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부국강병을 불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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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용병 고용이라는 해결책도 나쁘지 않게 생각한다. 허나 그럼에도 그것이 '한국'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며 용병 고용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필자는 강경 징병제론자인가? 사실 필자는 징병제 시스템을 직접 겪었던 인물이니만큼 한국식 징병제에도 모순이 많고 고칠 점도 많다고 생각하는 징병제 회의론자다. 


심지어는 모병제를 통해 소수정예 인력을 꾸려서 북한과 중공의 물량공세를 충분히 막아낼 수 없다고 보는 모병제 회의론자이기도 하다.


슬슬 이 대목에서 "아니, 왜 이리 다 회의적인가?"라고 어처구니없어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필자가 이토록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은 결국 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한국의 잦은 임금체불 범죄율과 부족한 군인 대우 문화, 천민자본주의를 고려했을 때, 한국이 용병(그리고 PMC)을 고용하더라도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용병을 헐값으로 부려먹는 한국에 반발해 용병이 무력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한국의 자산이 주로 유동성이 높은 현금이나 금과 은보다는 부동산의 규모가 더 비대하고, 천연자원이 부족한 것을 고려했을 때, 차라리 용병들에게 더 큰 금액을 제안하는 다른 나라로 미련없이 떠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아무리 용병을 고용한 한국이 용병에게 푸대접을 하더라도 쓸데없이 용병이 피를 흘리는 것도 손해기 때문에 차라리 용병이 미련없이 떠나지는 않을까?


결국 군사적인 얘기를 하더라도 바로 그 군사를 굴리는 국가의 노동 환경, 자산 구조, 문화적 특성 등을 아예 배제하고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니, 오히려 국가의 노동 환경, 자산 구조, 문화적 특성을 심도 깊게 고려해야만 올바른 군사적 논의가 나올 수 있다.


그 점에 있어서 이 필자의 비관론은 혹은 아예 폭력을 통해 국가 체제의 기반을 쌓아올리고 유지하는 것을 전적으로 긍정하고 무력에 의한 통제의 전적인 긍정을 하는, 소위 '자유민주주의자'들이 두려움에 떨 과격한 언사를 하는 것은 단순히 필자가 권위주의자라서가 아니고(구태여 필자가 권위주의자가 아니라고 부정은 하지 않겠다. 다만, 회의적인 권위주의자일 뿐이다.) 한국 사회 특유의 구조에 뿌리를 둔 현실적 우려와 비관론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한국의 노동환경과 천민자본주의적 요소


한국은 임금체불 문제가 극심하다. 한국은 OECD 상위권의 임금체불 발생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하청·비정규직·노동집약 산업에서 두드러진다.


(링크한 기사들을 참고하라)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020686301



군인 처우 미비가 만연하다는 것은 너무나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복무 기간 중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받으며, 전역 이후 경력 인정이 딱히 없다. 사회적 존중 부족 등은 군 조직 신뢰를 약화시킨다. 페미니스트 여성들에게 군인들이 조롱당하는 것은 이제는 일상이다. 

(링크들을 참고. 사실 링크한 글 이외에도 한국의 열악한 군 대우에 대해서 다 적기에는 공간이 너무 부족하다.)







한편으로 한국은 천민자본주의적 경향도 극심하다. 법보다 이익, 노동보다 자산에 집중된 이익우선·위계주의적 자본관이 만연하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사회가 외국인 용병에게조차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은 아주 허황된 비판은 아니지 않겠는가?

용병의 성격과 반응 양상

용병(PMC 포함)의 기본 특징은 무엇인가?

철저히 계약 기반이며, 금전적 보상 외에는 공짜로 충성심을 보이지 않는다.

복지·권리·명예보다는 실질 급여와 생존 조건에 의해 움직인다.

위험이 과도하거나 계약 위반을 겪을 시, 즉시 이탈하거나 전환(탈영 또는 귀국)을 하는 것이 PMC 직원으로서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이 “PMC를 헐값에 굴리려 한다”, “PMC 직원들과의 계약 조건을 불이행한다”는 평판이 돌면, 고급 PMC 기업(예: DynCorp, Triple Canopy)은 아예 계약 자체를 기피할 수 있다.

신용은 자유시장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요소 아니겠나?

저가 용병(예: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필리핀 출신 등)의 경우 무시당하거나 위험에 노출될 경우, 무장 이탈 혹은 집단 퇴거, 최악의 경우 보급품 약탈/폭동 형태의 무력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의 자산 구조: 반란 가능성 낮음

한국의 전체 자산 중 유동성이 낮은 부동산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2023년 기준으로, 한국 가계의 전체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5.5%로 집계되었다.


