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망주의 선언문

· 민주주의는 도덕 체계가 아니라 실패한 통치 기술이다.


· 평등·인권·공론 같은 담론은 권력 은폐용 언어로 간주해야 한다.


· 빌프레도 파레토· 제임스 번햄과 같이 엘리트의 순환 구조과 카르텔 구조를 현실로 인식해야 한다.


· 카를 슈미트처럼 정치의 핵심을 적/친구 구분에서 찾아야 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가 분석했듯 도덕은 초월적 진리가 아니라 힘의 산물이다.


· 권력은 단순한 관리 대상이라기보단 의심·폭로·저항의 대상이기도 하다.


· 정치에 대한 증오·배신감·피로를 인정하고 정당화하는 것은 반드시 나쁜 행위는 아니며, 이러한 감정이 정치 분석에 있어서의 출발점이자 결론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다. 특히 정치에서의 증오심은 일종의 생존 감정으로서 이론화할만하다. 다만, 그 감정에 잠식당하지는 말라.


· 사회 붕괴의 진실은 탐구할만한 주제이며 심지어는 최악의 시나리오마저도 상정해야한다. 질서의 회복은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은 인정해야하며 문명의 붕괴에 있어서 누가 같이 썩어들어갈 것인가를 관찰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 현 글로벌리스트 엘리트는 자기희생을 요구하면서 책임을 지지않는 위선적이고 기생적인 존재다. 즉, 도덕적으로 파산한 존재들로서 이들에게부터 생산성을 기대할 순 없다.


· 신은 죽었으며, 설계자라고 자처한 놈들은 사기꾼이었다.


· 민주주의·대중사회·이념적으로 경도된 국가에 포획된 개인들은 탈출을 해야한다. 소시민은 결국 정치 참여도, 혁명도 아닌 내면적 주권 회복이 우선이다. 즉, 통치자가 될 수 없다면 완전히 체제에 포획되지도 말라.


· 체제에 대한 분노에 개인이 완전히 잠식되어 폐인이 되지 않도록 하는 꼭 필요한 균형추는 체제의 흥망을 관찰하되, 도덕적 분노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다. 즉, 단순히 무정부주의자가 될 것을 목표로 삼을 것이 아니라 일단 내면적으로 주권적인 개인이 되어라.


· 사회 주류의 정치 이념과 정치 운동을 신뢰하지도 말며 참여하지도 말라. 아무것도 믿지 않지만, 모든 것을 본다는 태도를 정교하게 만들고 이를 유지하라.


· 기성 도덕·합리·의회주의는 일종의 정치적 신화다. 신화가 대중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분석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폭력은 단순한 수단으로서만 기능한다기보단 정치의 본질적 언어다. 증오·폭력·비합리성에 대한 직관은 중요하다.

· 민주주의·자유주의는 구조적으로 무능하기에 반동이 필요하다. 단, 반동은 일정한 형식에 의한 재조직화 작업이어야 한다.


· 일부 개인 몇몇의 선의·이념·참여만으로 거대한 사회 체제를 이기는 것은 어렵다.


· 문명의 쇠퇴는 일종의 형태·기술적 측면으로서 설명이 가능하다. 진보·개선·개혁이라는 환상은 필요없다. 우리는 직접 선택하지 않는다. 이미 선택된 자리에 태어났다.


· 발전·질서·안보를 위해 자유는 유예될 수 있으며, 국가가 먼저 살아남아야 개인이 존재할 수 있다.


· “이 사람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이런 선택이 가능해졌는가?”를 분석해야한다.


· 권력자는 질서·권력·성과를 끝까지 의식적으로 관리해야한다.


· 대중은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불신의 대상이다. 대중의 혁명적 열광이나 집단적 동일시란 혐오스러운 것이다.


· 민족·국가는 숭배 대상이 아니라 기능적 실체로 취급해야한다.


· 국가와 질서는 불가피한 기계다.


· 효율적 관리와 기능적 기계로서의 중앙집권 단일국가 선호는 특이한 것이 아니다.


