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네이션 빌딩의 실패 혹은 왜곡
한국형 네이션 빌딩의 실패 혹은 왜곡
부국강병의 실패, 공동체 없는 국가 — 한국형 네이션 빌딩의 실패를 분석한다
“국가는 흙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피와 충성 위에 세워진다.”
한국은 겉으로 보기엔 ‘부국강병’에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GDP는 세계 10위권, ICT·반도체 산업은 글로벌 공급망의 요충지이며,
군사력은 ‘정예화’라는 이름 아래 현대화되어간다.
그러나, 이 나라는 그 외관에 어울리는 시민 공동체의 구조를 갖고 있는가?
정답은 명확하다. 아니다.
‘인구’는 관리했지만 ‘국민(nation)’은 만들지 않았다
한국은 출발부터 국가가 아니라 행정관리 체제였다.
1948년 정부 수립은 혁명도, 사회계약도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의 ‘치안 유지 모델’이 남긴 국가 흉내 내기였다.
이 나라의 시스템은 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인구를 통제하기 위해 구성된 것이다.
- 교육은 인간 양성보다 시험 성적으로 줄세우기 위한 통계 도구가 되었고,
- 군대는 공동체 방위가 아니라 청년 징벌 시스템으로 전락했으며,
- 정치는 권한의 분산이 아니라 행정권력과 자본의 교환 장치로 굳어졌다.
이 체제는 시민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
복종하는 인구, 과세 가능한 노동자, 감시 가능한 개인만이 필요했다.
왜 실패는 예정되어 있었는가?
“민주주의는 권위를 파괴하고, 충성의 질서를 해체하며,
국가를 감정 없는 관리자 체계로 만든다.”
한국은 민주주의를 수입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파괴할 권리를 민중에게 넘긴 체제’를 받아들였다.
위계와 전통이 제거된 상태에서,
투표는 더 이상 의사 결정이 아니라 권위 부재의 축제가 된다.
한국은 이 축제를 국가 시스템으로 착각했다.
게다가 그 집행자인 관료와 정치인들은
신반동주의자들이 기대하는 정점의 군주적 질서도,
‘유능한 관리자 제국’의 엘리트도 아니다.
그들은 오직 지표를 조작하고,
권력을 분산하며,
책임을 회피하며 무효화하는 무기력한 관리자 집단이다.
이런 국가는 ‘죽은 제국의 유령’에 불과하다.
그 결과, 공동체는 없다.
오직 이해집단만 존재한다.
- 국민(nation)은 없다. 노조와 노조 혐오자, 젠더 갈등, 지역 정당만이 있다.
- 시민(citizen)은 없다. 세대별 혐오 발언과 소비적 분열만 존재한다.
- 병역도 없다. 단지 “육체와 시간이 갈려나가는 짓” 혹은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당하는 징벌”로 기능할 뿐이다.
국민 없는 나라에서 ‘시민의 군대’라는 개념은 허상이다.
총을 들고 있는 이는,
대의도 없이 소정의 월급과 억울함을 들고 외로이 전선을 지킬 뿐이다.
‘부국강병’이 아닌, 기술적 번영 위의 문화적 빈곤
한국은 경제와 군대를 키웠다.
그러나 그것은 공동체 없는 비대한 기계에 불과하다.
국가는 돈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
병력을 돈으로 모으고,
교육 서비스를 돈으로 사고,
정치적 결속을 광고 캠페인으로 꾸며도,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국가는 텅 빈 기호에 불과하다.
공동체는
-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의 위계,
- 피를 나눈 전통,
- 문화적 복속 위에서 만들어진다.
한국은 그것들을 철저히 제거해왔다.
그 결과는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공동체 없는 사회,
‘경제 대국’이라는 수사 아래 충성 없는 국가이다.
정리하며: 망가진 국가는 늘 “기능”만 남긴다
한국은 이제 주먹구구식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기능만 남은 국가다.
- 전력 생산
- 수입 및 수출
- 인구 통제
- 징병 유지
그러나 기능만으로 국가는 유지되지 않는다.
- 병역은 기능이 아니라 결속이고,
- 세금은 징벌이 아니라 신뢰의 표현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국가는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냥 피를 안 흘려도 되는 회사를 고르는 것처럼,
“이번 생은 이 나라 말고...”를 선택하는 개인들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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