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의 우상의 황혼 (The Twilight of Idols in Modern Society)



현대 사회의 우상의 황혼 (The Twilight of 'Idols' in Modern Society)


"이 작은 책은 대단히 위대한 선언이다. 그 속에는 이전에 우상으로 간주되었던 것들이 철저하게 두들겨 맞아 산산조각이 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서문


고양된 망치질의 시간


이 시대를 지배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정신은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가? 니체의 망치를 들고 현대 사회의 우상들에 대한 철학적 타진(打診)을 시작해야 할 때다. "니체가 『우상의 황혼』에서 "귀로만 듣는 자는 거짓을 듣는다."라고 말했듯이,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귀로만 듣지 말고, 눈으로 보고 스스로 판단해야 할 시점이다. 아이돌, 정치인, 인플루언서를 향한 광적 숭배의 현상은 니체가 예견했던 '신의 죽음' 이후 새로운 우상들의 등장을 완벽히 보여준다.


전통과 질서의 위대함을 망각한 현대인들은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새로운 우상들을 창조해냈다. 이러한 우상숭배는 개인의 정체성과 민족적 자부심의 약화를 보여주며, 강한 정신의 쇠퇴를 반영한다.


대중 심리와 우상 숭배


"대중은 언제나 단순한 것을 숭배하고, 모든 고귀한 것을 적대시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제2논문, 제16절


오늘날 아이돌 팬덤에서 보이는 집단적 사고방식, 정치인에 대한 광신적 충성, 인플루언서를 향한 무비판적 추종은 무리의 도덕이 현대적 형태로 발현된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무력감과 존재론적 불안을 현대의 우상들에게 투사함으로써 위안을 얻는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자율적으로 구축하는 대신, 타인의 가치관과 이미지에 자신을 일치시키려는 심리적 기제에서 비롯된다. 대중은 스스로 사고하고 평가하기보다, 쉽게 소비할 수 있는 단순한 서사를 신봉하며, 그 속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얻는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열광은 단순한 취향을 넘어 자신들의 결핍을 투사하는 집단적 심리 현상이 된다.


노예도덕의 현대적 구현


"노예 도덕은 처음부터 '아니오'라고 말하는 도덕이다. 즉, 외부적이고 '타자'인 것에 대하여 스스로를 부정함으로써 탄생한다. 이 부정이 바로 창조 행위가 된다."


—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제1논문,  제10절


현대의 대중들이 자신들의 나약함을 덕으로 치장하고, 우상에 대한 맹목적 복종을 '충성'과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정당화하는 현상은 노예 도덕의 현대적 발현이다.


"그들은 신에게 자신들의 가장 강한 체험을 투사해왔다. 신은 인간의 가장 강력한 느낌들이 투사된 환영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도덕의 개선자들의 오류〉


 

"인간은 자신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들을 신에게 부여했다. 그리고 다시 그것을 신으로부터 받아들인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제1부, 137절



오늘날 대중들은 자신들의 성공, 아름다움, 영향력에 대한 욕망을 아이돌과 인플루언서에게 투사한다. 정치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투사를 통해 대중은 자신의 삶을 직접 살아가는 책임에서 도피한다.


우리의 문화는 이제 강인함 대신 약함을, 책임 대신 피해자 의식을, 자긍심 대신 보편주의를 찬양한다. 이는 니체가 경고했던 노예 도덕의 승리이며, 우리 문명의 쇠퇴를 가속화한다.


힘에의 의지와 가치의 창조


"나는 삶 그 자체를, 본질적으로 힘에의 의지라고 생각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권력에의 의지』


그러나 현대의 우상숭배는 창조적 의지를 타자에게 양도하는 행위다. 인플루언서가 말하는 삶의 방식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아이돌이 보여주는 이미지를 열광적으로 소비하며, 정치인의 구호에 자신의 판단을 내맡기는 것은 자신의 '힘에의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다.


"진정한 철학자들은 명령하는 자들이며 입법자들이다. 그들은 가치를 창조하고, 미래를 규정하며, 인류를 향해 목표를 제시하는 자들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제211절


초인으로 거듭난 지도자를 찾거나 스스로 초인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현대인들은 약자들에게 아첨하는 정치인들을 우상화한다. 전통적 가치를 수호하는 문화적 영웅 대신, 퇴폐와 해체를 조장하는 인플루언서들에게 열광한다.


신의 죽음 이후의 새로운 종교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채로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


—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 제125절


신의 죽음 이후, 인간은 새로운 신들, 새로운 우상들을 창조했다. 스타디움과 콘서트장은 현대의 성전이 되었고, SNS 팔로워 수는 새로운 경전이 되었으며, 팬미팅은 새로운 의례가 되었다.