그에 반해, 현금·금·은 등 유동성 자산은 적다. 채산성 높은 천연자원도 부족하며, 농업 생산성도 높지 않다. 2022년 기준으로 한국의 농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에 불과하다.


보급품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초 군수 자원 자체가 희소하다. (군수 보급체계 같은 시스템의 얘기까지 가면 더욱 심각하다. 고속도로라도 없었다면 큰일날뻔했다.)

이는 만약 용병이 무력으로 반기를 든다 해도 얻을 수 있는 실질적 자산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반란을 일으킨 용병들이 정 재산을 많이 뜯어내려면 정치인들이 은닉한 재산을 터는 것 말고는 뚜렷한 대책이 없다.

결과적으로, 한국에 반란을 일으켜도 남는 게 적다.

오히려 리스크만 크고 리턴은 작다. 

미련 없이 철수하거나 계약 포기 쪽이 용병들 입장에서 훨씬 현실적인 옵션 아니겠나?

본 필자의 의견은 단순한 권위주의 · 군국주의적 판타지인가?

한국의 노동환경, 보상문화, 군에 대한 저평가, 사회적 불신 구조를 정확히 읽어내고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너무나 자명하다. 

‘이런 사회에선 용병조차 믿기 힘들다’

시스템 불신에 기반한 비관주의적 안보관을 떠올리는 것 말고는 그 외의 생각을 떠오르기가 더 어려울 지경이다.

결국 한국 사회 시스템의 불완전함이 군사 외주화나 모병제의 정착마저도 어렵게 만든다는 소리다.

그래서 이 회의론은 어떤 군사학적 범주에 들어가나?

군사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하는 필자로서는 조금은 민망한 얘기지만 야전교범에 실릴 법한 모범적인 군사학적 담론은 아니다.

민주적 시민군 이론이나 자유시장자본주의적 PMC 이론은 더더욱 아니며, 차라리 비국가 행위자 기반의 ‘하이브리드 안보관’, 또는 ‘국가 실패론적 시나리오’에 가깝다.

다시 말해, “제도가 무너지면 결국 무력과 위계가 남는다”는 고전적인 마키아벨리적 냉소를, 한국의 천민자본주의에 덧씌운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징병제나 모병제 모델로도 중장기적인 부국강병 모델의 유지도 어렵다

한국 사회 전체의 구조적 모순—즉, 병역제도뿐 아니라 노동, 보상, 신뢰, 국가에 대한 인식 전반—이 군사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좀 더 냉소적으로 표현하자면, '한국은 누구도 전쟁에 몸과 생명을 맡기고 싶어하지 않는 나라가 되어버렸고, 외부인도 믿을 수 없고, 내부인도 의욕이 없으며, 제도마저 불신받는다.'

이 문제는 단순히 병역제도만 고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는 국가의 총체적 신뢰성 회복, 보상 체계 개편, 그리고 ‘싸우는 시민’ 개념의 회복이 필요하다.

해결을 위한 방향성 3가지 (군사 + 사회 통합 접근)

첫째, 국가의 신뢰를 재건하라. 즉, 군에 복무할 이유를 만들어라.

지금은 "국가를 위해 싸우라"는 말이 너무 공허하게 들리는 시대이다.

국민이 “내가 군에 가는 건 손해”라고 느끼는 순간, 모병제든 징병제든 국가에 대한 ‘헌신’은 사라진다.

해야 할 일은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다.

병역 복무를 “희생”이 아닌 “공정한 교환”으로 만들어라. (예: 군 복무자에 대한 취업 가점, 세금 감면, 군 경력 사회 인정)

복무의 존엄성을 회복시켜라. 지금은 “뺄 수 없어서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너무 강하다. (예: 군 복무 경력을 국가 공무원 경력처럼 인정하거나 군 출신 리더 우대 제도 도입)

전우애, 공동체 의식을 단순히 민족주의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시민의식(civic consciousness)과 공화주의(共和主義)적 정신을 대체해보는 것을 권유한다. (신반동주의를 지지하는 필자로서는 시민의식이니 공화정신도 오글거리는 개념이지만, 일단 그렇게라도 해보자는 말이다. 정 아니면 반공주의(反共主義)를 제1의 국시(國是)로 삼고, 다시 제대로 해보는 건 어떤가?)

둘째, 보상 구조를 과감히 개편하라. 용병도 모병도 ‘이익’이 있어야 움직인다.

자국민에게 징병을 강요하든, 외국인 용병을 사오든 제대로 된 보상 없이는 아무도 싸우지 않는다.

