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티스 야빈 BBC 인터뷰, 권력은 권력이다

원본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_WjE5P2n_ck


한국어 자막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PLe30uUu6qs


커티스 야빈: 하지만 1950년부터 지금까지 냉정히 돌아봅시다.

제1세계든 제3세계든, 1950년에는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었던 곳들이, 2025년에 와서 위험한 곳으로 변해버린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제게 있어 정부의 역할이란 '폭력을 독점'하여 질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이 기능에 실패하기 시작했다면 그 체제에 아주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죠.

샌프란시스코의 중심가를 걸어보면... 100년 전 영상 속 그곳은 잘 차려입은 사람들로 붐비는 활기찬 곳이었어요.

하지만 오늘날 그곳은 좀비 아포칼립스가 됐습니다.

만약 "그래도 좀비 아포칼립스가 더 낫지, 우린 아이폰이 있잖아. 옛날엔 없었고."라고 말한다면, 그건 좀 억지라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정부 시스템이 왜 실패했는지,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인터뷰어: 당신은 미국이 'CEO 군주제'로 통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죠. 마치 기업처럼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왕관을 쓴 사진을 올리기도 했는데 당신의 꿈이 실현되고 있다고 보시나요?


커티스 야빈: 아쉽게도 실현되고 있진 않습니다.

누군가 '왕은 필요 없다' 시위 직후에 여론조사를 했는데, (이 시위가 저를 겨냥한 건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만) 미국인들에게 "트럼프가 왕이 되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유감스럽게도 87%가 "아니오"라고 답했더군요.

찬성은 고작 7% 정도였는데, 제 생각엔 아직 갈 길이 머네요.


인터뷰어: 하지만 워싱턴 돌아가는 꼴이 좀 '왕조'스럽지 않습니까?

백악관 이스트 윙을 부수고 2억 달러짜리 무도회장을 짓는다던가요.

'왕은 필요 없다' 시위도 있고, 무엇보다 이 군주에게 도전하면 결국 법정에 서게 되는 것 같던데요.


커티스 야빈: 권력은 권력입니다.

어떤 권력 시스템이든 도전하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죠.

무엇보다 2017년부터 2020년 행정부(트럼프 1기)의 적들은 법을 무기로 원하는 모든 걸 다 얻어냈습니다.

만약 트럼프가 다음 선거에서 진다면, 트럼프 행정부와 관련된 사람들은 거의 다 기소될 겁니다.

우린 지금 법이 정치 전쟁의 도구가 된 '로마 공화정 말기' 같은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요.


인터뷰어: 잠깐 짚고 넘어갑시다.

민주당이 집권했기 때문에 기소된다는 겁니까? 아니면 그들이 실제로 잘못을 해서 기소된다는 겁니까?


커티스 야빈: 민주당원이 아니라서 기소되는 거죠.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다시 한번 '키케로'나 '카이사르' 시절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법을 무기로 전쟁하는 것'이 일상이 된 로마 공화정 말기에는,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미국의 '딥스테이트'나 관료 조직이 돌아가는 방식을 보세요.

이 관료 조직은 절차와 규정이 지뢰밭처럼 복잡한데, 그 안에는 수천 명의 정무직 공무원(Schedule C)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영국으로 치면 정치 보좌관 같은 사람들이죠.

이 시스템에선 규정집의 절차대로 해야 하는데, 규정집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범죄가 됩니다.

그러니 어떤 행정부든 마음만 먹으면 모두를 기소할 수 있는 겁니다.

그게 바로 지금의 시스템이 돌아가는 방식입니다.


인터뷰어: 원래 질문인 '군주제'로 돌아가 봅시다.

당신이 말하는 'CEO 군주제'라는 건 사실상 '선한 독재자' 아닙니까?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한 사람에게 쥐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다 알지 않습니까?

항상 끝이 안 좋죠.


커티스 야빈: 엘리자베스 1세의 말로가 안 좋았나요?


인터뷰어: 뭐, 그녀의 정적들에겐 꽤 힘들었겠죠.

하지만 왜 굳이 옛날 얘기를 합니까? 20세기를 봅시다.


커티스 야빈: 왜 20세기를 봐야 하죠?


