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24의 게시물 표시

Mark Yuray, 우익 활동주의는 항상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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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익 활동주의는 항상 실패한다. (원제: Right-Wing Activism Always Fails) 마크 유레이(Mark Yuray) / 2016년 4월 5일 올해 1월 초, 독일로 돌아가 보자. BBC의 보도 제목은 다음과 같다: "독일, 쾰른 새해 여성 대상 집단 폭행 사건에 충격." 도시 중심 기차역에서 발생한 여성 대상 공격의 규모는 독일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약 1,000명의 취한 상태의 공격적인 젊은 남성들이 가담했다. 볼프강 알버스 시 경찰국장은 이를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범죄"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 남성들이 아랍계 또는 북아프리카계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우려되는 점은 이 공격들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약 1,000명의 젊은 남성들이 대규모 집단으로 도착했으며,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공격을 목적으로 한 것처럼 보였다. 새해 전야의 인파 때문에 경찰이 중심 기차역 외곽에 배치되었지만, 여러 보도에 따르면 이 많은 공격을 포착하는 데 실패했다. 또한, 많은 여성들이 피해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탤릭체 표시는 필자가 한 것이다. BBC의 대폭 축약되고 자체 검열된 설명만으로도 우리는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약 천 명의 조직된, 술에 취한, 공격적인 젊은 아랍계 남성들이 새해 전야에 독일의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도시, 쾰른의 중심 기차역과 메인 광장에 대규모로 도착해 절도와 성범죄를 저지르는 범행을 벌였다. 경찰이 배치되었으나 “많은 공격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시 한 번 말하겠다. 독일의 대도시, 메인 광장과 중심 기차역에서, 새해 전야에, 경찰은 조직된 약 천 명의 술에 취한 공격적인 젊은 아랍계 남성들이 저지른 1,000건 이상의 범죄 를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은 정확히 몇 명이나 배치되었는가? 세 명? 쥐트도이체 차이퉁(Süddeutsche Zeitung) 기사에 따르면 이전에 보도된 140명이 아닌 80명의 경찰이 ...

Reed Perry, 여성참정권의 폭정(暴政)

  여성참정권의 폭정(暴政) (원제: The Tyranny of Suffrage) 리드 페리(Reed Perry) / 2015년 3월 5일 "가장 심각한 불평등은 불평등한 것을 평등하게 만들려는 시도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나는 여행할 때 묘지를 방문한다. 오래된 기념비들은 그곳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집트를 방문하면서 피라미드를 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은 무덤이다. 엄청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일랜드의 고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버려진 감옥의 공동묘지나 스페인이나 버지니아의 전쟁 묘지를 찾는 사람은 훨씬 적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그곳들 역시 방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나는 전 세계의 크고 작은 묘지를 다녀왔다. 고고학적으로 그들은 중요하다. 동시에 박물관이나 공식적인 문화 전시회처럼 정돈된 공간을 벗어나 도시의 유산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묘지는 대개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필터를 거치지 않는다. 내 거주지 근처에 내가 본 적 없는 독특한 비석이 있는 묘지가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것이 유독 중요하게 느껴진다. 그곳에 누가 묻혀 있는지는 모른다. 그것은 오래된 시골 묘지에 있는 낡고 작은 비석이다. 처음 보았을 때는 녹아내리는 얼음으로 인해 주변의 낙엽이 젖어 있었다. 서쪽 묘지에 있는 더 오래된 비석들 사이에서, 이 비석은 이끼로 인해 푸르스름하고 부서져가고 있었다. 읽을 수 있는 몇 마디 글귀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의 아들   1898-1918   전쟁"    그것이 황량한 단순함 때문인지, 아니면 그 비석을 세운 사람들, 그들의 슬픔이 맴도는 듯한 느낌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 비석은 단지 하나의 돌로 너무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우리의 아들'은 그들의 유일한 아들이었을까? '우리의 아들'은 국가를 위한 그들의 헌신이었을까? '우리의 아들'은 민주주의라는 전쟁의 신...

David Grant, 대성당은 민주주의이다.