· 높은 남성성과 불확실성 회피, 낮은 시간선호, 단기적 쾌락에 대한 자제, 집단/개인 간의 균형은 숭상할만한 덕목들이다.


· 열광하는 공동체는 필요없다. 그저 법도가 살아있는 사회가 필요한 뿐이다.


· 권위적 질서는 옹호하되, 그 질서를 수행하는 자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 엘리트의 교체를 논하기 이전에 엘리트가 부패하는 매커니즘을 이해하라.


· 강한 국가는 중요하다. 하지만, 진정으로 강한 지도자는 드물며, 대개 강한 공동체란 허상이다.


· 사상적 고립을 정치적 무력감, 사회적 소외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상적 고립은 사상적 자율성을 위한 대가이기도 하다.


· 인간은 비합리적이고 본능·감정·집단 압력에 휘둘리며 장기적 안전성보다 단기적 쾌락에 약하다. 즉, 자유로운 개인은 희귀한 예외이지 평균값이 아니다.


· 국가를 없애면 권력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권력이 등장한다


· 자유는 질서가 있을 때만 의미가 있고 강한 구조 위에서만 유지되며 항상 불균등하게 분배된다.


· 주권이 없다는 환상 속에서 실제 주권자를 애써 외면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 인간은 불편한 현실을 보기보다는 듣기 좋은 이론을 택하고, 실패해도 교정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 붕괴가 오기 전까지 붕괴를 가능성으로만 취급하고 실제 붕괴 사례를 항상 예외 처리하는 일은 어리석다.


· 궁극적으로는 민주적 정당성·이념적 동원·국가 신화를 모두 배제하고,

질서·치안·경제 기능만을 최소 비용으로 유지하는 통치 체제를 지향한다.


· 선거는 통치 정당성의 원천이 아니다. 여론은 참고 자료일 뿐, 권력의 근거가 될 순 없다. 동시에 대중 동원·선전·열광에 도취된 정치도 궁극적으로 철저히 배제해야한다.


· 국가는 신성한 실체가 아니라 관리 장치다. 민족은 동원 대상이 아니라 인구통계 단위다. 


· 표현의 자유, 참여의 자유보다 치안·재산권·계약 안정성이 먼저다.


· 자생적 질서를 인정하기 이전에 먼저 강제력의 가시적 존재를 인정하라.


· 엘리트는 반드시 도덕적으로 우월하거나 역사적 사명을 지니는 존재는 아니다. 엘리트는 그저 기능적으로 대체 불가능한 동안만 유지하라. 엘리트가 실패하거든 과거에 대한 미화 없이 교체해야한다.


· 체제의 궁극적 목표는 ‘정의’가 아니라 ‘장기지속성’이다.


· 주권의 가시성은 중요하다. 누가 정책을 결정하고, 강제했는지, 정책 실패의 비용을 부담하는지 명확해야한다. 주권이 숨겨지는 구조는 끔찍하다.


· 지방주권은 결국 비국가 권력의 난립으로 귀결된다. 즉, 주권을 분산하면, 자본 권력, 범죄 조직, 사적 무력집단, 문화 카르텔

이 즉시 주권 공백을 채운다. 이는 통제되지 않는 주권이다.


· 강한 중앙집권만이

비국가 권력을 억제할 수 있는 최소 조건이다.


· 기존 거주지의 탈출에 있어서의 이주 비용, 사회적 네트워크, 자산 고착,

언어·문화 장벽 문제는 무시할 수 없는 사안이다. 이는 어찌보면 소수에게만 허용된 특권이기도 하다.


· 주권은 분산되면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라, 주권이 더 은밀해지고 더 잔인해진다.


· 최소한 누구를 증오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는 분명해지는 것은 좋다.


· 관청의 경제 개입을 무조건 ‘비합리’, ‘반자본주의’로 규정하는 건

시장이라는 개념을 도덕화한 것에 불과하다.


·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개입하느냐, 어떤 플레이어로서 개입하느냐가 문제다.


· 국가는 가장 강력한 자본 플레이어이자 가장 큰 리스크 테이커이기도 하다. 룰을 만들고, 동시에 그 룰 안에서 움직이는 존재다.


