼 박사님은 이 모델을 ‘내가 배우자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사고방식의 결혼으로 보고 계십니다. 이에 대해서는 직접 논의를 들어보시고 판단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이러한 관점은 다소 성실하지 못한 태도라고 봅니다. 이는 남성이 실질적으로 형편없는 사업 계약과 다를 바 없는 결혼에 동의하는 이유가, 단지 그 나쁜 거래 속에서 조금이라도 얻을 게 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결혼 외부에서도 위험 없이 얻을 수 있는 것들뿐이라면, 대체 왜 결혼을 해야 하는가?
[...]
교회 지도자들과 논쟁할 때, 저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라는 주장 앞에서는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이것은 종교적 맥락에서 레드필 사상을 논의할 때 또 다른 장애물입니다. 이 주장은 그들이 실제로 답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항상 내세우는 믿음에 대한 호소입니다. 혹은 오늘날 교회에서 여성 중심적 명령을 건드려 불쾌하게 만들까 두려워 대답을 회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날 ‘계약적 결혼’은 남성에게 전적으로 불리한 선택입니다. 저는 이번 논의에서 남성들이 왜 이를 피하는지에 대해 최선의 근거를 제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일부 ‘공개석상에서의 목사’들은 설교단에서 남성들을 압도하고(AMOG) 결혼을 피하는 남성들을 부끄럽게 만들려는 충동을 보이지만, 결혼 통계와 이혼이 남성에게 초래하는 인생 파괴적 결과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모두 너무나도 검증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결혼률과 이혼률은 무시할 수 없으므로, 남성들은 연역적(deductive) 판단에 따라 현실적인 대응을 선택하여 결혼을 피하거나 MGTOW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신앙심 깊은 기독교인의 사고방식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날 계약적 결혼이 남성이 내릴 수 있는 최악의 결정 중 하나일지라도—‘하나님께서 결혼하라고 말씀하셨다’”라는 식입니다.
“이혼에서 여성이 얻는 금전적·물질적 이점은 어떻게 할 것인가?”
“상관없다, 하나님께서 결혼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저는 우주의 창조주와 논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뛰라고 말씀하셨다면, 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떤 합리적 반론에도 통하는 절대적·도덕적 승리 버튼입니다.
고동우 씨가 개인적으로 이해한 "근대 가문 판타지"는 "언약적 결혼"의 대중문화 버전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내용을 파고들면 "계약적 결혼"으로 즉, 남성의 일방적 부양 의무와 다를 바 없다.
고동우 씨는 "여초가 바라는건 어쩌면 페미니즘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근대 남성성'의 복구가 아닐까?"라고 묻는다.
답은 명확하다. 전혀 아니다.
"근대 귀족 판타지"의 더 심각한 문제는 그것이 계급적 배반을 내포한다는 점이다. 고동우 씨가 관찰한 여성들이 소비하는 판타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시골의 목가적 전통 생활이 아니라 도시의 부르주아적 사치임이 드러난다. "클린턴 가문의 대모"는 땅을 일구고 가축을 돌보는 농가의 아낙이 아니라, 도시 사교계에서 남편의 부를 과시하며 문화생활을 즐기는 유한계급 여성이다.
이것은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이 『유한계급론』에서 분석한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와 "대리적 여가(vicarious leisure)"의 정확한 현대판이다. 19세기 부르주아 아내들이 남편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존재했듯, 이 판타지 소설을 소비하는 여성들도 남성의 경제력을 소비하고 전시하는 역할만을 원한다.
더 치명적인 것은, 이 여성들이 "전통", "민족", "애국"을 외치면서도 정작 그 민족과 국가의 실질적 인프라를 떠받치는 남성들(건설 노동자, 배관공, 전기공, 트럭 운전사, 공장 노동자)을 경멸한다는 점이다. 3D 업종에 종사하며 낮은 수입을 받는 남성들은 배우자 후보에서조차 고려되지 않는다.
페미니즘에 오염된 현대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화이트칼라 고소득 남성,
도시 생활, 상류층 문화 소비, 상류층 지위 등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땀 흘려 일하는 자"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근대 귀족 판타지"는 블루칼라적 노동을 경멸하고 금융·부동산 투기 경제에 의존한다. 이것은 보수주의라기보단 천민자본주의이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개념을 빌려 말하자면, "근대 귀족 판타지"는 시간선호가 높은 문화다.