  대성당은 민주주의이다. 데이비드 그랜트(David Grant) / 2015년 7월 27일 좌파는 대성당(the Cathedral), 즉 여론을 통제하는 엘리트 기구와 동시에 민주주의, 즉 비엘리트가 주요 결정에 실질적인 발언권을 가진다고 여겨지는 체제와 연관되어 있다. 좌파들이 투표 발의안이나 대중적인 입법 제안, 즉 대중의 의사를 진정으로 표현한 움직임이 좌파의 목표를 위협할 때 얼마나 빠르게 이를 비난하기 시작하는지 지켜보는 것은 꽤 흥미롭다. 그러나 여기에는 사실 어떤 위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성당은 곧 민주주의이며, 포퓰리즘은 실제로 반(反)민주적이다. 민주주의는 항상 엘리트들이 비엘리트들을 통치하기 위한 도구였으며, 대중의 지배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첫 번째 민주정이었던 아테네를 돌아보자. 앞서 논의했듯이,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처음에는 귀족 공화정으로 통치되었다. 이러한 공화정은 "좋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자들"을 의미하는 유파트리다이(Eupatridae)라 불리는 몇몇 귀족 가문에 의해 지배되었다. 평민들은 부채와 사유 재산을 보호하는 법, 그리고 귀족들의 관직 장악을 통해 유파트리다이에 의해 억압되었다. 그러나 많은 평민들은 무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귀족들에게 개혁을 요구할 수 있었다. 유파트리다이는 점진적이거나 전혀 개혁하지 않기를 선호했지만, 교활하고 카리스마 있는 귀족이 반기를 들면 대중을 결집시켜 스스로를 독재자로 세울 수 있었다. 아테네인들은 귀족들의 단결과 부분적인 개혁을 결합하여 오랫동안 독재를 피할 수 있었다. 기원전 632년, 실론이라는 인물이 독재를 장악하려 했으나 귀족들과 일반 대중에 의해 패배했다. 10년 후, 드라콘이 집정관으로 선출되어 성문법을 제정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드라콘은 무장을 제공할 수 있는 모든 토지 소유자에게 공식적인 시민권을 부여하고, 평민과 귀족 모두에게 열려 있는 선출된 의회를 설립했다. 또한, 드라콘은 엄격하다고 여겨졌던 형벌 규정을 포함한 성문법을...

Anton Silensky,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진보주의의 원인이 아니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진보주의의 원인이 아니었다. 안톤 실렌스키(Anton Silensky) / 2016년 8월 25일 이 글은 독자들 사이에서 공유된 문화적 마르크스주의(Cultural Marxism)에 대한 내용에 간단히 답하는 차원에서 작성된 것이다. 용어의 오용을 지양하고, 역사, 정치 이론, 사회학에 관한 관련 저술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해로울 수 있는 몇 가지 단순화를 바로잡고자 한다. Social Matter( 역자 주 – 현재는 폐쇄된 해외 우익 사이트 )에서는 진보주의(progressivism)를 다양한 좌파 이념 및 세계관, 그리고 현대 서구 세계의 지배적인 신념 체계를 포괄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이는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신념 또한 포함한다. 현재 이러한 세계관은 17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일어난 유럽의 다양한 사회적·정치적 혼란에 크게 기여했던 앵글로색슨-기독교적 평등주의와 일부 계몽주의 철학의 직계 후손으로 간주된다. 순수한 이성과 보편적 인류의 가치를 산출물로 내세우는 이러한 세계관은, 우리가 보기에 선행하는 여러 종교적 신념 체계의 역사에 크게 의존한 독특한 도덕성을 공유하는 일종의 기이한 사이비 종교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이와 같은 뿌리와 특징을 공유하는 소규모의 유사 사이비 종교들은 보다 작은 규모에서 나타나 일찍 사라지기도 했다. 예컨대, 미국의 자유연애 기독교 공산주의자들(American Free Love Christian Communists) 이 그러한 사례이다. 이러한 현상을 명확히 보여주는 또 다른 예는 본질적으로 종교적이며 정당화되지 않은 가정에 의존하고 이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도덕적 진보(Moral Progress) 는 역사의 "도덕적 궤적"이 "정의"로 향한다고 믿는 신념을 의미하며, 이는 신이 역사를 형성한다고 가정하는 섭리(Providence) 개념에서 발전한 것이다. 우리는 또한 과거의 세계관에서 새로운 세계관으로 전환하는 ...

