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성적 자유는 과연 무한해야 할까?
https://www.youtube.com/watch?v=0fgDgyayp7E
12시간 동안 무려 1057명의 남자와 성관계를 가진 여성이 있습니다. 보니 블루라는 여자이며, 포르노 배우입니다. 들으시면 깜짝 놀라실 텐데 아직 26살밖에 안 됐습니다. 어떠한 삶을 살아왔을지 짐작이 되는 얼굴이죠.
온리팬즈라는 플랫폼에서 활동하면서 남자들한테 멤버십을 통해 후원을 받고 야한 영상을 올리는 식의 활동을 하던 여자였는데, 얼굴을 보면 짐작이 되시겠지만 업계에서 탑을 하기는 힘든 외모입니다. 그래서 쇼킹한 마케팅 전략을 쓴 것으로 보이는데, 이게 엄청난 성공을 거뒀죠. 돈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번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마케팅이 얼마나 쇼킹했으면 같은 업계의 포르노 배우들조차 비판을 했고, 그 다음 행사를 더 크게 진행하려 했지만 결국 그마저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온리팬즈 플랫폼에서조차 퇴출당한 상태입니다.
심지어 본인은 대놓고 “18살짜리 남자애들을 제일 좋아한다”, “이 아이들의 첫 경험을 시켜주는 것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라고 말해 어마어마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여자가 일으킨 논란은 업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 이유는 이 여자가 굉장히 당당하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나는 사회에서 하라고 하는 대로 했을 뿐이다”라는 겁니다.
특히 자신을 욕하는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욕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당신들이 그토록 바라던 자유롭고 주체적인 여성이다. 나는 내 몸이라는 자산을 활용해 좋은 마케팅 전략으로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인 강인하고 자유롭고 주체적인 여자다.”
이 말을 들으면 사실 반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구구절절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페미니즘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보니 블루가 된다는 주장입니다. 페미니즘이 시키는 대로 가장 충실히 실행해서 1등이 되면, 그 결과물이 바로 보니 블루라는 것이죠.
이것이 페미니즘의 맹점입니다. 절제의 윤리가 없다는 점입니다. 페미니즘의 기본 전제는 세상은 남자와 여자로 나뉘며, 남자들이 가부장제를 통해 여자를 억압해왔으니 여자들은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970년대부터 성해방 운동이 시작됐죠. 마음껏 섹스하고, 마음껏 키스하라, 금지된 것을 금지하라는 구호 말입니다.
이 흐름이 50년 이상 지속된 결과물의 정점이 바로 보니 블루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보니 블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페미니즘이라는 세계관이 끝까지 갔을 때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태를 그냥 넘기면 안 됩니다. 여기서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페미니즘에는 남녀 대결 구도를 넘어서는 거시적인 윤리가 없고, 특히 여자의 성에 대한 절제 윤리가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성적 욕망이 무분별하게 해방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가족 제도가 해체됩니다. 실제 연구 결과를 보면, 결혼 전에 연애 및 성관계 파트너가 많았던 여성일수록 결혼 생활의 만족도가 낮게 나타납니다. 이는 자유연애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수십 년간의 사회 실험을 통해 드러난 결과입니다.
자유주의도 기본적인 규율 위에서만 작동합니다. 규율 없는 자유는 방종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 곧바로 “여자의 성을 억압한다”는 비난이 나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남자의 성만 억압되고 있습니다. 남자의 성욕에는 죄책감이 부여되지만, 여자의 성욕은 무한히 허용됩니다.
여자들도 비판을 받기는 합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비판만 허용될 뿐, 여자로서의 비판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나 여잔데요”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면제되는 문화가 만들어졌고, 그 결과가 바로 보니 블루입니다.
이런 문화는 앞으로도 계속 확산될 겁니다. 문화에는 방향성이 있습니다. “여자는 성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순간, 사회는 그 방향으로 계속 밀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제동 장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자의 성 윤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보니 블루 같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니 블루식 삶이 주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항상 존재해 왔습니다. 다만 SNS로 인해 더 확산되었을 뿐입니다.
과거에는 이를 막는 장치가 있었습니다. 바로 계층 의식입니다. 고급과 저급, 귀함과 천박함을 구분하는 문화적 기준이 있었죠. 지금은 그 기준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급을 나눈다고 하면 차별이라고 비난받습니다.
하지만 급은 나눠야 합니다. 개인의 삶에도, 사회 전체에도 필요합니다. 이미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급을 나누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숨기고 있을 뿐입니다. 이를 의식화해 명확히 해야 헷갈리지 않습니다.
보니 블루의 행동이 저급하다는 인식이 분명하다면, 비슷한 사람이 100명이 나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저것도 하나의 삶의 방식”이라고 배우는 것입니다. 어린 세대가 무의식적으로 이를 학습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남자의 급을 나누는 것은 비교적 허용되지만, 여자의 급을 나누는 것은 거의 금지돼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도 평가받아야 합니다. 성적으로 절제할 줄 아는 여자가 상급으로 평가받아야 하고, 그렇지 않은 삶은 하급으로 인식돼야 합니다.
이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근간인 가족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치입니다. 확실한 성 윤리가 없으면 자유주의 사회는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이건 보니 블루 같은 사람을 탄압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다만 “다르다”는 인식, 주류와 비주류의 구분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무엇이 주류가 되어야 하고, 무엇이 주류가 되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이제 이 네러티브를 바꿔야 할 때입니다. 욕망의 해방이 아니라, 절제의 가치로 방향을 전환해야 합니다. 성적으로 절제할 줄 아는 여자가 좋은 여자라는 기준이 세팅되어야 합니다.
결국 보니 블루는 페미니즘의 맹점과 우리 사회가 향하고 있는 방향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우리에게는 더 명확한 성 윤리와, 자유주의에 기반한 계층 의식이 필요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오늘도 사유로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