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 규범에서의 상류 계층과 하류 계층의 갈등
성(性) 규범에서의 상류 계층과 하류 계층의 갈등 Alrenous, 2025년 1월 20일 월요일 상류 계층은 성(性) 규범이 일정한 필요를 충족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성 규범이 노골적으로 유동적일수록, 상류 계층은 다양한 유희적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우스꽝스러운 역할극 농담이나 그와 유사한 것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비평등적 요구들이 어떻게든 충족되도록 만든다.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그것은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문제적 구성원’이 자신의 무능함을 자백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자는 걸러진다. 마찬가지로, 비평등적 습속을 몰래 따르면서도 그 사실을 굳이 시인해야 하는 자는, 그 자체로 무례한 존재로서 상류 계층의 관심을 받을 자격이 없다. 이는 하류 계층에게는 파국적이다. 하지만 그래서 뭐? 하류 계층에게 있어 출근 자체가 이미 파국적이다. 장기적으로 그들의 가계(家系)는 어차피 전부 멸절될 운명이다. 누가 신경 쓰겠는가? 상류 계층의 포퓰리즘, 특히 salus populi―즉 “국민의 건강” 따위―는 110% 전부 허위다. 이른바 공중 보건 정책이란 세금 사기다, 하하. 전형적인 이권 개입이다. [공업적 규모에서 ‘순수한 세금 수혜자’가 되어라.] 미국은 이런 식의 세금 농장이 상류 계층의 자기파괴로 귀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세계 기축 통화 지위를 필요로 한다. 하류 계층은 애초에 납세할 돈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하류 계층에게 기능적으로 유효한 규범을 강제하려 들면, '고지식한 놈'이라는 소리를 듣는 게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그들을 멍청하다고 지적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성적(性的) 요구에 대해 알고 있으며, 나름 그것을 충족시키고 있다. 당신만이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둔감하거나 자폐적인 것이다. 물론 인정하자면, 오늘날의 상류 계층은 너무 희박하게 분산되어 있어서, 저녁 만찬 이상의 규모로 모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집단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의 응집력이나 일관성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것이 과연 계층...