토머스 홉스 저 <리바이어던> 제13장 . 인간의 자연적 상태: 행복과 불행에 관하여

  토머스 홉스 저 <리바이어던> 제13장.   인간의 자연적 상태: 행복과 불행에 관하여 자연은 인간을 신체와 정신의 능력에 있어 거의 평등하게 만들었다. 비록 어떤 사람이 신체적으로 더 강하거나 정신적으로 더 빠릿빠릿한 경우가 드물게 나타날 수 있더라도,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우월하다고 할 만한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이익을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신체적인 힘에 관해서라면, 가장 약한 사람도 비밀스러운 음모나 자신과 같은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들과의 연합을 통해 가장 강한 사람을 해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정신적 능력에 관해서는, (언어에 기반한 기술, 특히 일반적이고 불변하는 규칙에 따라 진행되는 과학이라고 불리는 기술을 제외하고; 이 기술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일부 분야에서만 가지며, 이는 태생적인 능력도 아니고, 다른 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신중함처럼 획득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인간들 사이에서 신체적인 힘의 차이보다 정신적 능력에서 더 큰 평등성을 발견한다. 신중함(Prudence)이란 경험일 뿐이며, 같은 시간을 동일하게 투자하면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평등성이 믿기 어려운 이유는 대부분 자기 지혜에 대한 허영된 착각 때문인데, 이는 거의 모든 사람이 대중(Vulgar)보다, 즉 자신과 몇몇 인정받는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은 이렇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더 재치 있거나 더 설득력이 있거나 더 많이 배웠다고 인정할지라도, 자신만큼 지혜로운 사람이 많다고는 좀처럼 믿지 않는다. 이는 자신의 지혜는 가까이에서 직접 보지만, 타인의 지혜는 멀리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인간이 이 점에서 평등하다는 증거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 공평하게 분배되었다는 가장 확실한 징후 중 하나는 모든 사람...

현직 경찰 간부 “성범죄 무조건 기소의견과 진술서 조작” 폭로글 아카이브 박제본

 경찰이 절대 여러분 편을 들지않는 이유. 저는 경찰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경찰조직을 위해 폭로하니 널리좀 알리세요. 성무고피해자연대  https://archive.md/a4xQw

전두환 회고록 1권 서문(3-1)

 전두환 회고록 1권 서문(3-1)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살아온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나의 삶이 평탄치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파란만장했다’거나, ‘영욕이 점철됐다’거나 하는 말들은 진부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나의 짧은 어휘력으로는 사실 이보다 더 적당한 말도 찾기 어렵다. 격동의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나에 앞섰던 전임 대통령 네 분 –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의 정치적 역정 또한 굴곡이 많기로는 나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네 분 모두 법에 정해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을 사임한 뒤 해외로 망명 갔다가 생애를 마치신 분도 있고, 임기 중 측근에게 시해를 당해 세상을 떠나신 분도 있다. 그분들 개인으로서는 불운이라고도 하겠지만, 임기를 마칠 수 없었다는 것은 그 이유가 무었이었던 간에 우리의 정치사가 그만큼 순찬치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내 뒤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등 여섯 분의 대통령이 나왔는데, 한 분은 재임 중 국회의 탄핵소추를 받은 일이 있었고, 다른 한 분은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탄핵소추를 인용함으로써 임기를 1년 가까이 남겨놓은 채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어쨌든 이제,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면 하루도 더 머물지 않고 청와대를 떠나야 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권력순환의 순리가 전통으로 뿌리를 내린 것이다. 내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소정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고 정부를 평화적으로 후임에게 이양한 것은 우리의 현대 정치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나는, 나에게 그러한 기회와 영광을 안겨 준 국민과 역사 앞에 감사한다. 나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능력이 모자라 하지 못한 일들은 있었지만 해야 할 일을 게을러서 하지 않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다는 의지와 충정만큼은 부족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주어진 일, 시키는 일만 하지는 않았다. 어느 자리에 가든, 없는 일도 찾아서 ...