· 강하고 효율적인 중앙집권 정부가 자본시장 룰을 명확히 설정하고,

그 룰 안에서 직접 플레이하는 경우와 리버럴·사민주의·사회주의 정부 하에서 사기업들이 “자유시장”을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정치·규제·이념에 끊임없이 종속된 경우를 비교해보라. 후자가 오히려

덜 자본주의적이다.


· 자본주의란 사기업의 도덕적 자유가 아니라, 명확한 룰 아래에서

모든 플레이어가 결과로 평가받는 체제다.


· 자본주의 하에서 룰은 명확해야 하며, 경제 정책 집행은 일관적이어야 하며 실패는 미화되지 말아야한다.


· 도덕·정치 논리를 통한 자본시장 개입은 게임이 끝난 뒤 룰을 바꾸는 행위다.


· 강한 주권이 자본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반자본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주권 없는 시장, 도덕에 휘둘리는 시장이 가장 비자본주의적이다.  


· 정부 자체의 존재보다 정부가 거짓말하는 것을 비판해야 한다. 정부는 플레이어라면 플레이어답게, 심판이라면 심판답게 행동해야 한다. 가장 비겁한 건 정부가 심판인 척하면서 플레이어로 행동하는 것이다.


· 정치에 있어서 정명(正名)은 중요하다. 통치는 정직해야 하며, 권력은 자기 자신을 정확히 인식해야하며, 통치의 언어와 실제 권력의 구조는 어긋나지 않아야한다.


· 통치의 언어와 실제 권력의 구조가 어긋난 국가는 반드시 내부에서부터 무너진다. 자기기만적 지도자는 반드시 부패한다.


· 국가·문명 흥망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1. 주권 집중과 질서 회복

2. 기능적 효율과 성장

3. 자기정당화의 언어 증식

4. 책임 비가시화 + 내부 부패

5. 급격한 붕괴 혹은 장기적인 침식


· 작은 실패가 교정되지 않고 온갖 정치적 언어로 은폐되며 축적될 때, 붕괴는 급격해진다.


· 국가 흥망에 있어서의 핵심 요소는 문제를 당장 해결하느냐 못하느냐 뿐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믿는 방식도 있다.


· 달콤한 거짓으로 연명하는 체제보다, 냉혹한 관리를 통해 존속하는 체제가 더 낫다.


· 아름다운 새 미래를 약속하지 않고, 새로운 인간상을 상정하지 않으며

진보를 전제하지 않고, 설계 자체를 의심하면서도 그래도 남는 사유의 잔여물들을 끝까지 계산해보면 결국 냉정한 경영을 통한 거버넌스 모델이 최적의 해로서 도출된다.


· “역사는 점점 나아진다”, “도덕은 점점 향상된다”, “제도를 고치면 인간도 개선된다”, “다음 단계는 항상 이전보다 낫다”라는 명제는 근대 이후 서구가 만든 진보에 대한 신화다.


· 근대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설계 가능하다고 착각하기 시작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 현대 진보주의 시간관·인간관·역사관은 고전적·반근대적 위치에서 해체해야한다.


· 폭력은 정치의 외부적 속성이 아니라 주권의 핵심 속성이다. 폭력을 끝까지 부정하는 태도 자체가 자기기만이다.


· 폭력은 임의적으로 쓰는 행위는 경계해야하나, 주권의 경계를 시험하는 도발적 행위에는 반드시 가시적이고 압도적인 대응이 뒤따라야 한다.


· 폭력의 대상은 가급적 질서 자체를 붕괴시키는 행위와 행위자에게 국한되어야 하며, 폭력의 형식은 국가가 독점한 규칙화된 강제력이어야한다.


· 법이 있는데 집행하지 않는 상태, 규칙이 있는데 예외가 난무하는 상태,

법을 위반해도 말로만 넘어가는 상태는 붕괴 직전의 징후이다.


· 국가의 폭력이 과해서 무너지는 경우만큼 국가가 스스로 폭력을 쓸 타이밍을 놓쳐서 무너지는 경우도 많다.