"신은 죽었다. 그러나 아직 수천 개의 동굴이 그의 그림자로 가려져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제108절



"우리가 신을 죽였다. 그러나 그의 그림자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 제125절



니체는 전통적 종교의 쇠퇴 이후에도 인간이 여전히 신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예견했다. 신의 죽음 이후, 인류는 글로벌리즘, 다문화주의, 소비주의와 같은 새로운 종교들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신흥 종교들은 모두 전통, 민족, 가족과 같은 자연적 공동체에 대한 연대감을 약화시킨다. 



초인(Übermensch)의 가능성을 향하여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현대의 우상숭배는 이러한 초월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다른 이의 삶을 동경하고 모방하는 대신,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하고 자신만의 삶을 긍정하는 것이 니체가 말한 초인의 길이다.



"우리는 절대적인 존재, 동일한 존재, 자율적인 존재를 발명했다. 그러나 이 개념들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와 흐름이며, 힘의 관계다."

—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철학에서의 이성"



현대의 우상들에 대한 절대적 신앙 역시 인간의 창조적 힘을 약화시킨다. 자신의 판단보다 인플루언서의 조언을, 자신의 욕망보다 아이돌의 이미지를, 자신의 정치적 사고보다 정치인의 구호를 우선시할 때, 인간은 자신의 '힘에의 의지'를 상실한다.


강한 인간은 자신의 기원과 문화를 긍정하며, 스스로를 창조해 나간다.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힘으로 전환하여 자신의 미래를 강인하게 개척한다. 그러나 현대의 우상숭배는 이러한 자기 긍정과 창조적 의지를 약화시킨다.


영원회귀의 시험


"이 삶을 네가 지금 다시 살아야 하고, 앞으로도 무수히 반복해서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이 삶을 끝없이 반복해야 한다면, 넌 그것을 긍정할 수 있겠는가?"

—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 제341절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자신의 삶에 대한 무조건적 긍정을 요구한다.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며 소비하는 대신, 자신의 삶을 온전히 긍정하고 창조적으로 살아갈 때 인간은 비로소 니체가 말한 '운명애'(amor fati)에 도달할 수 있다.


현대의 우상숭배는 이러한 운명애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동경하고, 자신의 가치가 아닌 타인의 가치를 추종할 때, 인간은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긍정할 수 없게 된다.


강한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강한 인간은 자신의 기원과 역사, 문화의 명암을 긍정하며, 이를 통해 더욱 강해진다. 그러나 현대의 우상들은 인간을 자신의 근원과 단절시키고, 인위적이고 파편화된 정체성을 조장함으로써 그를 약화시킨다.


디오니소스적 긍정을 향하여


"디오니소스 대(對) 십자가에 달린 자."

—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니체는 『우상의 황혼』의 마지막 문장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이는 고통과 환희를 모두 포함한 삶에 대한 전적인 긍정을 의미한다. 현대의 우상숭배는 삶의 복잡성과 모순을 외면하고 단순화된 이미지와 메시지에 집착한다. 그러나 진정한 디오니소스적 긍정은 삶의 모든 측면, 심지어 고통스럽고 모순적인 측면까지도 긍정할 수 있는 용기를 요구한다.


"아직까지 인류는 목표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말하노니, 인류는 자신을 극복해야 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천 개의 목표와 하나의 목표"


현대의 우상숭배는 인간 내면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시도일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목표, 진정한 가치는 외부의 우상이 아닌 자신의 내면과 자신이 속한 자연적 공동체에서 창조되어야 한다.


결론: 새로운 가치 창조를 향하여


"모든 위대한 문화 시대는 퇴폐의 시대였다."

—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반자연으로서의 도덕"



"모든 문화의 최고 정점은 동시에 부패의 정점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현대의 팬덤 문화가 창조한 우상들은 종종 우리 문명의 부패와 퇴폐를 반영한다. 진정한 위대함, 진정한 가치 창조를 목격하는 대신, 우리는 텅 빈 유명세와 피상적 이미지에 열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혼돈을 내면에 품어야만 춤추는 별을 탄생시킬 수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서문" 



현대의 우상들에 대한 맹목적 숭배에서 벗어나, 자신 안의 혼돈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낼 때, 우리는 비로소 니체가 말한 '춤추는 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의 우상숭배 현상은 이러한 가능성을 차단하고, 인간을 다시 한번 '노예 도덕'의 굴레 속으로 밀어 넣는다.


"나는 모든 글 중에서 오직 누군가 자신의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는 우리에게 타인의 삶을 소비하는 대신 자신의 삶을 창조할 것을, 우상을 추종하는 대신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할 것을 요구한다. 현대의 우상들의 황혼이 시작될 때, 비로소 새로운 가치 창조의 여명이 밝아올 것이다.



우리는 니체가 『우상의 황혼』에서 망치질했던 것처럼, 현대의 우상들을 철저히 의심하고 비판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진정한 가치, 진정한 문화적 정체성, 진정한 긍지를 되살려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니체가 꿈꾸었던 "모든 가치의 재평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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