동덕여대 폭동과 종북단체가 서로 얽혀있는 정황

  https://archive.md/xnjHw 동덕여대 니들 이거 봄? 디시인사이드 실시간 베스트 아카이브 박제본

전두환 회고록 1권(글을 시작하며)

 전두환 회고록 1권(글을 시작하며) (혼돈의 시대 1979-1980) 삶의 지혜가 될 명언들을 남긴 영국의 한 작가는 ‘진실의 가장 큰 벗은 세월이고, 가장 큰 적은 편견’이라고 했다. 내가 대통령의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떠난 지 한 세대가 흘렀다.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은 묵묵히 견뎌내는 일이었다. 갖은 핍박과 능멸을 참아내는 일은 고통스러웠고 나를 지치게 했다. 하지만 침묵함으로써 세월이라는 큰 벗을 얻게 된 셈이니 무의미한 시간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글은 그동안 말할 수도 없었고 들어줄 사람도 없었던 얘기들에 대한 기록이다. 역사의 기록은 ‘승자의 기록’일 뿐이어서 ‘패자’의 얘기는 모두 묻히게 된다고 한다. 나를 역사의 전면에 끌어냈던 일들과 관련해서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사람들 앞에 진실된 모습으로 비쳐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편견과 오해가 사람들의 밝은 눈을 가려놓고 있는 것이다. 의도된 편견은 세월이 지난다고 바로잡히지 않는다. 어떤 일들은 편견의 벽에 갇혀 있는 데 그치지 않고 성역 안에 모셔져 있다. 이 글이 세월의 힘을 빌어 진실을 밝힌다 해도 신화처럼 굳어진 편견과 오해가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서정주 시인은 <자화상>이란 시에서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고 읊었다. 사람들은 이 글에서 내가 투박한 육성으로 토해내는 항변과 원망과 자기자랑을 읽게 될 것이다. 시간의 여과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지난 세월이 힘겨웠던 만큼 가슴에 맺힌 것이 없지 않은 것이다. 애써 착하고 고상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려고 가성을 사용하지 않았다. 나의 회고록은 참회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뒷공론을 나는 개의치 않으련다. 우리 현대사의 논쟁적인 사건들을 국민은 각자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몇 번의 사법적 판단들도 있었다. 시대가 흐르고 정권이 바뀌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뒤집힌 결론이 내려지기도 했다. 국...

닉 랜드, 반동(反動), 반복, 그리고 시간

  반동(反動), 반복, 그리고 시간   닉 랜드   물리학, 생리학, 또는 정치의 영역에서 논의되든, '반동'은 시간적으로 구조화된 개념이다. 반응은 행위나 자극에 뒤따르며, 그 자극을 거슬러 올라가 불균형이나 혼란을 무효화하거나 상쇄하려는 움직임을 포함한다.  행위 이후에 발생하지만, 그것은 이전에 있었던 것과 조화를 이루며 작동한다. 이는 되돌림의 경로나 복원의 목표를 정의하는 흔적 또는 유산과 연결된다. 따라서 반동은 현재를 둘러싸고 모든 방향에서 그것에 맞선다. 지배적 순간의 바깥이 반동의 공간이다.  반동은 미래와 과거 사이에 은밀한 약속을 형성하거나 발굴하여, 이를 현재에 맞서 조율하며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와 구별된다. 진보주의는 현재와 미래를 결합하여 과거에 대항하며, 보수주의는 과거와 현재를 결합하여 미래에 대항한다. 반면, 반동은 시간과의 바깥성을 매개로 하여 현재와 그 쇠퇴를 넘어 더욱 멀리 나아간다. 이는 과거와 미래라는 이중적 지평선으로 확장되며, 시간 밖의 그림자가 된다.  그러나 반동이 시간의 탐구에 관여해야 하는 훨씬 더 즉각적이고 실용적인 이유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반동은 불만족의 불모적 향연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에서 다른 것들의 퇴락한 흔적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는 반응은 곧 그것이 가장 혐오하는 상태로 미끄러진다. 즉, 무력한 미시적 문화로서 목소리 높인 반복적 항의를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건 잘못됐다, 이건 잘못됐다, 이건 잘못됐다"라는 말은 곧 백색소음이 되거나, 더 나쁘게는 알아듣기 쉬운 불평으로 전락한다. 비록 그것이 비판적 진단의 끝없는 기계적 반복(이는 비판하는 시대의 협소함에 비례한 단조로움을 수반한다)을 벗어난다 하더라도, 복원의 구상은 더 길게 반복되는 함정에 빠지며, 단지 과거의 재현을 무력하게 요구할 뿐이다.  새로운 반동이 스스로를 지루함 속에서 혼수상태로 몰아넣지 않으려면, 혁신과 ...