· 이미 법을 어긴 자에게 온정을 베푸는 순간, 그 법은 더 이상 법이 아니다.


· 폭력은 비미학적, 비영웅적, 비감정적으로 다뤄야한다. 


· 주권자가 폭력을 쓰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순간, 이미 누군가는 그 폭력을 대신 쓰기 시작한다.


· 국가는 때로는 잔인해 보여야만 더 큰 유혈을 막을 수 있다.


· 폭력을 주권의 핵심 비용으로 더 솔직하게 계산할 필요가 있다.


· 폭력의 불가피성을 더 빨리, 더 명시적으로 인정해야만한다.


· 폭력을 부정하는 도덕 담론은 위험한 허상이다.


· 누구도 타인의 신체·재산을 침해해선 안 된다는 공리는 강제력의 발생 조건을 삭제한 추상화에 가깝다. 그 금지는 누가, 언제, 무엇으로 집행하는가? 


· 타인에 대한 비침해가 유지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선해서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침해 이후의 제재와 처벌, 강제력에 대한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문명적 관점에서 비침해성의 공리는 취약하다. 

1. 법과 집행이 일치할 때는 질서가 유지된다.

2. 규범은 있으나 집행이 약화될 때 예외 증식된다.

3. 예외가 늘어날 때 사적 강제력이 난무한다.

4. 사적 강제력이 난무할 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발생한다.


· 강제력은 필요하지만, 강제력 자체를 정체성으로 삼는 국가는

결국 그 강제력에 의해 소모된다.


· 법치가 아니라 충성 체계로 강제력을 운용하는 국가는

장기적으로 통제 비용이 폭증한다.


· 국가의 강제력은 법과 책임 구조에 묶여 있어야한다.


· 반제국주의, 역사감정, 문명 대결 서사는 통치 실패를 잊게 하는 아편이다.


· 국가가 성숙 단계로 가려면 내부의 법·행정·경제 인프라를 다져야한다.


· 외부 개입을 내부 통치 비용의 대체물로 사용하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어리석다.


· 이상적 통치는 중심이 강하되 내부 구성원을 관리·보존하는 것이다.


· 국가정체성을 말하면서 내부 구성원을 광적으로 소모하는 국가는 이미 정체성을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 이상적 지도자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자기절제, 책임의 귀속, ‘힘, 승리, 빠른 종전’이라는 핵심 요소를 유지하며 전쟁을 이끄는 것, 내부 질서 안정.


· 강한 주권을 말하는 것과 지도자의 덕을 갖추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 적을 미워하는 것과 질서를 분석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 제국은 외부를 정복해서 무너지는 게 아니라, 외부 정복으로 내부 관리를 미루다가 무너진다.


·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한다.


· 궁극적으로는 진보주의의 목표뿐만 아니라, 진보주의의 문제 설정 방식도 전면적으로 부정해야한다.


· 진화에는 명확한 방향도, 목적도, 도착점도 없다. 적응은 일시적이고,

성공은 환경에 종속적이다. 오늘의 강점은 내일의 약점이 될 수 있으며,

멸종은 실패가 아니라 통계적 귀결이다.


· 세계는 인간의 의도와 무관하게

반복적 패턴과 냉혹한 선택 압력 속에서 움직인다.


· 자연은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남기고 지울 뿐이다.


· 세상이 인간의 기대를 배려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정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 평등은 자연 상태가 아니다. 결과의 차이는 설명해야 할 문제있는 현상이 아니라 기본값이다. 보호는 비용이 드는 행위이며, 반드시 지속되지 않는다.


· 인간은 수많은 종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인간의 이성·도덕도 결국 진화의 산물이며, 인간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존재다.


· 이론은 언제든 바꿀 수 있지만,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는

아무나 못 가진다.


· 자연은 인(仁)을 보상하지 않는다. 의(義)는 생존의 필수조건이 아니다.

예(禮)는 환경 변화 앞에서 무력하다. 지(智)는 일시적 도구일 뿐이다.

신(信)은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 인간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형성되는 위계 구조는 중요하다. 위계는 발명된 것이 아니라, 인간 집단이 커지는 순간 자동으로 발생하는 구조다.