인터뷰어: 더 최근 일이니까요.


커티스 야빈: 최근 일이라고 관련성이 높을까요?

글쎄요. 20세기는 아주 특이하고 흥미로운 세기였습니다. 놀라운 시대였죠.

하지만 1900년대와 1950년대의 영국은 지금의 영국과 너무나 다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 시절을 '재연(LARP)'하며 사는 건 무의미합니다.

우린 지금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거든요.

보시다시피,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그야말로 개판...


인터뷰어: 잠시만요, 거기서 끊겠습니다. 저도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그녀의 연설은 훌륭했죠.

물론 당신이 가톨릭 신자였다면 별로였겠지만요.

그녀가 20세기 독재자들과 같지 않았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건 지금 우리 세대가 겪은 역사입니다.

스탈린, 폴 포트, 피노체트... 이 폭군들 치하에서 수천만 명이 죽었습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될 때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 아닙니까?


커티스 야빈: 글쎄요, 흥미로운 점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반드시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 사람의 손에 쥐어질 수도 있죠.

우린 그걸 '과두정'이라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부 형태를 군주정, 민주정, 과두정, 이 세 가지로 나눴습니다.

견제받지 않는 군주정이 있듯, 견제받지 않는 과두정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영국이 '노스코트-트레벨리언 보고서(관료제의 시초)' 이후 발견한 사실이 뭡니까?

견제받지 않는 과두정을 만들면, 흔히 '대중의 지혜'가 작동할 거라 기대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리고 참 묘하게도, 20세기나 19세기의 독재자들을 보면 그들은 모두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들은 모두 '영미 중심의 패권'에 맞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죠.


인터뷰어: 전쟁과 기아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죠.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그게 바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결과 아닙니까?


커티스 야빈: 글쎄요. 1919년, 우리는 '해상 봉쇄 작전'으로 독일인들을 굶겨 죽였고, 1945년에도 또다시 굶겼습니다.

민주주의 국가라고 해서 다르지 않아요. 우리 역시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건 똑같습니다.

마오쩌둥 시절에도 수천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잘 아시겠지만 마오쩌둥, 폴 포트, 스탈린은 히틀러의 동맹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싸웠죠.


인터뷰어: 하지만 당신의 논리를 보면, '미국의 군주제'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 미국 진보주의자(liberal)들을 자극하려고 일부러 루즈벨트를 끌어들이는 것 같습니다.

특히 루즈벨트가 첫 취임 연설에서 막대한 권력을 원했다고 언급하면서 말이죠.


커티스 야빈: 그는 권력을 원했고, 실제로 막대한 권력을 독점했습니다.

솔직히 전시 상황을 보면 루즈벨트가 가진 권력이 히틀러나 스탈린보다 약했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그들은 모두 '국가라는 기업의 CEO'였던 셈입니다.


인터뷰어: 그건 4번이나 연속으로 선출된 대통령에게 하기엔 너무 심한 비난 아닙니까?

대선을 네 번이나 이긴 사람인데요.


커티스 야빈: 선거라... 또 누가 선거로 뽑히는지 아십니까? 푸틴도 선거로 뽑힙니다.

학자들은 러시아가 푸틴을 뽑는 시스템을 '관리된 민주주의'라고 부릅니다.

그런 '관리된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치르지만, 대중의 여론이 최종 결정권자가 아닙니다.

여론 자체가 '관리'되니까요.


인터뷰어: 푸틴은 그렇다 칩시다. 하지만 루즈벨트 이야기는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비평가들은 당신이 그 비상한 두뇌를 이용해, 역사에서 일말의 진실을 가져와 교묘하게 왜곡한다고 비판합니다.

당신이 언급한 1933년 3월, 루즈벨트가 첫 번째 취임사에서 뭐라고 했는지 봅시다.

그는 "의회에 광범위한 행정 권한을 요청하겠다."고 했습니다.

'마치 우리가 외세의 침략을 받았을 때 주어질 권한만큼이나 강력한, 비상사태 수행을 위한 광범위한 행정 권한을 의회에 요청하겠다.'

핵심은 이겁니다. "헌법 안에서, 의회에, 요청한다."