커티스 야빈, 민속적 행동주의의 일환으로서의 우익 테러리즘(Right-wing terrorism as folk activism)

  민속적 행동주의의 일환으로서의 우익 테러리즘(Right-wing terrorism as folk activism) 커티스 야빈 · 2011년 7월 23일  나는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비크 (역자 주 - Anders Behring Breivik. 2011년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연쇄 테러의 가해자로, 정부 건물 폭파와 청소년 정치 캠프에서의 총기 난사로 총 77명을 살해했다. 그의 범행은 극우 이념과 반다문화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는 현대 극우 테러리즘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가 정치적 살인자라는 이유로 그를 비난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적 살인을 비난할 자격이 전혀 없다. 체 게바라는  자신의 정치적 적들을 두 배 이상 죽였지만,  여전히 수백만 명의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체 게바라, 스탈린, 마오 등 다른 좌파 살인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세 자리 숫자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파 살인자와의 연관성을 끊으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다. ABB(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테러리스트다. 넬슨 만델라도 테러리스트였다. 넬슨 만델라는 현재 이 푸른 행성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적 인물이다.  폭탄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 외에도  "무장 투쟁"이라는 것이 만델라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다음과 같다.  기록을 위해 적어두지만, 만델라는 ANC(역자 주 - African National Congress, 아프리카 민족회의. 1912년에 설립된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의 중심 세력. 초기에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차별에 저항했지만, 1960년대 이후 무장 투쟁을 병행하며 점점 더 급진적인 방식으로 변화했다.)가 "배신자들"에게 행했던 네클레이싱(역자 주 - necklacing. 타이어에 휘발유를 채워 희생자의 목에 걸고 불을 붙이는 처형 방식으로, 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반역자로 간주된 사람들에게 사용된 폭력적 행위.)을 "반대"했다고 한다. 아니,...

닉 랜드, 반동(反動)의 다양한 양상

반동(反動)의 다양한 양상 일단 우파가 그 어떤 사안에서도 결코 합의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면, 다양성의 즐거움을 만끽할 기회가 열린다. 자유지상주의는 이미 트로츠키주의와 견줄 만큼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압축적인 불일치의 원천이 되었지만, 신반동(New Reaction)은 내부적인 소규모 분파주의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영역으로 확장시킬 가능성을 보여준다. 차라리 이를 즐기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암호적 파시스트(역자 주 – crypto-fascist. 파시즘의 이념을 직접적으로 표방하지 않거나 겉으로는 숨기면서도 그와 유사한 이념이나 가치를 내포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들), 신정론자, 낭만적 왕정주의자에서부터 환멸을 느낀 고전적 자유주의자와 철저한 헌법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반동은 하나의 이념적 우주를 자체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강제적 평등주의에 대한 적대감과 서구 문명이 쇠락하고 있다는 인식만으로도 이 "클럽"에 들어가는 데는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에 대해 합의하는 것은? 꿈도 꾸지 말라. 반동적 다양성의 여러 차원 중 Outside In(역자 주 - https://web.archive.org/web/20180213122613/http://www.xenosystems.net/ 현재는 폐쇄된 닉 랜드의 개인 블로그)이 특히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이 있다(얼어붙은 황야에서 그 어떤 것도 실질적 결과를 가질 수 있다면 말이다): 반동과 정치의 연결 고리, 즉 반동이 대안적 정치인가, 아니면 투명하고 냉소적으로 현실적인 반(反)정치인가에 대한 문제다. 민주주의는 잘못된 정치인가, 아니면 단순히 정치 그 자체가 지닌 본질적 독성을 극한으로 확장한 형태인가? Outside In은 단호히 반정치적 "진영"에 동조한다. 우리의 목적은 정치의 비정치화(혹은 부정적으로 이해된 질서의 자발적 조화)다. 자발적 질서의 전통은 우리의 유산이다. 신반동은 조류가 우리를 거스르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 흐름에 반하여 헤엄치려면 ...