병사 급여의 과감한 자유시장자본주의를 적용하라. 훈련, 직책, 난이도에 따라 계단식 인센티브해보는 건 어떤가?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무리하게 진급누락은 시키지 말라.)

숙련도에 따라 직업군인으로 빠르게 전환 가능한 경로 개방하라.

PMC 등 외부 용병 고용 시, 일정 부분 군사 윤리 준수를 의무로 하되, 성과에 맞춰 고임금 지급을 보장하라. 한국의 ‘갑질’ 문화가 들어갈 틈 없게 법제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셋째, 사회 구조를 과감히 혁신하라. 그리고 상무정신(尙武精神)을 부활시켜라.

스위스나 핀란드 같은 나라는 징병제를 유지하면서도 병역을 민주적 시민의 의무로 긍정화했다.

반면 한국은 병역을 계급적 부담, 희생, 손해로 받아들이고 있다.

군 복무를 ‘의무’에서 ‘권리’로 바꾸는 상징 전략 필요할 수도 있다.

“내가 이 나라를 지킬 수 있다”, "내가 있기에 비로소 국가가 있다."는 긍정적 서사를 개인들에게 부여하라.

여성, 외국인, 이주민 등 다양한 계층의 국가 공동체 참여를 확대시켜라. 

결론

결국 싸우는 사람을 만들기 전에, 싸워야 할 이유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싸워야 할 이유를 만드는 것이 곧 네이션 빌딩 작업이다.

비관은 일종의 경고이다.

"싸워줄 이유도, 싸워줄 사람도, 싸워줄 시스템도 없는 사회가 되버린 위기" 말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

병역 제도의 위기는 군사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신뢰의 붕괴에서 시작된다. 이 위기를 넘기려면 병역 시스템 개편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계약을 다시 써야 한다.

P.S.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한국의 네이션 리빌딩 자체를 냉소적으로 조소하는 사람들이 늘 있다는 것이다. 

(의무를 행사하지 않고 권리만 누리려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이는 작자들은 너무 만연하고 지금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다. 이에 대해서도 추후 더더욱 가열차게 비판하는 글을 작성하겠다. 아니면 기존의 글을 참고해도 된다.)

결국 본 필자가 한국의 병역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통제 가능한(라기보다는 '통제를 해야만 하는') 모델로 보며 어떻게든 “질서를 유지하려는 안보국가의 시각”을 제시한 것이 방금까지 계속 서술한 바였다.

그에 반해 한 발 더 나아가 한국이라는 국가 자체의 정체성과 네이션 리빌딩(리부트라고 표현해도 될 듯 싶다) 시도 자체를 조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두 입장은 사실 양립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동일한 냉소에서 출발한다.

“이 나라는 지금 상태론 아무것도 못한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결론은 달라진다.

필자: “그러니 더 강력하게 통제하자.”

혹자들: “애초에 그렇게까지 할 가치가 없다.”

낙관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존재론적 비관론자가 발생하는 것은 막을 수도 굳이 막을 필요도 없다. 

한국은 구조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

국민도 국가도 서로를 갈아먹는다.

결국 병역제든, 모병제든, 뭘 해도 ‘갈려나가는 구조’만 반복된다.

허무주의적 비관론자들은 ‘제도적 해법’ 자체를 믿지 않기 때문에, 필자식 “통제된 해결책”조차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그 비관론자들이 탈출한 곳들 역시 결국 누군가의 피와 땀과 눈물로서 구축된 곳임을 상기한다면 구태여 필자의 주장만을 조소할 필요도 있을까?

한편으로 비관론자들을 설득하는데 애를 쓸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그들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애당초 그들이 완전히 다른 삶의 기준과 체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얼핏보면 패배주의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그들의 냉철한 진단은 귀기울여 들을 가치도 있다.

무엇보다 필자의 생각을 긍정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는 과격한 비관론자라고 매도할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필자의 의견도 결국 비관론과 회의론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는가?

비관론과 회의론이라는 프로세스를 통해 해결책을 떠올리는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작업인지는 직접 해본 사람이 아니면 통감하지 못할 것이다. (마치 규모가 큰 프로그램의 디버깅 작업과 같다.)

냉소적 허무주의자들을 비난과 조롱의 대상, 혹은 설득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그들만의 역할을 부여해보는건 어떤가?

조소하는 관찰자로 남느냐, 아니면 냉소하지만 조언하는 현명한 이방인이 될 것인가?

그것을 되려 제안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며 이러한 현명한 조언자들이 많을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국가는 발전한다.

P.S 챕터에서 다룬 주제는 추후에 다른 글에서 중점적으로 다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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