시간선호가 높다는 것은 저축보다 소비, 미래를 위한 투자보다 현재의 향락, 장기적 건설보다 단기적 착취를 선호한다는 얘기다.
보수주의는 미래 세대를 위한 희생, 저축과 투자, 장인 정신, 가문의 명예 (=세대간 책임)등과 같이 저(低)시간선호 문화를 숭상해야한다.
하지만 페미 여초 커뮤니티가 선호하는 "근대 귀족 판타지"가 실제로 지향하는 것은 지금 당장의 사치, 부채 기반 소비, SNS용 과시, ‘가문’은 입으로만 외치는 실질적 핵가족 이기주의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자녀 양육의 장기적 헌신보다는 당장의 사치와 자유를 중시하며, 가문의 세대간 계승보다는 현재 세대의 과시적 소비를 중시하며, 공동체를 위한 헌신보다는 개인적 지위 과시를 중시한다.
이것이 바로 천민자본주의의 완벽한 문화적 토양이다. 버블경제를 옹호하는 "높으신 분들"이 이를 환영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여성의 높은 소비성향은 단기적으로 GDP를 끌어올린다. 현대 여성들이 선호하는 명품, 여행, 미용 산업은 3차 산업 시장에 활기가 돌게 만든다.
부채 기반 소비는 단기적으로는 금융 부문 이익을 가져다준다. 여성들의 편집증적인 금싸라기 땅 선호는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킨다.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이 여성들이 스스로를 "우익", "전통", "보수"로 정체화하면서도, 그들의 실제 욕망은 리버럴 신자유주의의 완성형이라는 것이다.
전통적 보수가 주로 주장하고 지지하는 것은 소농 및 소상공인 지지, 제조업 부활, 지역 공동체 강화, 조혼과 다산 장려, 생산 노동의 존엄성 존중이다.
하지만 페미 여초 커뮤니티가 숭상하는 "근대 귀족 판타지"는 금융/부동산 투기 의존 (남편이 돈 잘 벌어야 = 고소득 직종 선호), 제조업 경멸 (3D 업종 남성 무시), 핵가족 고립화 (대가족 거부), 만혼과 소산 (아이는 사치재), 비생산적 소비계급 지향 등이다.
이것은 ‘상층 여성 + 좌익 리버럴적 금융자본 vs 노동계급 남성계급’ 구도의 계급 동맹의 재편이다.
"전통"과 "페미니즘"이라는 겉보기 대립 아래, 실은 같은 계급 이해
노동계급 남성들에게는 "애국하라, 군대 가라, 위험한 일 하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그들을 배우자 후보로는 고려조차 않는 것. 이것은 계급 배반이며, 동시에 우익 담론을 공허하게 하는 행위이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는 경제적으로는 제조업 공동화·금융화·서비스 경제화를 추진했고, 문화적으로는 소비주의·개인주의·즉각적 만족을 주입했다. "근대 귀족 판타지"는 이 리버럴-신자유주의 문화의 완벽한 상부구조다.
고동우 씨, 당신이 여초 커뮤니티에서 목격한 여성들은 "잃어버린 근대 남성성의 복구"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남성 착취 시스템의 완성을 원한다.
19세기 매춘부의 자유 + 전통 여성의 특권 + 현대 여성의 권리 + 부르주아 계급의 사치 - (여성에 대한 모든 의무와 제약) = 이것이 페미니스트 여성 커뮤니티가 소비하는 판타지의 방정식이다.
고로 이러한 페미 여성들은 가부장제를 선호하는 척하면서도, 정작 고대 로마식 가부장제(Pater familias)와 전근대적 농촌 공동체의 가부장제는 진심으로 혐오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그리고 이것은 숭녀억남(崇女抑男) 시스템의 최적화, 여성이기주의에 대한 일관성을 위한 보수주의에 대한 모순적 행위, 전통의 회귀가 아니라 천민자본주의의 가속화, 애국이 아니라 되려 국가를 좀먹는 행위이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정작 이 숭녀억남 시스템의 희생자들(3D 업종 노동자, 지방 청년, 저소득 남성)이 "페미니즘만 없애면 지고지순한 여성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진짜 적이 누구인지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페미니즘과 전통주의는 오늘날 숭녀억남 시스템에 편입되었으며, 둘 다 남성을 공공재로, 여성을 특권 계급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최종 수혜자는 여성, 이 고시간선호·과소비 문화로 이익을 보는 천민자본주의적 금융자본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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