Hadley Bennett, NAP를 잠재우기: 공격성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NAP를 잠재우기: 공격성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14년 11월 12일, Hadley Bennett 작성 의무론은 지고 목적론이 떠오르고 있다. 비폭력 원칙(역주 – NAP, Non-Aggression Principle. 자유지상주의 이론의 핵심 원칙으로, 개인이나 집단이 타인의 신체와 재산에 대해 물리적 폭력이나 위협을 가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범적 원칙이다. 이는 머레이 로스바드가 체계적으로 정리한 바 있으며, 자유지상주의자와 무정부 자본주의자들이 국가 권력과 개인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기반으로 삼고 있다. 다만, 이 원칙은 주관적 해석과 현실적 적용의 한계로 인해 정치적 논의에서 논쟁의 여지가 많다.)은 머레이 로스바드가 이를 절제된 형태로 재구성한 이래로 자유지상주의 이론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 원칙은 시스템 내에서 사용자 간 상호작용에 있어 상당한 유용성을 지니지만, 시스템-사용자 간 상호작용에 적용될 때는 정치적 기술로서 매우 취약하다. 필자는 이전에 권리, 목적론, 비폭력에 대해 간략히 논의 한 바 있으나, 이 특정한 자유지상주의적 집착에 대해 충분히 깊이 탐구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확실히 집착이다. 자유지상주의자나 무정부 자본주의자들이 이 장치를 통해 스스로 정당화하는 통치 전략과 국가 행위에 대한 금지 사항은 때로 기묘할 정도다. 끝없이 이어지는 NAP 설명서를 훑는 일은 일종의 동굴 탐험과 같다. 얼마나 깊은 터무니없음의 토끼굴로 들어갈 수 있는지 탐구하는 여정이다. 로스바드의 간결한 표현에 따르면, "자유지상주의 신조는 하나의 중심 공리 위에 기반을 둔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타인의 신체나 재산에 대해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격'은 타인의 신체나 재산에 대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거나 그 위협을 가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추가적인 읽기와 자연법의 비신학적 개념에 기반한 NAP와 자기 소유권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로스바드의 주요 저작들이 유익할 것이...

Mark Yuray, 오늘날의 여성들은 과거의 창녀들과 같다

  오늘날의 여성들은 과거의 창녀들과 같다 Mark Yuray 작성 / 2016년 8월 5일 1년이 조금 넘었을 때, 나는 여성 해방이 여성 매춘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처음으로 글을 썼다. 그 당시 나는 개인적인 경험과 전통주의적 직관에서 비롯된 증거를 토대로 이 주장을 했지만, 이제는 이 주장을 몇 가지 적절한 역사적 사실로 뒷받침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기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든다.   미국의 역사적 성 역할에 대해 연구하던 친구가 19세기 서부 개척 시대의 ‘화장한 여성들(painted ladies)'의 행동과 생활방식을 묘사한 흥미로운 링크들 을 보내주었다. 여기에 전체를 인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발췌문이 있다. 내 두 번째 글에서, 나는 내가 언급한 매춘부들이 19세기 미국 서부 주들에 있었던 여성들이며, 이들은 초기 페미니즘의 거의 모든 목표를 실현했다고 명확히 밝혔다.   여성들이 대부분의 직업에서 배제되고 아내들은 재산을 소유할 법적 권리가 없었던 시기에, 덴버의 홍등가를 지배한 제니 로저스와 매티 실크스 같은 여성들은 넓은 토지와 가치 있는 부동산을 소유했다.   매춘부들은 당시 모든 미국 여성들 중 가장 높은 임금을 받았다. 몇몇 유곽 주인들은 너무나 부유해 서부 개척 시대의 기초를 다지는 관개 시설과 도로 건설 프로젝트에 자금을 댔다. 샌프란시스코의 제시 헤이먼, 테시 월, 그리고 다른 유곽 주인들은 1906년 지진으로 집을 잃은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음식과 옷을 제공했다. 미국의 고용주들이 노동자들에게 건강 보험을 제공하기 훨씬 전에, 서부 전역의 유곽 주인들은 직원들에게 무료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여성들이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으며 그래서는 안 된다고 여겨졌고, 아내들은 남편에 의한 강간에 대해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없던 시대에, 유곽 주인들은 매춘부들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관들을 고용했고, 모든 유곽 주인들은 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