· 문명 사회의 형태는 저마다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다. 바로 결정권의 비대칭이다. 모두가 결정하지 않는다. 모두가 책임지지 않는다. 소수가 판단하고 다수가 따른다. 


· 위계 없는 사회는 역사에서 예외가 아니라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


· 인간 사회에서 모든 개인이 동등한 결정권을 갖는 상태는

지속되지 않는다.


· 권위주의는 위계를 부정하지 않는 태도에 머물러야한다.


· 위는 위의 역할이 있고, 아래는 아래의 역할이 있다. 문제는 위계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위계가 제대로 기능하느냐다.


· 민주주의는 위계를 제거한 체제가 아니라, 위계를 부정하는 언어를 채택한 체제다.


· 위계는 신성하지 않으며 전통은 그 자체로 자동적으로 항상 옳지는 않다.


· 근현대는 타락이기도 하지만, 역사적 결과이기도 하다.


· 위계는 옳아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없으면 사회가 무너졌기 때문에 남아 있다.


· 전통은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에 남아 있는 행동·제도·위계의 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환경 압력 속에서 반복적으로 살아남은 것이자 기존의 전통을 제거하려다 더 큰 비용을 치른 끝에 복원된 것이다. 따라서 전통은 도덕 범주가 아니라 생존 범주에서 바라봐야한다.


· 전통은 문명 이전부터 반복적으로 살아남은 인간 사회의 구조적 습관에 가깝다.


· 전통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무시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는 제약 조건이다.


· 부정된 전통은 사라지지 않고 왜곡된 형태로 더 거칠고 통제 불가능하게 돌아온다.


· 전통은 신성해서 오래간 게 아니라, 오래갔기 때문에 전통이 됐다.


· 국제 질서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행동’은 항상 상대에게 유리한 선택이다.


· 국가의 고립은 중립뿐 아니라 포지션 상실이기도 하며, 때에 따라 자원 절약이기도 하지만 영향력 붕괴이기도하다.


· 국가의 외부 개입에 있어서 “지금 개입은 국가 확장을 낳는가?”, “지금 개입은 내부 질서를 많이 소모하는가?”, “지금 개입은 회복 가능한가?”, “지금 개입은 통제 가능한가?”를 따지는 건 중요하다. 즉 국가의 피로도를 관리해야한다.


· 국가는 생물과 비슷하다. 항상 움직여야 생존하는 종도 있고

많이 그리고 빨리 움직일수록 빨리 망하는 종도 있다. 중요한 건,

움직이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움직일 때인지 아닌지이다.


· 도덕은 진리 체계가 아니라, 질서를 유지·정당화하기 위한 기술이다.


· 도덕적 판단은 설명을 방해하며, 설명 이전에 유예되어야 한다. 도덕은 언제나 ‘사후적 설명 언어’이며, 실제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힘·질서·통치 기술이다.


· 힘은 미학도, 도덕도 아닌 ‘지속 능력’의 문제다.


· 정치 체제의 우열은 도덕성이나 명분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 가능성을 관리하는 능력으로 판단해야 한다.


· 철학의 역할은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으로 위장된 전제를 파괴하는 것이다.


· 여러 문명과 사유 체계가 반복적으로 만들어내는

‘권력·도덕·질서의 패턴’을 분석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 사유의 방향은 동양철학이되, 설명과 논증의 언어는 서구철학을 차용하는 것은 흥미롭다.


· 경제 법칙은 보편적이지 않으며, 경제적 행동은 역사, 법, 행정, 관습, 국가 형식의 산물이다.


· 자본시장에서의 경쟁은 법적으로 강제되어야 할 질서에 가깝다.


· 경제에 있어서 희소성, 유인, 기회비용, 보이지 않는 결과는 직관적이지는 않을 수 있지만 중요하다.


· 경제 분석에 있어서 “누가 자본시장의 규칙을 만드는가”, “왜 자본시장의 규칙은 자의적으로 변질되는가”, “시장은 왜 스스로 유지되지 않는가”, “국가는 왜 필요한 동시에 위험한가”는 무척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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