커티스 야빈: 그리고 "의회가 그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그때 권한을 갖겠다고 했습니다.


인터뷰어: 그 말은 나중에 나옵니다.

'의회에 요청하겠다'는 말은 '그들이 거절할 경우'라는 전제 뒤에 나옵니다.


커티스 야빈: 그러니까... 제 말은, 거절한다는 것의 핵심은 


인터뷰어: 분명 '의회에 요청한다'고 했습니다.


커티스 야빈: 당시 현실을 보면, 루즈벨트가 의회를 꽉 잡고 있었습니다. 사실상 '거수기 의회'였던 셈이죠.

그래서 그는 실질적인 '최고 경영자'의 위치에 있었던 겁니다.

더 중요한 건 그가 실제로 일한 방식의 디테일인데, 지금의 트럼프 대통령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트럼프는 행정명령을 쓰지만, 사실 그 행정명령의 법적 효력은 트윗 한 줄 수준입니다.

루즈벨트는 백악관에서 직접 법안을 작성해 의회로 보내고선, '다음 주 화요일까지 도장 찍어 오세요'라고 시키는 식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미국 헌법 시스템 안에서 진짜 '유능한 국가 경영자'가 일하는 방식입니다.


인터뷰어: 트럼프와 루즈벨트를 비교할 때, 당신은 루즈벨트가 미국의 상류층, 즉 '세습 귀족'출신이라는 점을 지적했었죠.

반면 트럼프는 그런 출신이 아니라서, 그 점이 그의 자신감에 타격을 입었다고 했는데 지금도 트럼프가 그렇다고 보십니까?


커티스 야빈: 트럼프 나이의 노인이 무언가를 배우고 변한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 같은 젊은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기대하기 힘든 일이죠.

그래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1기 때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훨씬 자신감이 붙었고, 에너지도 넘칩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루즈벨트의 권력과 비교하면 여전히 100배, 1000배는 모자란 수준이라고 봅니다.


인터뷰어: 트럼프 2기 행정부 이야기를 해보죠.

J.D. 밴스 같은 핵심 인사들이 당신의 아이디어에 관심을 보이고 있고, 실제로 일부 채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말한 'RAGE(공무원 전원 퇴직)'는 일론 머스크의 'DOGE(정부효율화부서)'가 된 것 같고요.

또 당신은 '대성당(The Cathedral)', 즉 언론과 대학 엘리트 권력에 대한 우려를 표해왔죠.

트럼프가 하버드를 공격하고, 미디어 기업들을 상대로 수십억 달러짜리 소송을 거는 걸 보면 당신이 떠오릅니다.


커티스 야빈: 제가 말하는 그 사상들은 제가 만든 게 아닙니다. 저보다 훨씬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것들이죠. (토마스 칼라일, 마키아벨리 등)

닉슨 대통령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죠.

"우리의 적은 '언론'과 '학계'다. 칠판에 100번 써서 외워라."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쓸 때 참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민주적인 건 다 좋은 거고, 정치적인 건 다 나쁜 거다라고 하죠. 사실 두 단어는 동의어인데 말입니다.

서구권에서 우리가 "우리 민주주의"라고 말할 때, 그건 보통 시민사회, 능력주의, 법치주의 같은 걸 의미합니다.

토비 영의 아버지가 만든 단어인 '능력주의'는 아주 좋은 말이죠.

약간 자화자찬하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요, 그것들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말하는 '민주주의'의 첫 번째 의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포퓰리즘입니다. 감정적인 SNS 여론이 통치하거나, 머스크가 말한 '트위터 투표가 곧 법(vox populi)'이 되는 세상을 말합니다.

이 두 가지는 거대한 '권력의 형태'이며,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이 둘은 서로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차지하려고 싸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시대에 '민주주의'라는 말은 곧 "정당한 정부"라는 뜻이 되어버렸으니깐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상대방의 약점을 지적할 때 만큼은 서로가 옳은 말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치 맨날 싸우는 부부를 보는 것 같죠. "남편이 아내 욕하는 것도 맞고, 아내가 남편 욕하는 것도 맞네"처럼요.


인터뷰어: 커티스 야빈, 오늘 뉴스나이트와 대화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커티스 야빈: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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